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엠네스티 주최 '레터나잇'
지난주 금요일, 지구 반대편에 있는 소녀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국제앰네스티가 주최하는 ‘레터나잇(Letter Night)’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레터나잇은 전세계 시민이 함께 모여 연대와 탄원의 편지를 쓰는 행사로, 매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일에 맞춰 진행된다.
올해 레터나잇에서는 두 명의 인권옹호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첫 번째로는 팔레스타인 점령지역에서 최연소 기자로 활동하면서 이스라엘군의 폭력을 전 세계에 공개해 폭력과 협박 위협을 받고 있는 ‘잔나 지하드’. 15세 소녀 잔나가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점령 지역은 제도적인 차별이 만연한 곳이다. 잔나는 일곱 살 때부터 이스라엘군의 폭력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원칙에 입각해 취재하고 보도했다는 이유로 잔나는 괴롭힘과 살해 위협까지 받고 있다.
두 번째로는 태국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평화적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불경죄법에 따라 구금된 유스 활동가 ‘파누사야 룽’. 룽은 태국 민주화 시위에서 평등과 표현의 자유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이를 억압하는 불경죄법에 반대해 왔다. 올해 3월 태국 정부는 불경죄법에 따라 룽을 구금했다. 룽은 여전히 25개의 혐의를 받고 있으며, 유죄 선고 시 최대 무기징역까지 처할 수 있다. 캠페인 참여자들은 캠페인 웹사이트에서 인권옹호자를 위해 연대와 탄원의 편지를 쓸 수 있다.
겨울 날씨는 유독 추웠지만, 레터나잇의 열기는 뜨거웠다. 작년에 이어 올해 온라인 레터나잇의 사회를 맡은 임현주 MBC 아나운서와 양은선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팀장은 남다른 ‘케미’를 보여줬고, 줌과 유튜브에 접속한 수백 명의 참여자는 직접 작성한 편지를 화면으로 공유하며 서로에게 연대를 표시했다. 인권을 위해 싸우는 이들과 연대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인권옹호자가 맞이한 폭력적이고 어두운 현실을 들으니 ‘내 편지가 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편지 한 장 한 장이 모이면 큰 힘이 된다. 실제로 2001년 처음 시작된 국제앰네스티의 편지쓰기 캠페인은 100명이 넘는 사례자를 고문, 부당한 구금으로부터 해방하고 그들의 인생에 변화를 가져오는 데 기여한 바 있다.
● 국제앰네스티 편지쓰기 캠페인 유래
국제앰네스티의 편지쓰기 캠페인은 20년 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친구들이 모여 세계인권선언일(12월 10일)을 기념하는 의미로 24시간 편지쓰기 마라톤을 진행하면서 시작됐다. 20년 전 2,326통의 편지로 시작했던 캠페인은 지난해 450만 통의 편지, 트윗, 탄원서명이 모이는 세계 최대 인권 캠페인으로 성장했다. 2001년 처음 시작된 이 캠페인은 100명이 넘는 사례자를 고문, 괴롭힘, 부당한 구금으로부터 해방시키고 그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오는 데 기여한 바 있다.
국제엠네스티 편지쓰기 캠페인 전시
레터나잇 다음날을 시작으로 국제앰네스티는 특별한 전시회를 서울 종로구 안국역 주변로얄창덕궁빌딩 1, 2층에서 개관했다. 건물 밖에서부터 시선을 사로잡는 비비드한 컬러의 구조물이 설치돼 있는 이 전시는 이국적인 배경 음악과 함께 ‘편지를 쓰세요, 변화를 만드세요(WRITE A LETTER, ENTER CHANGE)’라는 문구가 곳곳에 걸려 있었다.
이 전시회는 편지쓰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진행 중인 국제앰네스티 편지쓰기 캠페인 전시이다. 이는 인권 침해에 맞서 싸우는 6인의 이야기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윤지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처장은 “인권을 위해 연대하는 건 의미 있고 즐거운 경험”이라며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국제앰네스티 편지쓰기 캠페인에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해 인권 침해에 맞서 싸우는 이들과 연대하는 특별한 경험을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회는 1층과 2층으로 나누어져 있다. 1층 공간에서는 이번 캠페인의 슬로건인 ‘WRITE A LETTER, ENTER CHANGE’가 적힌 펀칭백 형태의 설치물이 눈길을 끈다. 특히 디지털 시대의 편지쓰기를 타자를 치는 듯한 개념으로 해석했으며, 키보드 모양의 소파는 이번 캠페인과 전시의 테마를 한눈에 보여준다.
2층 오른쪽 공간으로 향하면 이번 캠페인 탄원대상자의 이야기가 담긴 구조물과 영상을 볼 수 있다. 특히, 특정 위치에 서면 해당 영상의 음성을 더욱 또렷하게 들을 수 있는 기술이 적용돼, 마치 옆에서 얘기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또한, 각각의 사례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 작품도 전시된다.
반대편 공간으로 향하면, 한 개의 큰 사각형을 이루는 수많은 조각이 순차적으로 바뀌는 디자인 구조물 ‘제이콥의 벽(Jacob’s Wall)’을 본떠 만든 ‘브레이킹 월(Breaking Wall)’을 볼 수 있다. 인권침해의 벽을 상징하는 이 구조물은 전시 참여자가 ‘푸쉬’ 버튼을 누르면 부술 수 있으며, 버튼을 누르는 행위는 시민의 행동을 상징한다. 작은 액션으로 바뀌는 인권 상황을 브레이킹 월로 체험하게 한 것이다. 전시물을 통해 참여자들은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의 진실을 알렸다는 이유로 구금돼 ‘표현의 자유’를 침해 당한 시민기자 ‘장 잔’과 태국의 민주화 시위에 앞장서 온 ‘파누사야 룽’의 영상을 볼 수 있다.
전시장을 모두 감상한 뒤에는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있었다. 방문객들은 1, 2층에 마련된 부스에서 편지를 쓸 수 있고, 퀴즈 이벤트에 참여할 수도 있다. ‘파누사야 룽’을 위해 쓰는 연대 편지는 직접 태국에 전달할 예정이다.
● 국제앰네스티 편지쓰기 캠페인 전시 소개
2022년 1월 28일까지 열리는 국제앰네스티 편지쓰기 캠페인 전시 <WRITE A LETTER, ENTER CHANGE>는 낮 12시부터 저녁 8시까지 운영되며, 매주 월요일과 국가공휴일에는 휴관한다. 더 자세한 전시내용은 편지쓰기 캠페인 웹사이트 공지 게시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엠네스티와 전시를 기획한 사람들
“버튼을 누름으로써 지금의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았어요”
이번 전시의 크리에이티브 기획을 맡은 햇빛스튜디오 박철희 작가는 “편지쓰기 방식의 변화에 주목하고 싶었다”며 “과거에는 펜으로 작성했던 편지였지만, 이제는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활용하여 쓸 수 있기 때문에 자판과 같은 이미지를 전반적인 전시에 활용했다”고 말했다.
더불어, 소목장세미의 유혜미 작가는 “참여자들이 무언가를 누르면서 상황이 바뀐다는 점을 암시하기 위해 버튼을 누르면 스크린이 바뀌는 장치들을 넣으려고 했고, 복싱에서 쓰이는 펀칭백 같은 액티브한 소재를 사용하면서 단순히 누름에서 멈추지 않고 이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 전시를 맡은 ‘소목장세미’와 ‘햇빛스튜디오’
2012년 7월 1인 가구 공방으로 시작된 ‘소목장세미’는 활용 가능한 최소한의 조건들을 이용해서 가구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주문 제작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생활가구 제작, 전시장 디스플레이, 공예품 제작, 교육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다.
‘햇빛스튜디오’는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브랜딩, 캐릭터 디자인, 한글 레터링을 주로 하는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다. 2018년 KDA ‘올해의 디자인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2021년 모노클이 선정한 ‘최고의 마스코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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