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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없는 수능'... 수험생·대학 멘붕인데 교육 당국은 '팔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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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없는 수능'... 수험생·대학 멘붕인데 교육 당국은 '팔짱'

입력
2021.12.13 04:30
수정
2021.12.13 08:14
8면
0 0

17일 정답취소 소송 1심 결론
학생 피 마르고, 다음날 수시발표 대학도 '날벼락'
교육부 수시일정 1~2일 연기만, 항소여부도 침묵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 배부일인 10일 강원 춘천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이 받아든 성적표에 생명과학Ⅱ 성적이 공란으로 처리돼 있다. 춘천=연합뉴스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 배부일인 10일 강원 춘천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이 받아든 성적표에 생명과학Ⅱ 성적이 공란으로 처리돼 있다. 춘천=연합뉴스


"법원 판결 전까지 아무것도 못한 채 기다려야만 하는 게 가장 큰 고통입니다."

2022년 대학수학능력시험 과학탐구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의 정답 결정 취소 청구 소송을 제기한 수험생 백모(20)군은 12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 한 문제를 풀기 위해 애쓴 학생들의 노력을 아무것도 아닌 일로 치부하는 듯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태도도 너무 실망스러웠다"고 쓴소리를 했다.

수능 정답 결정 유예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대입 일정에 차질이 생겨 수험생들이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주무 부처인 교육부와 출제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아무런 수습책을 내놓지 않았다. 정부가 입시 혼란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대입 일정 변동... 대학들 "정부가 책임 떠넘겼다"

12일 교육계에 따르면 생명과학Ⅱ 20번 정답 취소 소송의 1심 결론이 오는 17일 나올 예정이다. 생명과학Ⅱ에 응시한 수험생, 학부모들은 초조하게 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한 대형 입시학원 관계자는 "생명과학Ⅱ를 택한 학생 대부분은 서울대 자연계열을 목표로 하는 이과 상위권"이라며 "1~2점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만큼 피가 마르는 심정일 것"이라고 했다.

앞서 서울행정법원은 정답 결정을 1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 유예하도록 했다. 평가원은 일단 수능 성적표의 생명과학Ⅱ 부분을 비워놓았고, 17일 오후 1시30분경 선고가 나면 그날 오후 8시부터 생명과학Ⅱ 응시자 6,515명의 성적표를 온라인으로 발급할 계획이다. 교육부도 수시전형 합격자 발표 마감일을 18일로 이틀 미루고, 미등록 충원 기간과 충원 등록 마감일도 각각 22~28일, 29일로 하루씩 연기했다.


수능 생명과학Ⅱ 응시자 92명이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제기한 정답 결정 처분 취소 소송의 첫 변론 기일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능 생명과학Ⅱ 응시자 92명이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제기한 정답 결정 처분 취소 소송의 첫 변론 기일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시 충원 등록 마감이 정시모집 원서 접수 시작(30일) 전날까지 미뤄지면서 정시일정 전반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정시 접수 시작 전날 저녁에야 수시 이월(수시에서 탈락해 정시로 넘어가는) 인원 파악이 가능해졌다"며 "정시 학과별 선발 인원 확정이 지연되는 것"이라고 했다.

17일 오후 8시 성적표 통지 후 밤샘 작업을 해서 다음날 곧바로 수시 합격자를 발표해야 하는 대학들도 '날벼락'을 맞았다. 서울 지역 한 대학 관계자는 "출제 오류 책임을 교육당국이 대학에 떠넘겼다"고 비판했다.

현재로선 본안 소송에서도 법원이 수험생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다. 해당 문항에 오류가 있다는 학계 의견이 잇따르고 있어서다. 지난 9일 김종일 서울대 유전체의학연구소장 겸 의과학과장이 언론을 통해 "제시문 오류가 명확하다"고 밝힌 데 이어, 11일에는 집단유전학 분야 석학 조너선 프리처드 미국 스탠퍼드대 석좌교수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 문항에 수학적 모순이 있다"는 글을 올렸다.

공신력 추락한 출제기관, 침묵 일관한 교육당국

소송 결과와 관계없이 이번 사태를 초래한 교육부와 평가원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이미 평가원의 공신력은 땅에 떨어졌다. 조건이 불완전한 문제를 냈을 뿐 아니라, 이의 신청에 대해서도 "문항 조건이 완전하지 않아도 정답을 푸는 데 이상 없다"는 석연치 않은 결정으로 혼란의 단초를 제공했다.

법원 판단 이후 교육부의 뒤늦은 대처도 문제다.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 만큼 미리 다양한 경우를 가정하고 대책을 준비했어야 했는데, 가처분 결과 직후에야 부랴부랴 긴급회의에 들어가는 등 몇 시간 동안 공식 입장 없이 '침묵'으로 일관했다.

교육부나 평가원이 1심 판결 이후 항소 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는 것도 무책임하다는 지적이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교육부와 평가원은 어떤 결과든 1심 판결에 승복하겠다고 미리 정해야 한다"며 "기관 자존심을 세우려는 의도로 판결에 불복해 시간을 끄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태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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