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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없었다면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진범 단죄 못했다

입력
2021.12.21 21:01
수정
2024.11.05 12:11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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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료 9일 전에 극적으로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태완이법' 국회 통과 7일 만에 이례적 '신속 공포'
서효원 검사 "공포 당겨야"… 국회·BH 등에 설득
"진범 잡혀도 처벌 못하면 되겠나… 할 일 했을 뿐"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진범을 무혐의 처분했던 김훈영 부장검사가 최근 억울하게 옥살이했던 피해자를 찾아가 사과한 사실(늦었지만 용기 낸 검사의 사과 "미안합니다")이 알려지면서 해당 사건이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법조계에서 김 검사의 용기를 향한 응원과 지지가 잇따르자, 피해자의 재심 무죄와 진범 검거 등 극적인 사건 흐름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최근 검찰 내부에선 '숨은 조력자'가 회자되고 있다.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개정 형사소송법(태완이법)이 통과된 2015년,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공소시효가 임박하자 서둘러 태완이법을 시행시키려 노력했던 서효원(42) 법무연수원 용인분원 교수의 얘기다. 한국일보가 21일 현직 검사인 서 교수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당시 사연을 자세히 전해들을 수 있었다.

"이대로라면 진범 잡혀도 처벌 못할 수도"

전북 익산에서 발생한 이른바 '약촌 오거리 살인사건' 범인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최씨가 2016년 11월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광주지법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전북 익산에서 발생한 이른바 '약촌 오거리 살인사건' 범인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최씨가 2016년 11월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광주지법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2000년 8월 10일 발생, 공소시효 2015년 8월 9일 완성. 이대로 가면 진범을 잡아도 처벌할 수가 없는데."

2015년 7월 24일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를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 일명 '태완이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12년 정부안이 제출된 후 3년 만에 어렵사리 국회 문턱을 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컸지만, 당시 법무부 형사법제과 소속이던 서효원 교수는 초조하기만 했다. 법안이 시행되려면 정부 이송, 국무회의 의결, 대통령 재가를 거쳐 관보에 게재하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통상 정부 이송에 5일, 공포까지 최대 15일로 총 20일 정도가 소요되는데, 약촌오거리 사건은 공소시효 만료까지 16일이 남았고, 또 다른 미제사건인 인천 놀이터 여아 살인사건은 8월 4일로 바로 코앞이었습니다."

서 교수는 날짜를 셈할수록 마음이 더욱 바빠졌다. 공소시효 폐지 법안 공포 이전에 시효가 만료되면 대구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처럼 범인을 잡지 못한 채 사건이 묻힐 판이었다. 그는 "약촌오거리 사건은 막 재심 개시가 결정됐고, 재심을 청구한 피해자 '최군'과 변호인이 진범이 따로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면서 "진범 처벌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개정법안) 공포일을 앞당길 필요가 있었다"고 밝혔다.

서 교수는 결심이 서자 국회와 법제처, 청와대와 행정안전부 담당자들을 설득하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어느 정도 단축할 여지는 있다고 봤고, 그래서 최대한 노력해보기로 했다"는 게 서 교수의 생각이었다. 그는 "평소 친분이 있던 국회 입법조사관에게 법안의 신속한 정부 이송을 부탁해 최대한 빨리 국무회의에 상정될 수 있도록 했고, 청와대에도 상황을 전해 대통령 휴가 중임에도 재가가 날 수 있도록 요청했다"고 전했다.

숨은 조력자 "피해자 응어리 풀어주는 역할했다면"


최씨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온 올해 1월 선고공판을 마친 후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황상만 형사(왼쪽)와 박준영 변호사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씨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온 올해 1월 선고공판을 마친 후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황상만 형사(왼쪽)와 박준영 변호사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 교수의 노력 덕분에 태완이법은 이례적으로 법안 통과 후 7일 만에 공포될 수 있었다. 서 교수는 "당시 연락한 모든 분들이 공감해줬고, 각자 최대한 역량을 발휘해줬다"며 "관계된 공무원들이 모두 힘을 합쳐 가능한 일이었다"고 했다.

이후 과정은 이미 알려진 대로다. 이듬해인 2016년 11월 피해자 최군은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었고, 선고 당일 경찰은 진범 김모씨를 체포해 재판에 넘겼다. 김씨는 징역 15년을 확정 받아 현재 복역 중이다. 최군을 변호한 박준영 변호사는 저서인 '우리들의 변호사'를 통해 "정말로 극적으로,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한 태완이법이 공포됨에 따라 이 사건은 공소시효 적용에서 배제됐고, 재심이 가능해졌다"고 밝혔다.

서 교수는 '숨은 조력자'로서의 관심이 부담스러운 눈치였다. "마치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주목하는 건 김훈영 검사님이나 최군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진범 처벌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피해자의 응어리가 풀어지는데 역할을 했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말했다.

"김훈영 검사의 사과, 큰 울림이 있었다"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수사했던 김훈영 검사가 지난 10월 24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수사했던 김훈영 검사가 지난 10월 24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서 교수는 피해자를 찾아가 사과한 김훈영 검사를 향한 지지 발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내가 당시 그 자리에 있었다면 진범을 밝힐 수 있었을지, 최군에게 사과할 수 있었을지 선뜻 답하긴 쉽지 않다"면서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결과적으로 고통 받은 피해자에게 진정성 있게 사과하는 모습은 큰 울림이 있었다"고 박수를 보냈다. 더불어 "무고한 피해자 발생에 책임은 있지만 결국 바로잡도록 주된 역할을 한 것도 검찰과 경찰"이라며 "각 기관이 과오를 반성하고, 이를 거울 삼아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엔 국민들께서 긍정적 평가도 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유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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