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 5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작가
예니 에르펜베크ㆍ아룬다티 로이 내한
“독일은 통일 덕분에 떨어진 가족들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분단돼 있던 40년은 한 세대가 교체되는 시간이었고, 통일 이후 정말 많은 게 달라졌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남한과 북한이 통일된다면 그 어느 쪽도 오만함을 가져선 안됩니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입장을 가져야 합니다.”
동독 출신의 작가 예니 에르펜베크는 한국의 통일이 어떤 희망의 지향점을 갖고 나아가야 할지 묻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에르펜베크는 2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5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 기념 기자회견에서 한국과 마찬가지로 분단 경험이 있는 국가 출신으로서 통일과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1967년 동독에서 태어난 에르펜베크는 통일 이후 동독문학의 가능성과 저력을 입증해온 작가로 꼽힌다. 훔볼트대학에서 연극학을 공부하고 한스 아이슬러 음악학교에서 오페라 연출을 공부한 뒤 베를린과 오스트리아의 오페라하우스에서 수많은 오페라 작품을 올린 연출가이기도 하다.
1999년 동독이 서독에 흡수 통일된 이후 사실상의 ‘동독문학’은 존재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에르펜베크는 동독 출신의 신세대 작가로서 동독의 현실사회주의 문제와 서구 자본주의의 한계를 경험적으로 비판한 점에서 주목받았다. 에르펜베크는 “분단과 전쟁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모든 평화가 언제든 없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고, 평온한 일상도 행운으로 여겨졌다”고 말했다.
분단과 통일을 모두 경험한 작가로서 에르펜베크가 최근 주목하고 있는 존재는 유럽의 난민이다. 그는 “동독 출신의 문인들은 통일 이후 서독인이 되는 법을 배워야 했다”며 “직장을 다시 구하고 새로운 삶의 패턴을 배워 나가는 등 자국인임에도 외국인의 기분으로 살아야 했다는 점에서 난민까지는 아니지만 타인 취급을 받아 왔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날 난민들은 고향을 잃었다는 점에서 목숨을 걸고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는 코로나19로 지난해 내한하지 못했던 제4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작가 아룬다티 로이도 함께 참석했다. 1961년 인도 출생의 아룬다티 로이는 픽션과 논픽션 장르를 넘나들며 인도 내 분쟁뿐 아니라 인권, 여성, 농업, 환경, 민주주의와 같은 약자들의 삶을 둘러싼 문제들을 뛰어난 상상력과 문학적 언어로 발굴해온 소설가 겸 시민운동가로 잘 알려져 있다. 국내에는 1997년 부커상 수상작인 ‘작은 것들의 신’과 최근작인 ‘지복의 성자’가 번역돼 있다.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은 통일문학 대표 문인인 고 이호철 작가를 기리기 위해 2017년 은평구에서 제정한 상이다. 국내외 작가를 대상으로 분쟁, 여성, 난민, 차별, 폭력, 전쟁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 극복을 위해 문학적으로 실천한 작가에게 시상한다. 앞서 김석범(2017), 사하르 칼리파(2018), 누르딘 파라(2019) 등의 작가가 수상한 바 있다. 상금은 본상 5,000만 원 특별상 2,000만 원이다.
올해 시상식은 25일 오후 3시 은평구 진관사한문화체험관에서 열렸다. 이날은 지난해 코로나19로 열리지 못한 제4회 시상식도 함께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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