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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와 대화하며 영혼의 진실을 밝힌 문서감정가

입력
2021.12.27 04:3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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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 타이텔(Pearl L. Tytell, 1917.8.29~2021.9.26)

1951년 미국 뉴욕서, 알려진 바 최초의 민간 문서 감식 전문 법과학연구소를 개설해 활약한 펄 타이텔이 별세했다. 그는 타이프라이터 전문가인 남편 마틴과 함께 그 분야의 드문 여성 전문인으로서 20세기 중반 이후 굵직굵직한 사건과 재판에 증인으로 활약했고, 그의 권위와 압도적인 증언 퍼포먼스 덕에 그가 판정하면 '재판 전 합의'로 사건이 종결되는 예도 많았다. 그는 "나는 손 글씨와 타이프라이터, 잉크와 종이가 들려주는 말을 듣는다"고 말했다. 가족 사진(NYT).

1951년 미국 뉴욕서, 알려진 바 최초의 민간 문서 감식 전문 법과학연구소를 개설해 활약한 펄 타이텔이 별세했다. 그는 타이프라이터 전문가인 남편 마틴과 함께 그 분야의 드문 여성 전문인으로서 20세기 중반 이후 굵직굵직한 사건과 재판에 증인으로 활약했고, 그의 권위와 압도적인 증언 퍼포먼스 덕에 그가 판정하면 '재판 전 합의'로 사건이 종결되는 예도 많았다. 그는 "나는 손 글씨와 타이프라이터, 잉크와 종이가 들려주는 말을 듣는다"고 말했다. 가족 사진(NYT).

코난 도일의 단편 '신랑의 정체(A Case of Identity)'는 타이프라이터를 모티브로 한 최초의 추리소설로 꼽힌다. 의붓딸의 유산을 노린 양아버지가 딸의 결혼을 막기 위해 멋진 청년으로 변장해 딸에게 청혼한 뒤 자취를 감춰버리는 사건. 셜록은 '청년'의 타이프라이터 편지를 분석해 그의 정체를 밝혀낸다.
"타자기 활자에도 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처럼 분명히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답니다. 신제품 타자기가 아니면, 같은 기종이라 하더라도 찍힌 활자가 똑같을 수가 없지요. 어느 활자가 다른 활자보다 유난히 닳았다든가, 비뚤어졌다든가 하기 때문입니다.(...) e자는 모두 머리 쪽이 희미하고, r자는 꼬리가 문드러져 있군요. 그 밖에도 14군데의 특징을 알아냈습니다만, 이 두 활자의 특징은 누가 봐도 명백합니다" 셜록은 "가까운 장래에 타자기와 범죄의 관계에 대한 논문을 쓸 예정"이라고도 했다.
저 작품이 수록된 '셜록 홈즈의 모험'은 1891년 출간됐다. 재봉틀을 만들던 레밍턴사가 특허권(1868)를 사들여 첫 모델 타자기를 출시(1873)하고, 올리베티 언더우드 등의 경쟁 모델이 잇따라 등장해 타자기가 손 글씨를 빠르게 대체해가던 무렵이었다. 셜록이 비록 논문은 쓰지 않았지만 그의 통찰은 예언처럼 적중했고, 타자기는 워드프로세서와 퍼스널컴퓨터가 대중화한 1980년대까지 약 100년간 문서 위조 등 화이트범죄의 주요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타이핑 문서는 필적 감정과 더불어 범죄과학수사의 한 장르로 자리잡았고, 더불어 수많은 셜록의 후예들도 등장했다.

타이프 소리로 아침이 열리던 시절

20세기 뉴욕의 아침은 철컥철컥 타자기 키들이 먹지를 두드려대는 소리로 시작됐고, 메이저 브랜드들의 신제품 타자기 전시장이 밀집해 있던 파크플레이스와 레너드 스트리트 사이의 이른바 '타이프라이터 거리(Typewriter Row)'는, 근년의 스마트기기 신제품 열기처럼, 최신 상품을 보려는 이들로 북적거렸다. '타이프라이터 거리'라는 제목의 책을 쓴 작가 마이클 브라운은 그 무렵 그 거리를 오늘날의 실리콘밸리에 비유했고, '놀라운 글쓰기 기계(The Wonderful Writing Machine,1954)'의 작가 브루스 블리븐 주니어는 "점심 때면 거리로 몰려나온 직장인들이 타이프라이터와 관련된 최신 이슈들을 화제 삼아 수다를 떨곤 했다고 썼다.

1933년, 뉴욕의 만 20세 청년 마틴 타이텔(Martin Tytell, 1913~2008)이 로맨해튼 풀턴스트리트에 '타이텔 타이프라이터 컴퍼니'를 차렸다. 러시아 유대인 이민자 아들로 태어나 잡다한 부품가게에서 노동하며 성장한 그는 10대 전부터 연필보다 드라이버에 익숙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교무실 전화 당번을 하던 중 교사들이 없는 틈에 언더우드 타자기를 분해했다가 수리공이 와서 고치는 걸 보면서 타자기 세계에 입문했고, 고교를 마치기도 전에 수리 기사 자격증을 획득했다.
타자기 자판 개수와 배열도 표준화되기 전이었고, AS란 개념도 존재하지 않던 때였다. 반면에 초기 타자기들은 부품-조립 불량으로 말썽을 빚기 일쑤였다. 못 고치는 타자기가 없다는 소문이 나면서 그의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뤘고, 그는 연중 무휴 가게에서 살다시피 하면서도 일 자체를 사랑했다. 도로시 파커 같은 시인과 전설적 저널리스트 해리슨 솔즈베리, 군인 정치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등 내로라하던 당대 타이프 유저들이 그의 가게를 찾곤 했다고 한다. 수리업으로 시작된 그의 사업 영역은 중고 매매와 장단기 임대, 자판 등 부품 주문제작 등으로 점점 넓어졌다.
2차대전 전시에는 타자기 회사들도 군수품 생산기지로 재편됐다. 그는 군 합동 정보기관인 전략사무국(OSS, CIA 전신)에 소속돼 압수한 밀수품 타자기 자판을 17개 전장의 현지 알파벳으로 개조해 현장 요원들에게 공수하는 임무를 맡았다. 2001년 은퇴하기까지 약 70년간 그가 타자기로 개조한 언어는 페르시아어, 세르보-크로아티아어, 태국어, 한국어, 버마어, 콥트어, 산스크리트어와 고대 그리스어 등 145개에 달했고, 박물관 큐레이터를 위한 상형 타자기, 작곡가를 위한 악보용 타자기도 제작했다. 전후에는 상이군인용 외팔 타자기를 개발해 보급했고, 일반 타자기를 변형해 아랍어나 히브리어처럼 글쓰기 방향이 반대(오른쪽--왼쪽)인 타자기도 제작했다. 만년의 그는 "뉴욕의 타이프라이터 씨(Mr. Typewriter, N.Y)"로 통해, 봉투에 저렇게만 써도 편지가 배달될 정도였다고 한다.

미국 뉴욕의 '타이텔 문서감정 연구소'에서 현미경으로 보이는 문서 감정 장비를 만지며 남편 마틴과 대화하는 펄 타이텔. 가족사진(NYT)

미국 뉴욕의 '타이텔 문서감정 연구소'에서 현미경으로 보이는 문서 감정 장비를 만지며 남편 마틴과 대화하는 펄 타이텔. 가족사진(NYT)

마틴이 아내 펄 타이텔(Pearl Lily Tytell, 1917~2021)을 만난 것도 타자기 덕분이었다. 1938년, 장비 임대계약을 위해 한 회사에 들렀다가 펄을 보고 한눈에 반한 거였다. 유럽 유대인 이민자의 딸로 맨해튼에서 태어난 펄은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직해 회계원으로 일하던 중이었다. 즉석에서 펄에게 저녁 식사를 제안했다가 퇴짜 맞은 마틴은 다음날 와서는 "나랑 함께 일하면 당신과 결혼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훗날 펄은 "전혀 동하지 않는 프로포즈(no inducement)였다"고 했지만, 첨단 분야의 유능한 기술자이자 사업가인 마틴이 그리 싫지는 않았던지 둘은 43년 결혼했다. 마틴-펄 타이텔 부부는 일과 삶의 파트너로서 65년을 해로하며 1남1녀를 낳았다.
1948년 '앨저 히스(Alger Hiss, 1904~1996) 사건'이 터졌다. 루스벨트 시절 유엔 창설에도 간여한 국무성 고위 관료였던 히스가 소련 첩자라는 충격적인 고발이 한 전향 간첩(Whittaker Chambers)의 의회 '비미활동조사위원회' 진술로 제기된 거였다. 히스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 비밀 문건의 타이핑 특징이 그의 타자기 특징과 일치한다는 게 결정적인 물증이었다. 히스의 변호인단은 마틴에게 도움을 청했고, 마틴은 50년 문제가 된 문건의 타이핑 특징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타자기를 만들어 의회에서 시연해 보임으로써 무고의 가능성과 재심 청원의 근거를 제공했다. 당시는 매카시즘이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재심 청구는 기각됐지만 히스는 54년 석방됐다.

민간 최초 문서감정 법과학연구소를 열다

저 사건 직후 아내 펄은 타이핑과 자필 문서 감정, 종이-잉크 등의 식별을 위한 전문가 과정을 이수, 51년 남편 사무실 간판 옆에 '타이텔 문서감정(Questioned Document) 연구소'란 간판을 걸었다. 각종 문건의 조작-위조 여부를 분석하는, 민간 최초 법과학연구소인 셈이었다. 펄이 타자기 수리 견습공 지위를 벗고, 남편 업무를 보완하며 감식 분야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어엿한 파트너가 된 셈이기도 했다. 하드웨어에 대한 독보적인 이해에 법과학적 지식까지 갖추면서 부부의 사업은 점차 타이프 수리-렌탈업에서 감식업으로 또 한 번 확장됐다. 부부는 80년대 초 한 해
평균 200여 건의 감식 의뢰를 받았다.

자신을 러시아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2세의 친딸 아나스타샤라고 주장한 유지니아 스미스(왼쪽), 오른쪽 위 사진은 스미스가 63년 자서전에 쓴 서명이고, 아래는 아나스타샤의 친필 편지 일부다. 위키피디아 사진 편집.

자신을 러시아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2세의 친딸 아나스타샤라고 주장한 유지니아 스미스(왼쪽), 오른쪽 위 사진은 스미스가 63년 자서전에 쓴 서명이고, 아래는 아나스타샤의 친필 편지 일부다. 위키피디아 사진 편집.


1963년 유지니아 스미스(Eugenia Smith, 1899~1997)란 여성이 '러시아 아나스타샤 니콜라예브나 전하의 자서전'이란 책을 출간하며 자신을 러시아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2세의 딸 아나스타샤 공주라고 주장했다. 일가족 전원이 1918년 볼셰비키에 의해 총살된 것으로 알려진 로마노프 왕가의 직계가 생존해 있다는 소식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펄은 잡지 '라이프'의 요청으로 아나스타샤의 원본 필적과 스미스의 대조본을 감정, '명백히 다른 사람의 글'이라고 판정했고, '라이프'는 그해 10월 18일자 커버스토리로 그 사실을 보도했다. 2007년 유해 DNA 감식 결과 아나스타샤 공주도 살해된 것으로 확인됐다.

1972년 통일교 총재 문선명(1920~2012)의 소득세 미신고-탈세 사건 때는 서명 필적의 시기별 변화를 분석해 문 총재의 수표 서명 시점이 변호인단의 주장과 다르고, 회계 서류 용지의 미세한 문양이 문서에 기재된 시기에 생산된 종이가 아니라는, 다시 말해 문서가 사후 조작됐다는 결정적인 사실을 법정에서 증언했다. 1982년 맨해튼 지방법원은 문 총재에게 징역 1년 6개월형(11개월 수감)과 벌금 2만5,000달러를 선고했다.

판결에 앞서 펄의 판정이 있었다

작가 클리퍼드 어빙(Clifford Irving, 1930~2017)이 은둔 재벌 하워드 휴즈의 동의와 협조를 받아 쓴 책이라며 72년 출간한 '하워드 휴즈 자서전'을 두고 휴즈가 사기 혐의로 어빙 등을 고소한 사건에서도 펄은 휴즈의 동의 서명 등이 위조된 사실을 밝혔다. 그는 선거 시즌이면 브롱크스와 맨해튼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부재자투표 용지의 서명과 봉투의 서명이 일치하는지, 즉 대리 투표 여부를 확인하는 일을 도맡아 했다. 물론 그와 유사한 일을 하던 솜씨 있는 이들도 더러 있었지만 여성은 그가 유일했고, 특히 법정 증인으로서 그의 퍼포먼스는 가히 독보적이었다고 한다. 문선명 사건 담당검사 마틴 플루멘바움(Martin Flumenbaum)은 "그는 예외적인 증인이었다.(...) 문서 확대 사진 등을 동원한 유창한 증언으로 그는 법정을 장악하다시피 했고, 배심원단도 넋을 잃고 그를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그래서, 펄이 개입하면 그의 판정에 따라 판결 전 합의로 재판이 종료되는 예가 많았다고 한다. 그의 고객은 검찰과 경찰, 로펌, 은행, 범죄수사연구소 등 기관-단체 외에도 유서 등 사문서 진위를 가리기 위한 개인 고객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공개된 사건이 아닌 한 고객의 비밀, 즉 자신의 활약에 대해 말을 아꼈다.


마틴-펄 타이텔 부부의 장남 피터 타이텔 역시 "알파벳 하나만 보고도 타이핑한 타자기가 어떤 모델인지 식별할 수 있는 감식가"란 평을 들었다. 가족사진.

마틴-펄 타이텔 부부의 장남 피터 타이텔 역시 "알파벳 하나만 보고도 타이핑한 타자기가 어떤 모델인지 식별할 수 있는 감식가"란 평을 들었다. 가족사진.

어려서부터 부모 일터에서 타자기 부품을 장난감처럼 갖고 놀며 성장한 아들 피터(Peter, 1945~2020)도 20대 중반부터 일을 거들었고, 부부가 2001년 은퇴할 무렵에는 그 역시 문서 감식 전문가로 명성을 떨쳤다. 2004년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후보인 조지 W. 부시가 텍사스 국토경비대 복무시절(1972~73) 아버지 조지 H.W. 부시(당시 공화당 전국위 의장)의 영향력을 업고, 상급자의 명령조차 무시하는 특권적 태만과 불성실한 복무 태도를 보였다고 고발한 공문서 6장이, CBS 시사프로그램 '60 Minutes'를 통해 폭로됐다. 진위를 둘러싼 공방 끝에 해당 문건은 위조된 것으로 드러났다. 방영 전 담당 PD 등이 피터에게 진위 감정을 의뢰, 위조 판정을 받은 사실도 뒤늦게 확인됐다. 피터는 문건에 등장하는 어깨글자 'th'가 73년 문건 작성 당시의 '올림피아' 타자기 모델에 없던 기능이며, 해당 문서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워드 프로그램으로 조작된 것이라고 판정했다. 프로그램 제작진과 책임자는 전원 해고됐고, CBS는 정정 사과방송을 내보냈다.
90년대 말 페르시아만의 하와르 섬을 두고 카타르와 바레인의 영토분쟁이 시작됐다. 피터는 국제사법재판소의 요청으로 개입, 카타르측이 영유권 주장 근거로 제시한 오토만 제국 시절의 문서가 위조된 사실을 확인했고, 섬은 원래대로 바레인 영토로 인정됐다.

2004년 미국 대선 선거기간 공화당후보 조지 W. 부시를 궁지에 몰아넣은 이른바 '킬리언 문서'. 2번 문항의 어깨글자 'th'가 위조문서임을 밝히는 결정적 증거가 됐다. faculty.uml.edu

2004년 미국 대선 선거기간 공화당후보 조지 W. 부시를 궁지에 몰아넣은 이른바 '킬리언 문서'. 2번 문항의 어깨글자 'th'가 위조문서임을 밝히는 결정적 증거가 됐다. faculty.uml.edu


웹-프로그램 개발업자 폴 세글리아가 "계약서 대로" 페이스북 지분 절반을 내놓으라며 2010년 소송을 건 직후 마크 저커버그가 도움을 청한 것도 피터였다. 피터는 계약서 상의 문제의 페이지 활자 서체와 간격이 나머지 것들과 미세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확대경과 입체 현미경, 자외선 램프 등을 통해 입증했다. 폴 세글리아는 사기혐의로 기소됐고, 그를 도운 변호인단도 2014년 페이스북과 저커버그에 의해 피소 당했다. 저명 방송인 앤디 루니(Andy Rooney)는 "피터는 타이핑 된 문건의 알파벳 하나만 보고도 어떤 타자기로 작성됐는지 알아낼 수 있는 실력자"라 평했다. 2017년 미국 문서감정학회는 피터에게 업계 최고 영예라는 '앨버트 S. 오즈번 상'을 수여하며 "그는 타자기나 문건 감식의 최종 평결자이며, 언제건 누구건 도움을 청하면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역량을 내어주던 다시 없을 전문가"라고 평했다.

프랑스 파리 한 대학의 정신분석 비평 교수인 펄의 딸 패멀라(Pamela)는 피터가 격주마다 은퇴한 어머니를 찾아가 자신이 맡은 문건 등을 보여주며 조언을 청하곤 했고, 더러 "얘야, 내 생각은 달라"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오빠의 말을 대신 전했다. 타이프 활자와 활자 문서를 통해 인간의 영혼을 읽던 타이텔 가의 세 주역 중 남편 마틴과 아들 피터가 2008년과 2020년 암으로 별세했고, 마지막 감정가 펄이 9월 26일 브롱크스 리버데일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104세.
그들과 더불어, 타자기의 시대도 비로소 저물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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