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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부터 77 사이즈 옷을 다 보관하는 심리

입력
2022.01.07 22: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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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정리정돈 사업을 시작한 후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참 많은 고객을 만났다. 정리정돈의 계기는 각양각색 참으로 다양하지만 정리가 안 되는 이유는 대부분 한 가지! 바로 공간보다 많은 양의 물건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집이라는 공간에는 각각 주어진 역할이 있다. 예를 들어 주방은 주로 요리를 하거나 식사를 하는 공간, 침실은 잠을 자는 공간 등. 이렇게 공간마다 부여된 의미와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그 안에 배치되는 물건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물건 양이 늘어나면서 공간의 경계선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대용량으로 구매해 팬트리장으로 들어간 물건들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또 다른 예로는 옷장에 더 이상 옷을 넣을 수 없게 되면 옷을 줄이거나 옷 구매를 잠시 멈춰야 하는데, 넘쳐나는 옷을 일단 보관하기 위해 리빙박스 또는 압축팩 등을 구입해 다른 방이나 드레스룸 구석구석 숨겨진 공간을 찾아 넣어두기 시작한다. 이런 행동은 결국 어떤 옷이 어디에 있는지 못 찾아서 또 구입하게 되는 악순환을 초래하는데, 문제는 새로 구입한 옷도 기존에 있던 옷과 비슷한 옷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오래전 1인 가구 고객 집을 정리하는데 옷이 어찌나 많은지 방 한가득 무릎 높이까지 옷이 쌓여 있었다. 옷을 정리하기 위해 종류별, 계절별로 분류하던 중 옷 사이즈가 44부터 77까지 다양하게 있어 조심스레 물었다. "옷 사이즈가 다양한데 배출할 사이즈는 무엇인가요?" 그러자 고객은 44사이즈는 예전에 날씬할 때 입었던 옷인데 다이어트 중이라 나중에 입을 것이니 보관해 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다이어트 중이시니 77사이즈는 배출해드릴까요?" 물으니 돌아오는 답변은 "다이어트가 쉽지 않아 살이 다시 찌게 된다면 입을 수도 있으니 보관해주세요"였다. 결국 배출되는 옷은 하나도 없이 44부터 77까지 모두 보관하게 되었다.

그 고객과 처음 만난 지 어느새 5~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다이어트 중이어서 5년 전 옷을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 '혹시'라는 생각은 어떤 일에 대해 가정을 세우는 것인데 그 경우의 수에 따라 모든 물건을 보관하게 되면 당연히 공간보다 많은 물건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 많은 물건이 나에게 편리함과 비용절감의 효과를 줄 것 같지만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많은 것이 꼭 좋다고는 할 수 없다. 이가 없어도 잇몸으로 충분히 살 수 있는 것처럼 내가 갖고 있는 모든 물건을 보관해야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새해가 되면 습관처럼 한 해 계획을 세운다. 사람마다 내용은 다르겠지만 대부분 단기간에 쉽게 이룰 수 있는 목표보다는 시간과 노력이 상당히 필요한 목표를 세우곤 한다. 올해는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 물건을 보관하기보다는, 명확한 기준을 정해서 주변 물건을 정리해 보는 것은 어떨까? 사용기한이 지난 물건, 더 이상 수리가 되지 않는 물건, 같은 기능을 갖고 있는 중복되는 물건, 유통기한이 지나 먹을 수 없는 식품 등 객관적으로 명확한 '나만의 기준'을 세워서 새해엔 나를 행복하고 편리한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물건으로 공간을 채워 나가길 응원한다.


김현주 정리컨설턴트·하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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