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돌' 이준호는 어떻게 '사극 아이돌'이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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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돌' 이준호는 어떻게 '사극 아이돌'이 됐을까

입력
2022.01.04 13:33
수정
2022.01.04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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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옷소매 붉은 끝동' 열풍 주역 이준호
강직하면서도 소년 같은 이산
가난한 재수생·붕괴 사고 트라우마 청년
무대 밖에서 보여준 '다양한 얼굴들'
"가수 데뷔 못할 뻔" 우여곡절
"중고딩 때 데뷔한 아이돌을 서른 넘어 좋아하게 돼"

사극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정조를 연기한 이준호. '짐승돌'은 이 작품으로 '사극 아이돌'로 거듭나고 있다. MBC 제공

두 번의 거절, 15년 만에 이뤄진 부부의 연 그러나 두 아이의 죽음, 너무 이른 사별. 1일 종방한 MBC '옷소매 붉은 끝동' 남녀 주인공의 이 비극은 2022년 정초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온통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정조와 의빈 성씨의 실제 역사에서 따온 드라마 속 러브스토리는 그야말로 세기의 로맨스였다. 사내는 여인을 연모했지만, 왕으론 사랑할 수 없었다. 왕의 여인으로 살면 자신을 하나둘씩 잃어가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궁녀 출신 성씨는 결국 사랑하는 사내의 옆에서 메마른 얼굴로 스러졌다. 로맨스를 정면에 내세운 '옷소매'는 아이러니하게도 얼마나 제 자리를 지키며 사랑하기가 어려운지를 보여주며 깊은 감동을 전해준다.

왕과 궁녀에게 그리고 지금의 우리에게 사랑은 무엇일까. '옷소매'는 지금도 유효한 이런 질문을 던지며 사극 로맨스의 패러다임을 확 바꿨다. '옷소매'는 시청률 가뭄에 허덕이는 MBC에서 17.4%로 종방했다. 2017년 공유와 김고은 주연의 드라마 '도깨비'(최고 시청률 20.5%)를 연상케 하는 인기다.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의빈 성씨(이세영)와 정조(이준호)의 모습. MBC 제공


이준호의 '뜨거운 청년 이산'

'옷소매' 열풍의 중심엔 이산과 정조를 연기한 이준호가 있다. 이렇게 강직하고 섹시하면서도 소년 같을 수 있다니. 이준호는 어느 누구보다 '뜨거운 이산'을 연기했다. 20~40대 여심은 후끈 달아올랐다. "죽음이어도 상관없어. 오직 너와 함께하는 이 순간을 택할 것이다. 제발 나를 사랑해." 사경을 헤매는 정조가 결국 성씨를 택하며 꿈에서 한 이 말은 이준호를 이산으로 박제했다.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캐릭터가 됐고, 이준호는 '진짜 배우'로 거듭났다.

2014년 그룹 2PM이 '미친 거 아니야?'란 곡으로 활동할 때 모습. 왼쪽 두 번째가 이준호.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준호는 2008년 그룹 2PM으로 데뷔했다. '짐승돌'은 어떻게 사극의 아이돌로 떠오를 수 있었을까.

이준호는 가수 데뷔 당시 무대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그룹에서 곡예에 가까운 고난도 춤을 가장 많이 소화한 '춤꾼'이었지만, 스포트라이트는 다른 멤버인 닉쿤, 택연 등에 향했다.

무대에서 '인상 깊지 않던 얼굴'은 드라마와 영화 등에서 오히려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는 생활력 강한 가난한 재수생(영화 '스물'·2015)으로, 너무 평범해 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하며 범인을 날다람쥐처럼 쫓는 특수 경찰(영화 '감시자들'·2013)로 극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특징 없는 얼굴 속 다양한 표정이 이준호의 무기였다. 고등학교 때 했던 연극반 활동도 자연스러운 연기의 밑거름이 됐다.

배우로서 이준호의 가능성을 알아본 건 '칸의 여왕'이었다. 이준호는 2015년 영화 '협녀, 칼의 기억'에서 무사 율로 출연했다. 그를 감독에게 추천한 이는 다름 아닌 전도연이었다. "율 캐스팅이 안 될 때 감독님께 준호군이 나온 '감시자들' 한번 보시라고 권유했어요. 웃으면 소년 같고 가만히 있으면 서늘하더라고요"(전도연).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에서 이준호의 모습. 붕괴 사고로 다쳐 축구 선수의 꿈을 포기한 극중 강두는 건설현장에서 일한다. 그의 얼굴은 늘 상처투성이다. JTBC 제공


"페이소스가..." 이준호가 부산서 홀로 지낸 이유

'스물'의 이병헌 감독은 이준호를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얼굴"이라고 표현했다. 이준호는 2018년 종방한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에서 백화점 붕괴로 오른쪽 다리에 철심을 박고 사고에서 살아남은 여동생의 생계를 이끄는 청년 이강두를 연기했다. 붕괴 사고 트라우마로 약에 기대 간신히 잠을 청하는 강두는 결국 코피를 줄줄 쏟는다. 이준호는 사고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을 창백하고 헛헛하게 연기해 호평받았다. 본보와 4일 전화로 만난 '그냥 사랑하는 사이'의 김진원 PD는 이준호를 이렇게 기억했다.

"준호를 만나보니 그 특유의 귀여운 눈웃음 뒤 남성적인 느낌이 되게 강했어요. 극중 강두가 소년 시절의 상처로 청년이 돼서도 채 아물지 못한 상처를 지니고 사는 인물이라 사람들이 잘 모르는 준호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준호는 정말 몰입했어요. 인물의 고립감을 가져가기 위해 촬영이 이뤄지던 부산에 한 오피스텔을 잡아 놓고 거의 안 나오고 그랬으니까요. 기본적으로 일 욕심이 많더라고요. 드라마에 쓸쓸한 음악들이 주로 쓰였는데, 그 음악 작업도 준호랑 같이 했어요." 준호는 이 드라마에 삽입된 쓸쓸한 발라드곡 '어떤 말이 필요하니'를 직접 불렀다. 대부분 사람이 이준호를 춤꾼으로만 알고 있지만, 그는 무대에 올라 부르는 노래를 직접 만드는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다. 한국과 일본에 각각 낸 솔로 앨범은 물론 2PM 정규 앨범에 실린 '핸즈 업' 등 9곡의 작사, 작곡도 직접 했다.

이준호는 2017년 방송된 드라마 '김과장'에서 서율 역으로 나와 상대에게 툭 과자를 던진다. 검사 출신으로 그룹 재무 이사 자리에 앉은 캐릭터의 안하무인을 강조하기 위해 그가 직접 낸 아이디어였다. '옷소매'에서 그는 이산일 때와 정조일 때 목소리가 다르다. 나이, 지위에 따라 목소리톤도 변해야 한다는 이준호의 생각이 반영됐다고 한다. '옷소매' 정지인 PD의 말이다.

"쉽게 만족하지 않더라고요. '컷' 하면 다가와 '진짜 잘했냐'고 꼭 물어보고요. 제대 직후라 그런지 자신이 연기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 늘 객관화했어요. 배우가 그렇게 질문하고 감독으로서 제 생각을 말하고, 그렇게 맞춰가는 작업이 즐거웠어요. 촬영 초반엔 대사 톤으로 고민을 많이 했죠. 왕족이니 생활감이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고, 정말 잘 소화해줬고요. 그러다 덕임이와 붙는 장면에선 틈틈이 생활감 있는 말투로 살짝 변화를 주더라고요. 이준호를 배우로 관심 있게 지켜보게 된 계기는 '스물'이었어요. 처음엔 정말 2PM 준호인지 몰랐어요. 너무 느낌이 달랐거든요. 그때 '아, 같이 일해보면 좋겠다' 싶었죠."

2006년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 서바이벌'에서 우승한 이준호. SBS 방송 캡처


"제 아들의 꿈을 너무 잘 알고 있거든요" 모자의 뚝심

소속사에서 준호는 뚝심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그는 애초 가수로 데뷔를 하지 못할 뻔했다. 2006년 SBS '슈퍼스타 서바이벌'에서 6,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우승해 JYP에 연습생으로 들어갔지만, 다른 동료보다 데뷔에서 밀렸다. 이후 슬럼프를 겪었고, 성대결절로 반년 동안 노래를 못했다. 그의 최대 위기였다. 준호를 10여 년 동안 지켜본 JYP 관계자는 "회사에선 전설 같은 얘기로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일"이라고 얘기를 꺼냈다.

"그때 신인개발팀에서 준호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어요. 여러 상황이 좋지 않아 '준호 그만하는 게 어떨까요?'라고 여쭈려고요. 그런데 준호 어머니께서 너무 너무 진심으로 진지하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제 아들한테 그런 얘기를 할 수 없어요. 아들이 꾸고 있는 꿈을 너무 잘 알고 있거든요. 오늘 하신 말씀은 못 들은 걸로 할게요. 제 아들의 다음 스텝을 한 번 더 지켜봐 주세요'라고요. 준호가 그렇게 버텼죠."

'옷소매'에서 혜경궁 홍씨(강말금)는 자식인 이산에게 "산아, 행복해지렴"이라고 말하며 아들이 왕이지만 필부로서 가정을 꾸리는 행복을 느끼길 바란다. '옷소매' 이산 모자의 모습은 현실 속 이준호 모자의 모습과 똑 닮았다.

이준호와 임윤아가 지난달 31일 경기 일산 MBC드림센터에서 열린 '2021 MBC 가요대제전'에서 함께 노래하며 춤을 추고 있다. MBC 제공


"무대 찢는 청년으로만 소비되더니"

이준호는 SNS에 '진심과 진실은 언젠가 통한다'는 글을 올렸다. 그의 좌우명이라고 한다. 그런 이준호의 배우로서의 진심은 연기 데뷔 8년 만에 꽃봉오리를 피우고 있다.

사극은 배우들이 연기하기에 쉬운 작품이 아니다. 권위와 보수적인 모습으로 멜로를 연기해야 하고, 정치적 야망뿐 아니라 액션 연기도 선보여야 한다. "줄곧 무대 찢는 아이돌과 청년으로 소비된 이준호는 '옷소매'를 만나 그 벽을 뛰어넘고 다양한 얼굴을 보여줬다"(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작품 속 기존 이산과 달리 재기발랄한 모습을 순간순간 잘 보여줘 경쾌함을 준 데다 결기 어린 모습을 잘 엮어 이준호만의 이산을 만들기도 했다"(공희정 드라마평론가).


"제 유튜브가 준호로 지배당했어요"

이런 이준호에 요즘 20~40대 반응은 뜨겁다. 정영인(23)씨는 "'옷소매'에서 연기도 잘했지만, 자기가 직접 오디션 보러 다니고 배역을 땄다고 들어서 열심히 사는 모습에 한 번 더 반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씨는 준호가 13년 동안 활동하며 곳곳에 뿌려둔 '떡밥'을 회수하고 있다. '우리 집'의 역주행을 주도한 2PM 멤버, 91회에 달하는 일본 단독 공연에서의 솔로 가수, '와일드 바니' 등 예능에서 보여준 털털한 청년 등 저마다 색다른 준호의 모습 발굴이다.

정혜린(25)씨는 "처음엔 '우리집 가자고 끼부리던 아이돌이 무슨 정조냐'란 생각에 우려가 컸는데, 막상 보니 너무 연기를 잘하고 정조와 이미지도 잘 맞아 놀랐다"며 "좋은 발성도 의외였고, 2PM과 다른 반전 매력에 더 끌렸다"고 말했다. 정씨의 유튜브는 알고리즘을 타고 온 준호 관련 영상으로 지배당했다. 한소리(31)씨는 "또래 친구들끼리 '우리가 중고딩 때 데뷔한 아이돌을 서른이 넘어서 좋아하게 되다니'라며 다들 신기해하고 있다"며 웃었다.


양승준 기자
이현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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