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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서 사라진 한국 호랑이, 되살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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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서 사라진 한국 호랑이, 되살릴 수 있을까

입력
2021.12.29 11:10
수정
2021.12.29 11:3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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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동물원 한국 호랑이 중 순수혈통은 일부
동물원, 개체수 집착 말고 진정한 종 보전 힘써야
한국 호랑이, 러시아 야생 호랑이와 같은 아종
정부, 서식지 내·외 한국 호랑이 보전 나서야

경북 봉화군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지내고 있는 한국 호랑이 한청. 올해 열여섯이 된 한청은 2017년 서울대공원에서 이곳으로 이송됐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제공

경북 봉화군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지내고 있는 한국 호랑이 한청. 올해 열여섯이 된 한청은 2017년 서울대공원에서 이곳으로 이송됐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제공

올해 5월 대전 중구 대전오월드에서 한국 호랑이 '미령이'가, 6월에는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에서 한국 호랑이 5남매인 '아름', '다운', '우리', '나라', '강산'이 태어났다. 사람들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인 한국 호랑이의 탄생을 '귀하신 몸이 태어났다', '경사 났다'며 반겼다. 더욱이 임인년(壬寅年) 검은 호랑이의 해를 앞두고 호랑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호랑이들이 세계적으로 순수혈통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종 보전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의미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 17곳의 동물원∙수족관에서 사육하는 한국 호랑이는 45마리다.

과거 한반도와 중국 동북부,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살았던 한국 호랑이는 일반적으로는 시베리아 호랑이, 학술적으로는 아무르 호랑이, 우리나라에선 한국 호랑이, 백두산 호랑이로 불린다. 국내에서 사육되는 한국 호랑이 가운데 세계적으로 순수혈통으로 인정받는 호랑이는 서울대공원에 사는 12마리 가운데서도 일부에 불과하다. 서울대공원이 2018년 6월 새끼 호랑이 네 마리를 출산하면서 유독 순수혈통을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다.

호랑이 종 보전, 순수혈통만이 의미 있나

2018년 서울대공원에서 순수 혈통 한국 호랑이 '펜자'가 남편 '조셉'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새끼 호랑이 4마리를 품고 있는 모습. 서울대공원 제공

2018년 서울대공원에서 순수 혈통 한국 호랑이 '펜자'가 남편 '조셉'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새끼 호랑이 4마리를 품고 있는 모습. 서울대공원 제공

전 세계적으로 남은 야생 한국 호랑이의 수러시아 극동 지역에 살고 있는 500여 마리에 불과하다. 때문에 전 세계가 한국 호랑이의 종 보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한국 호랑이의 순수혈통은 '세계동물원수족관협회'(WAZA)가 관리하는 '국제 호랑이 혈통서'(International tiger studbook)에 등록된 개체만 인정된다. WAZA가 지정한 혈통 담당 기관인 독일 라이프치히 동물원이 혈통서, 즉 호랑이 족보를 가지고 순수혈통으로 인정된 개체들끼리 교환하고 교배시키며 개체수를 조절한다.

혈통서에 등록되어 있다고 해서 다 번식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번식시설과 인력을 갖춘 환경에서 유전적 가치가 있는 개체들의 번식을 허용하는 방식이다. 한국 호랑이와 표범 보전을 위한 민간단체인 범보전기금을 이끄는 이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혈통서를 통해 해당 개체가 어느 지역, 어느 호랑이의 후손임을 알 수 있다"며 "전 세계 주요 동물원이 등록한, 가장 신뢰성 있는 제도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에버랜드의 한국 호랑이 태범(오른쪽)과 무궁이 남매는 올해 9월 또 다른 호랑이 다섯 마리가 태어나면서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 2년간 맡겨졌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제공

에버랜드의 한국 호랑이 태범(오른쪽)과 무궁이 남매는 올해 9월 또 다른 호랑이 다섯 마리가 태어나면서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 2년간 맡겨졌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제공

반면 국내 동물원에서 과거 사육됐거나 현재 살고 있는 대부분의 호랑이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외곽에 있는 호랑이 인공번식 사육기지 동북호림원 등 해외 동물원에서 들여와 교배시킨 비순혈 개체들이다. 특히 중국 호랑이 가운데 혈통서에 등록된 개체는 하나도 없다. 이곳에선 어떤 개체끼리 교배했는지 등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학계에선 이를 종 보전 활동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2001년 5월 16일에 태어나 스무 해를 살고 지난해 12월 20일 경북 봉화군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세상을 떠난 한국 호랑이 '두만'.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제공

2001년 5월 16일에 태어나 스무 해를 살고 지난해 12월 20일 경북 봉화군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세상을 떠난 한국 호랑이 '두만'.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제공

'고등학생의 국내 동물원 평가 보고서'의 저자이자 현재 사육곰 보호단체 곰보금자리프로젝트에서 활동 중인 최혁준씨는 "국내 동물원들은 그동안 해외에서 들여온 소수의 비순혈 호랑이들을 근친 교배시키는 방식으로 수를 늘리고, 늘어난 개체는 다른 동물원으로 보내는 행위를 되풀이해왔다"며 "혈통 검증이 되지 않은 호랑이 개체들 사이에서 새끼만 낳게 하는 건 개체의 복지에도, 종 보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도 "종 보전은 개체수만 늘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서식지 외 보전 역할을 해야 하는 동물원들은 계획과 기준을 세우고 번식을 해야 하는데 국내 대부분의 동물원들은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야생 한국 호랑이, 보전을 위한 방안은


20세기 이후 한국 호랑이 서식 영역. 이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 제공

20세기 이후 한국 호랑이 서식 영역. 이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 제공

야생 한국 호랑이는 한반도에서는 사라졌지만 러시아에는 500여 마리가 남아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한국 호랑이와 러시아에 현존하는 호랑이는 같은 아종일까. 이항 교수팀은 2012년 미국과 일본 자연사박물관에 보관돼 온 100년 전 한국 호랑이 표본 시료를 입수해 유전자 분석을 한 결과 한국 호랑이와 시베리아에 현존하는 호랑이의 유전자 염기서열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한 바 있다.

호랑이는 지리적 분포와 형태적 특성에 따라 모두 9개의 아종으로 분류되는데, 3개 아종은 멸종했고 남중국 호랑이는 동물원에서만 볼 수 있어 5개 아종만이 야생하고 있다. 이 가운데 러시아 극동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시베리아 호랑이와 지금은 사라진 한국 호랑이가 같은 아종에 속한다는 사실이 유전자 분석을 통해 확인된 것이다.

12월 22일 러시아 야생국립공원인 ‘표범의 땅’(Land of the Leopard National Park)에서 목격된 한국 호랑이. 한반도에 살았던 한국 호랑이와 러시아에 사는 호랑이는 유전자 염기서열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표범의 땅 유튜브 캡처

12월 22일 러시아 야생국립공원인 ‘표범의 땅’(Land of the Leopard National Park)에서 목격된 한국 호랑이. 한반도에 살았던 한국 호랑이와 러시아에 사는 호랑이는 유전자 염기서열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표범의 땅 유튜브 캡처

때문에 러시아에 남은 호랑이 개체군의 보전이 한국 호랑이를 지키는 최선의 길이라고 학계와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러시아 정부는 2012년 연해주 지역에 표범, 한국 호랑이 등의 보전을 위해 2,799㎢ 규모의 야생국립공원인 '표범의 땅'(Land of the Leopard National Park)을 설립했다. 이곳에는 한국 호랑이 50여 마리가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범보전기금은 표범의 땅과 양해각서(MOU)를 맺고 호랑이 유전자 분석기법을 전수하고, 내년 1월 연구원을 파견해 유전자 추출과 분석 연구에 협력하기로 했다.

이항 교수는 "미국은 흰머리수리, 중국은 판다 등 국가를 상징하는 동물들을 보전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엄청난 노력을 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호랑이를 홀대하고 있다"며 "정부는 이제라도 동물원들이 무분별한 번식에서 벗어나 혈통 보전과 교육 등 서식지 외 보전 역할에 충실하도록 지원하고, 호랑이 종 보전에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고은경 애니로그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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