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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 이 여성들은 왜 죽어야 했나요

입력
2021.12.0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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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허스토리’는 젠더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뉴스레터 서비스입니다. 매주 목요일 오전 8시 발송되는 뉴스레터를 포털 사이트에서는 열흘 후에 보실 수 있습니다. 발행 즉시 허스토리를 받아보기 위해서는 뉴스레터 서비스를 구독해주세요. 메일로 받아보시면 풍성한 콘텐츠, 정돈된 화면, 편리한 링크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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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Words : 여성의 언어

여성에 대한 폭력,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

Her View : 여성의 관점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34) 이 여성들은 왜 죽어야 했나요 (11월 25일자)

독자님, 안녕하세요. 지난달 21일부터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한 주간 우리는 스토킹과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다 사망한 여성들의 부고를 또 들어야 했습니다. 스토킹 피해 신고 후 신변보호를 받던 피해자는 긴급신고 버튼을 눌렀지만 생사의 갈림길에서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같은 사건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머리를 맞대도 모자라지만, 정치권에서는 '단순 살해 사건을 젠더와 엮지 말라'는 발언이 나옵니다. 우리가 제대로 목소리를 내야 하는 지점은 어디인지, 허스토리가 짚어봤습니다.

5번을 신고했지만

ㆍ2021년 6월 26일: A씨, 옛 연인이던 30대 남성 김모씨가 ‘짐을 가지러 왔다’며 자신의 집에 들어오려 한다고 경찰에 1차 신고.
ㆍ11월 7일: A씨, ‘전 남자친구가 스토킹과 협박을 한다’며 신변보호 요청. 경찰은 A씨에게 스마트워치 지급하고 법원에 김씨에 대한 잠정조치(100m 이내 접근 금지, 통신 금지, 서면 경고) 신청.
ㆍ11월 8일: A씨는 범죄 피해자 임시 숙소에서 묵은 뒤, 집에서 짐을 꾸리기 위해 경찰에 동행 요청. 경찰은 김씨가 갖고 있던 출입카드 회수.
ㆍ11월 9일: A씨, ‘보고 싶다’며 회사 앞에 찾아온 김씨를 만난 후 경찰에 신고. A씨는 퇴근 후 지인의 집으로 가는 길에 경찰과 동행. 100m 이내 접근 금지 등 김씨에 대한 잠정조치 시행.
ㆍ11월 19일: A씨 김씨에 의해 사망. 스마트워치 긴급신고 버튼을 4분 간격으로 두 차례 눌렀으나 제때 도움을 받지 못함.
ㆍ11월 20일: 경찰, 피의자 김씨 체포

피해자를 살릴 수도 있었던 여러 번의 기회가 제도의 빈틈 사이로 빠져나가면서 A씨는 생명을 잃고 말았습니다. A씨의 수차례 신고에도 김씨는 경찰 조사를 한 차례도 받지 않았습니다. 스토킹 행위를 수사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되기 전이라, 현행범 체포가 아닌 이상 피의자가 임의동행을 거부하면 강제할 수가 없어서, 피의자에 대한 잠정조치 허가가 뒤늦게 나와서… 참 여러 우연이 겹쳤습니다. 그렇지만 이대로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여성들이 살해당하지 않도록, 계속해서 제도를 정비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니까요. ▶ 5번의 신고와 경찰의 대응 자세히 읽어보기(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112210550004503)

'어기면 그만'인 조치 강화

우선 스토킹처벌법을 통해 가해자의 행위를 막을 강제 조항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스토킹처벌법에 따르면 경찰은 가해자에게 응급조치와 긴급 응급조치, 잠정조치를 내릴 수 있습니다. 잠정조치는 가해자가 접근 금지 등을 어길 시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게 하지만, 검찰과 법원을 거쳐야 합니다. 급할 때 효과가 있는 다른 조치들은 '피해자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수준인데, 어겨도 과태료에 그치기 때문에 강제 조항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경찰은 김씨에게 피해자 100m 내 접근금지와 통신금지라는 잠정조치를 내렸지만, 피해자의 죽음을 막지 못했습니다. ▶언제 해칠지 모르는 스토커에게 겨우 과태료?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112314010000628)

▦ 제도를 뒷받침할 인력과 물량 강화

스토킹처벌법에 따라 신변보호 요청자에게는 비상시 버튼을 누르면 112 상황실에 자동 신고되는 스마트워치가 지급됩니다. 실시간 위치 추적으로 일반 112 신고보다 신속한 출동이 가능하다고 해요. 그런데 왜 A씨의 다급한 호출에는 경찰이 뒤늦게 도착했을까요? 스마트워치 위치값이 주변 기지국 중심으로 확인되는 탓에 A씨 실제 위치와 다른 곳으로 나타났기 때문이었습니다.또 제도를 뒷받침할 물량과 인력이 충분하지 못한 게 현실입니다. 경찰의 신변보호 조치는 2017년 6,675건에서 지난해 1만 4,773건으로 급증세지만, 전국 경찰서에서 보유 중인 스마트워치는 3,700대뿐이라고 해요. ▶스마트워치와 담당 경찰도 부족한 현실, 더 읽어보고 싶다면(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112113030005257)

▦ '사랑 싸움'이 아니라는 인식 강화

스토킹이 단순 협박에서 강력범죄로 돌변하는 건 한 순간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교제 살인은 살인 사건이 되기 전 협박 등 전조를 보인 사례가 많습니다. 한국일보가 올해 선고된 '데이트 폭력' 관련 판결문 104건을 분석해 보니, 27건은 강력범죄 전조가 있었습니다. 주거침입, 강간과 폭행, 이에 따른 피해자들의 신변보호 요청이 있었지만 결국은 살인으로 이어진 사례들입니다. 이 전조들을 심각하지 않게 여기거나 '사랑 싸움'으로 치부한다면 또 다른 피해 발생을 막지 못할 겁니다.

또 한가지 문제는 처벌 수위가 낮다는 점인데요. 104건 중 40건이 집행유예에 그쳤어요. '우발적인 범행' '가해자의 깊은 반성' 등이 선처의 이유였는데요. 그러다 보니 형사처벌을 받고도 범행을 다시 저지르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 '데이트 살인' 숱한 SOS 보냈지만... 공권력은 방관자였다(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112116390004025)

▦ 이것은 젠더 폭력이다

스토킹처벌법 시행일이었던 지난달 21일부터 이달 17일까지, 경찰에는 하루 평균 103건의 신고가 접수됐어요. 올해 1월부터 법 시행 전까지 접수된 유사 신고건수가 23건이었던 것에 비교하면 크게 늘어난 거죠. 정치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더 이상의 스토킹 범죄와 교제 살인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법을 보완해 안전망을 구축하고 사회 인식을 변화시키는 겁니다. 그런데 이를 두고 '페미니즘 선동'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최근 "선거 때가 되니 또 슬슬 이런저런 범죄를 페미니즘과 엮는 시도가 시작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연이은 교제 살인에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페미니즘이 싫으면 여성을 죽이지 말고, 안전 보장에 앞장서라"고 대책 마련을 촉구한 데 대한 반응이었습니다. 이 대표는 전남편을 잔혹하게 살해한 고유정 사건을 예로 들며 '일반적인 사람은 고유정을 흉악한 살인자로 볼뿐, 애써 그가 여성이기 때문에 젠더 갈등화하려고 하지도 않고 선동하려고 하지도 않는다'고 했는데요.

교제 살인은 이 대표가 말한 대로 단순히 가해자의 성별에 따라 '젠더 문제'가 되는 게 아닙니다. 데이트 폭력 사망 사건 피해자의 99%가 여성이며, 한 쪽 성별이 지속해서 살해당하고 있기 때문에 젠더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별 통보' '자신을 무시했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선물을 준비하지 않았다' '성관계에 소홀했다' '다른 이성과 연락했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하고 목숨을 잃는 여성들이 많은 것이 어째서 젠더 문제가 아리나는 걸까요? 11월 23일 자 한국일보 사설의 마지막 문단으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이 대표가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남자들의 억울함만 호소하면서 젠더 폭력은 방치되고 악화한다. 21세기 한국에서 성평등이라는 보편적 가치가 짓밟히고 있는 데에 정치인들이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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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Story : 여성의 이야기

다른 사람

데이트 폭력, 2차 가해, 성폭력 등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일상 속 차별과 폭력을 세세하게 그려낸 강화길의 첫 장편 소설. 제2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이번 주 기사들을 읽으며 지친 마음을 토닥이고 싶어 꺼내 든 소설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돼요. 남자 친구의 다섯 번째 폭행이 일어난 날, 진아는 그를 신고합니다. 그러나 가해자는 폭행죄로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는 데 그쳤고, 직장 상사이기도 한 그는 여전히 진아와 같은 직장에 다닙니다. 진아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인터넷에 자신의 이야기를 올립니다. 그리고 트위터에 게재된 글 하나. '김진아는 거짓말쟁이다.' 진아가 글을 쓴 사람을 찾기 위해 오랜만에 대학 시절 친구들을 만나 퍼즐을 맞춰 가는 것이 이 소설의 얼개예요.

소설 속에는 여러 여성이 등장합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유리, 어릴 적 친구였다가 진아와 영원히 틀어져버린 수진, 과거에 얽매이기를 거부한 단아. 이들은 피해자이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 가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다른 사람'이 되기를 갈망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맞을 것처럼 보이는 여자' 혹은 '천박한 여자'가 아닌 사람으로 스스로를 정의합니다. "여자가 맞을 짓을 한 거 아닐까" "왜 더 적극적으로 '싫다'고 말하지 않았지?" 피해자에게 행해지는 폭력과 2차 가해는 현실과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마지막 장에 닿은 순간, 이 문장을 읽기 위해 책장을 넘겨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피해자에게 일어난 일은 결코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며, 이를 바꿔 나가는 것은 결국 '나와 너, 우리'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거든요. 그러니 우리는 포기하지 않기로 약속하면서, 이번 주 레터를 마감합니다.

※ 본 뉴스레터는 2021년 11월 25일 출고된 지난 메일입니다. 기사 출고 시점과 일부 변동 사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뉴스레터 '허스토리'를 즉시 받아보기를 원하시면 한국일보에서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

양진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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