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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찬반 대결로 드러난 양극화의 민낯

입력
2021.12.12 10: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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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민
박홍민미국 위스콘신주립대 정치학과 교수
미국 연방대법원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연방대법원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연방대법원이 낙태와 관련된 미시시피주 법률의 위헌 여부 심리를 최근 시작했다. 1973년 '로이 대 웨이드(Roe vs Wade)' 대법원 판례를 통해 확립된 '여성이 낙태할 수 있는 권리'에 큰 수정이 가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50년간 보수진영이 학수고대하던 순간이다.

때는 19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셋째를 임신한 '제인 로이'는 낙태를 원했지만 그녀의 고향 텍사스에서는 불법이었다. 그래서 검사인 '헨리 웨이드'를 상대로 연방법원에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승소와 패소를 거듭하다 결국 연방대법원까지 갔는데, 대법원은 제인 로이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몇몇 판결을 통해서 '낙태는 권리'라는 원칙이 재확인되었고, 대개 임신 23주 차 이전의 낙태는 허용되어 왔다.

하지만, 낙태반대운동도 동시에 시작되었다. 특히, 1980년대를 거치며 공화당과 기독교 보수 분파가 결합하면서 그 세가 증가했다. 1970년대는 낙태 찬반이 56대 44 정도였는데, 1990년대 초 49대 51로 살짝 뒤집히기도 했었다. 슬로건을 '생명 살리기 운동(pro-life movement)'으로 정한 것이 주효했다고 평가받는데, 낙태 찬성 진영도 비슷한 전략으로 '권리 지키기 운동(pro-choice movement)'이라고 자신들을 부른다.

기회를 포착한 낙태 반대 진영은 공화당이 장악한 주를 중심으로 직접 행동에도 나섰다. 몇몇 주에서는 낙태를 할 때 부부 모두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특히 미성년자의 낙태는 부모 동의를 의무화했다. 낙태 결정 후 숙의 기간을 설정하거나 낙태와 관련된 동영상 학습을 의무화하는 주도 생겼다.

그중 가장 중요한 전략은 연방대법원 대법관을 바꾸는 것이었다. 풍부한 선거자금지원과 압도적인 자원봉사활동으로 공화당 내부를 압박한 이후, 공화당 대통령이 대법관을 임명할 때 낙태 반대론자를 적극 고려하도록 하는 것이다. 2005년 부시 대통령이 임명한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기대와 다르게 행동하면서 고비를 맞기는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세 명의 대법관을 교체하는 데 성공하면서 현재 연방대법원은 낙태 반대가 다수이다.

그러면서 일명 '방아쇠 법안(trigger laws)' 전략도 시작되었다. 공화당이 주 의회 다수당을 차지한 주에서 '로이 대 웨이드' 판례에 위배되는 법안을 일부러 통과시키는 것이다. 당연히 진보세력이 위헌소송을 제기할 것이고, 이를 연방대법원이 심사하도록 유도 및 압박해서 낙태를 금지할 새로운 판례를 만드는 전략이다.

총 12개 주의회에서 이런 종류의 법안을 통과시켰고, 연방대법원은 임신 6주 차부터 낙태를 금지한 텍사스주 법안과 임신 15주 차부터 낙태를 금지한 미시시피주 법안의 위헌 여부를 지금 심사하는 중이다. 지금까지의 진행 상황으로 유추해 보면, 낙태 금지를 전면 허용하지는 않을 듯하지만 주 정부가 낙태에 상당 부분 제한을 가할 수 있을 정도까지는 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연방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가져올 더 큰 문제는 낙태를 허용하고 금지하는 일들도 정치 양극화의 모습을 닮아간다는 점이다. 예상대로 판결이 나온다면 21개 주에서 지금보다 훨씬 엄격한 낙태금지법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에 대항해서 14개 주는 이미 낙태의 권리를 지금보다 더 넓게 보장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양쪽 극단으로 달려가는 모양새이다.

땅덩어리도 크고 인구도 3억 명이 훨씬 넘는 커다란 나라라고 이해하려고 해도, 낙태에 관해서는 하나의 나라라고 보기 힘들 정도이다. 하기야 대마초나 동성결혼 문제도 비슷하니, 혹자가 "Divided States of America"라고 불러도 미국은 할 말이 없을 듯하다.

박홍민 미국 위스콘신주립대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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