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한강물 다 메워 집 지으면 '지방수저'도 서울에 집 살 수 있을까요?"

입력
2022.01.03 04:30
수정
2022.01.03 13:41
5면
0 0

[집값, 다음 대통령은 잡을 수 있나요]
<상>부동산에 저당잡힌 인생
지방청년 3명이 말하는 '나에게 부동산이란'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동작구의 옥탑방에서 여진솔씨가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한지은 인턴기자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동작구의 옥탑방에서 여진솔씨가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한지은 인턴기자

'8억5,500만 원'.

지난해 11월 한국부동산원 기준 서울(11억4,800만 원)과 지방(2억9,300만 원)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 격차다. 단순 계산으로 지방에 살던 사람이 서울로 올라와 내 집을 사려면 무려 8억5,000만 원이 더 필요하다. 2017년에 서울과 지방의 집값 차이는 4억5,000만 원이었는데, 5년 만에 4억 원이 더 불었다.

인간에게 '의식주'가 필수적이라지만 요즘처럼 집이 삶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 적은 없었다. 사는 동네에 따라 신분이 결정되고, 집이 없으면 인생의 실패자로 전락하는 세태다. 그러니 "집, 집, 집"을 부르짖는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대신 "올해는 꼭 집 사세요"가 덕담이 된 2022년. 큰 꿈을 품고 상경한 지방 출신 청년들에게 서울의 집은 감히 넘볼 수 없는 다른 세상 이야기다.

생애 첫 자취방은 반지하, 지금은 옥탑방... 21세 대학생의 상경일기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동작구의 옥탑방에서 여진솔씨가 서울의 집값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한지은 인턴기자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동작구의 옥탑방에서 여진솔씨가 서울의 집값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한지은 인턴기자


"처음엔 300만 원이면 그래도 괜찮은 원룸을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헛된 기대였어요. 서울 집값은 제가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비싸더라고요."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2학년 여진솔(21)씨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여진솔(21)씨는 경남 사천시에서 나고 자랐다. 열아홉 살이던 2020년, 대학 진학과 함께 서울에 올라왔다. 그의 첫 자취방은 학교 근처의 반지하 하숙집.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40만 원의 예산으로는 망가진 방충망에 천장 곳곳에 곰팡이가 핀 반지하가 최선이었다.

학비는 학자금 대출로 해결했지만 생활비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었다. 여씨는 매 주말마다 일용직으로 일했다. '노가다' 한 번에 10만 원은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렇게 매달 50만 원을 벌어 생활비를 충당했다.

월세를 한 푼이라도 아끼려 옮긴 곳이 지난해 1월부터 살고 있는 서울 동작구 흑석동의 3층 옥탑방이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60만 원짜리 23㎡(약 7평) 남짓한 방. 동아리 선배와 월세를 나눠 내며 함께 산 지 벌써 1년이다. 옥탑방인 탓에 겨울바람을 그대로 맞는데 올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그가 보여준 통장 잔고는 '2만5,000원'. 올해부터 정부는 여씨 같은 무주택 청년에게 매달 월세 20만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월세지원사업에 대해 알고 있는지 묻자 "전혀 몰랐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정부가 청년을 위한 부동산 정책을 많이 내놓는다고 하는데, 주변에 그 혜택을 봤다는 친구를 본 적이 없어요. 유용한 정보는 20대가 많이 사용하는 카카오톡 알림으로 알려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여씨는 올해 군에 입대한다. 가장 큰 이유는 '돈'. 더 이상 부모님에게 기댈 수 없기 때문이다. 해군에 지원한 이유도 배에 타면 조금이라도 월급(생명수당)을 더 받을 수 있어서다. 전역 후에는 몇 달 동안 어선을 탈 계획인데, 그렇게 모은 돈을 졸업까지 자취를 위한 보증금과 월세로 사용할 생각이다.

"주변에 부잣집에서 태어나서 아버지 건물에 살거나, 전세로 오피스텔에 사는 친구들을 보면 '현타(현실 자각 타임)' 올 때가 있어요. 우스갯소리로 한강물을 다 메우고 아파트를 지으면 언젠가 저도 서울에 집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빚 갚느라 흘러간 20대 "대출도 어려운 프리랜서, 내 집 마련은 머나먼 꿈"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도봉구의 청년 창업인용 임대주택 '도전숙'에서 김윤지씨가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한지은 인턴기자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도봉구의 청년 창업인용 임대주택 '도전숙'에서 김윤지씨가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한지은 인턴기자


주변에서는 대출받아서, '영끌'해서 부동산에 투자한다는데...저는 '생계형' 대출이라 다른 세상 이야기 같아요.

프리랜서 김윤지(32)씨

프리랜서 김윤지(32)씨는 해보지 않은 아르바이트가 없는 '만능 재주꾼'이다. 빚을 갚기 위해 서비스센터 상담원부터 고깃집 서빙, 호프집 아르바이트, 헬스장 데스크, 병원 상담실장까지 경험한 직종만 수십 개다.

1990년생인 그도 경남 사천시에서 태어났다. 집안 형편으로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09년 충남 아산시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꿈꿔왔던 독립이었지만 기대와 달리 공장 일이 맞지 않았다. 또래에 비해 목돈을 벌 수 있었지만 잦은 교대 근무에 건강이 안 좋아졌다. 불면증으로 고생했고 병가도 잦았다. 동료 5명과 한 공간에서 지내야 하는 기숙사 생활도 고역이었다. 하고 싶었던 공부, 하고 싶었던 일에 대한 아쉬움도 컸다.

"조금만 더 있다가는 영원히 퇴사를 못할 것 같았어요. 삼성에 다니는 4년 반 동안 모은 돈이 2,000만 원이었는데, 빚도 갚고 매달 고향으로 아버지와 동생에게 돈을 보내주고 나니 그게 전부더라고요."

사표를 내고 무작정 서울에 갔다. 첫 정착지로 선택한 곳은 관악구 신림동이다.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 20만 원짜리 원룸. 그나마 월세가 저렴하다는 신림동이었지만, 아산시(500만 원)와 비교하면 보증금이 4배나 더 비쌌다. 크기는 절반이라 한 몸 뉘이면 방이 가득찰 정도로 좁았다.

"중개업소에 더 싼 데를 요청하면 주변 환경이 음침해서 무섭거나, '여기서 살 수 있나' 생각이 들 정도로 낡고 오래된 지하방이었죠. 안전이 가장 중요하니까 선택지가 많지 않더라고요. '이 정도면 살 만하다'는 집들은 너무 비쌌어요."

이후 매달 월세 내랴 빚 갚으랴 '투잡'은 기본이었다. 프리랜서는 은행 대출이 안 돼 제4금융권을 찾을 때도 있었다. 이자 부담도 컸다. 닥치는 대로 일했다. 어렵게 번 돈으로 자격증을 따며 공부를 했다. 그간 취득한 자격증만 20개. 늦은 나이에 사이버대학에서 실버산업을 전공하고 있는 김씨는 현재 '온앤인에듀케이션'이라는 1인기업의 대표다. 복지관 등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치매예방과 신체활동 등의 교육을 한다.

김씨가 현재 살고 있는 곳은 서울 도봉구 도봉동의 '도전숙'. 도전숙은 서울주택도시공사(SH)와 도봉구가 주거 기반이 취약한 청년 창업인을 위해 주변보다 30~50% 저렴한 임대료로 공공임대주택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덕분에 지금껏 내온 월세 중 가장 저렴한 18만2,000원으로 여태 살아보지 못한 가장 넓고 쾌적한 집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또래에 비해 모은 돈도, 안정적인 직장도 없는 탓에 결혼 시기는 점점 미뤄지고 있다.

"운이 좋았어요. 친구가 '한번 지원해보라'고 얘기해주지 않았다면 이런 게 있는지도 몰랐을 거고, 아마 집을 못 구해서 지하방에 살고 있겠죠. 앞으로가 걱정이에요. 도전숙 거주 가능기간이 최대 6년이거든요. 청약통장도 얼마 전 다시 만들었어요. 빚을 갚아야 해 매번 깨고 다시 만들기를 반복했어요. 지금은 매달 2만 원씩 넣어요. 올해 목표요? 이번엔 청약 깨지 말고 꼬박꼬박 넣기요."

'8전9기' 청약당첨 새신랑 "요즘 신혼부부, 집 크기에 맞춰 자녀 계획"

임대환씨가 지난달 26일 경기 과천시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임대환씨가 지난달 26일 경기 과천시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청약에서 8번이나 떨어지고 난 후에는 '안 될 놈은 뭘 해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청년재단 정책기획팀장 임대환(35)씨

청년재단에서 정책기획팀장으로 일하는 임대환(35)씨는 올해로 서울살이 11년 차다. 4년 전 결혼해 알콩달콩 신혼을 즐기고 있어야 할 임씨지만 요즘 관심은 오직 '부동산'이다.

경남 김해시가 고향인 그는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2012년 취직과 함께 서울에 터를 잡았다. 첫 자취방은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40만 원짜리 관악구 신림동의 10㎡(3평) 원룸.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계약직' 연구원이었는데, 월급은 세후 130만 원이었다. 소득의 절반 가까이가 매달 주거비로 나갔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다르지 않았다.

목표를 '전세'로 상향했다. 돈을 악착같이 모아 2018년 구한 첫 전셋집은 동작구 대방동의 보증금 8,000만 원짜리 원룸이었다. 서울에 사는 친구들이 주말에 쉴 때 임씨는 전셋집을 보러 다녔다.

"전세보증금 때문에 처음으로 4,500만 원이라는 큰돈을 은행에서 대출받았어요. 그런데 대출의 벽이 되게 높더라고요. 전세대출에는 집주인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 것도 몰랐고, 대출하는 사람도 고객인데 은행 직원은 불친절했어요. 그래도 기뻤어요. 그때만 해도 전세는 '안정적'이라는 생각이 강했거든요."

'내 집'의 중요성을 절감한 건 지난해다. 임씨는 2018년 11월 결혼 후 경기 군포시의 한 구형 아파트에서 전세보증금 2억 원으로 신접살림을 시작했다. 당시 집주인은 '갭투자자'였다. 임씨가 낸 보증금에 7,000만 원을 더해 2억7,000만 원에 집을 샀다. 그런데 단 1년 만에 그 아파트가 5억 원까지 뛰었다.

"숨이 턱 막히더라고요. 근로소득으로는 부동산소득을 따라잡을 수 없는 세상이 됐다는 게 실감이 됐어요. '오르는 전셋값을 나와 아내의 월급으로 따라갈 수 있을까', '집값이 더 오르면 어디까지 밀려나야 할까' 하는 불안감도 커졌고요."

이후 부동산 공부에 몰두했다. 청약 당첨을 위해 지난해 경기 과천시의 한 다세대주택으로 이사까지 감행했다. 임씨는 이를 '몸테크'라고 불렀다. 9번째 청약 도전 끝에 최근 진행된 3기 신도시 사전청약에서 과천 주암지구 신혼희망타운 전용 55㎡에 당첨됐다.

"애초에 매매는 선택지조차 아니었어요. 저 같은 사람에겐 청약이 유일한 기회니까. 아이는 하나만 가질 생각입니다. 요즘 신혼부부들은 집 크기에 맞춰 자녀 계획을 세우는데, 55㎡는 크다면 크지만 작다면 작은 집이거든요."

지난달 26일 경기 과천시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임대환씨가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지난달 26일 경기 과천시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임대환씨가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이승엽 기자
최다원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