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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력의 시대, 자신과 타인 사이 간극을 좁히려 애쓰는 작가의 사명"

입력
2022.01.0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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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부문 심사평

김솔(왼쪽부터) 소설가, 백지연 문학평론가, 이광호 문학평론가, 손보미 소설가, 최윤 소설가가 2022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심사를 하고 있다. 한지은 인턴기자

김솔(왼쪽부터) 소설가, 백지연 문학평론가, 이광호 문학평론가, 손보미 소설가, 최윤 소설가가 2022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심사를 하고 있다. 한지은 인턴기자


대유행병이 창궐한 사회는 인력 대신 척력으로 유지된다. 강제로 격리된 인간은 낯선 고독을 견디기 위해 고양이와 죽은 친구와 도망친 어머니와 이주 노동자, 편의점과 게임방과 반지하방과 우주선을 중얼거린다. 기억과 상처, 상실에 대한 사족은 넘치지만 관계와 욕망, 전망에 대한 징후는 희미하다. 말하기의 절반은 듣기일 텐데,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타인을 명확히 상상하지 못해 결말은 어색해지고 말았다. 육화되지 않은 상상력은 손에 움켜쥔 모래와 같다.

마스크를 쓴 채 605편의 원고를 읽으면서 심사위원들은 2022년 1월1일자 신문을 기다리고 있을 독자들을 상상했다. 그들에겐 위로나 격려보다는 방편이 필요한 게 아닐까.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점심 도시락을 먹을 땐 마치 낯선 자의 결혼식에 홀로 참석한 것 같아 쓸쓸했다. 사금파리처럼 빛나던 다음 3편의 원고들은 그 쓸쓸함을 증명할 알리바이다.

'파노라믹 랜드스케이프'는 1940년 4월 1일생인 조안나 벨의 일대기를 마치 파노라마 모드로 찍은 사진처럼 전개한다. 록 밴드의 보컬로 유명해진 뒤 멤버들과의 갈등을 겪으면서 그녀는 등락을 거듭한다. 바닥에서 간신히 일어서려는 순간 운명은 그녀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도망친다. 롤링스톤 잡지의 특집기사를 읽는 듯 한 속도감과 몰입감은 큰 장점이었으나, 기시감 너머의 잔상이 오래 남지 않았다.

'햇볕이 머문 자리'에는 장마로 물이 넘친 반지하방에서 김장용 비닐을 깔고 누운 두 명의 청춘 남녀가 등장한다. 맹장염으로 죽은 자는 탈북민이고 그를 사랑한 자는 보육원 출신이다. 산 자는 ‘별똥별 기차’라는 유튜브의 운영자를 찾아가 죽은 자의 유산을 확인한다. 노트북 속의 기차가 빔프로젝트를 통과해 밀실의 검은 벽 속으로 달려간다. 황망한 결론 부분을 제외하면 등장인물의 감정에 깊이 이입할 수 있었다.

'바둑 두는 여자'는 어린이 글방을 폐업하고 전직 교장의 자서전을 대필하게 된다. 아내와 사별하고 딸에게마저 버림받은 교장은 여자와 바둑을 두면서 딸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자서전에 담으려 한다. 다리를 다친 교장을 대신하여 여자는 바둑 수업에 참석하고, 교장은 여자의 이름으로 바둑 수업을 등록해 주는데 여자는 교장의 딸로 오해받는다. 교장의 갑작스런 부음을 들은 여자는 그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를 읽는다. 주제의식은 시의적절 했지만, 문장과 결론은 다소 밋밋했다.

3편의 작품 모두 흠결을 가려줄 미덕이 부족했으므로 심사위원들의 토론은 길어졌다. ‘매끈하지만 미지근한 작품’과 ‘엉성하지만 매력적인 작품“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전자에 박수를 쳐주기로 결정했다. 척력의 시대에 자신과 타인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작가의 사명을 보았기 때문이다. 작품의 교졸을 의심받을 수 있어도 세계와 인간에 대한 태도와 신념을 타협할 순 없다.

그리하여 '바둑 두는 여자'와 그 작품을 쓴 작가는 2022년 1월 1일의 행복을 마음껏 누리시길. 그리고 '파노라믹 랜드스케이프'와 '햇볕이 머문 자리'의 작가들에게도 올해가 지나가기 전에 행운이 찾아가길 희망한다.

김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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