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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터널스' 각본가 인터뷰는 왜 한국 팬들을 화나게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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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터널스' 각본가 인터뷰는 왜 한국 팬들을 화나게 했나

입력
2021.11.1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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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중 '히로시마 폭격 후회' 장면에 비판 제기
각본가 피르포 형제 '일본계' 언급하며 논란 확산
카즈 "전쟁은 회색지대...더 많이 되짚었으면"

영화 '이터널스'의 출연진이 함께 서 있는 장면으로, 디즈니 마블 스튜디오가 제공한 스틸샷. 왼쪽부터 쿠마일 난지아니, 리아 맥휴, 제마 찬, 리처드 매든, 안젤리나 졸리, 마동석. AP 연합뉴스

영화 '이터널스'의 출연진이 함께 서 있는 장면으로, 디즈니 마블 스튜디오가 제공한 스틸샷. 왼쪽부터 쿠마일 난지아니, 리아 맥휴, 제마 찬, 리처드 매든, 안젤리나 졸리, 마동석. AP 연합뉴스


디즈니의 최신 마블 코믹스 원작영화 '이터널스'의 각본가 인터뷰가 한국의 인터넷 팬들 사이에서 큰 논란을 불렀다. 그동안 이터널스에 들어있는 '히로시마 원폭 장면'을 둘러싸고 국내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일제 침략을 정당화할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의 각본을 맡은 피르포 형제가 '논란'을 해명하는 차원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자신들의 '일본계 혈통'을 언급하면서 "대량 학살에 대한 첫 번째 디즈니 영화"라고 인터뷰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에선 비판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라이언 "히로시마 핵 공격, 인류가 너무 나갔다고 판단하는 장면"


'이터널스'의 '파스토스' 역할을 맡은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 AP 연합뉴스

'이터널스'의 '파스토스' 역할을 맡은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 AP 연합뉴스


영화 '이터널스'의 예고편 등을 통해 공개된 내용을 보면, 마블 영화 내 세계에서 인류의 발전을 지켜보는 '신'과 같은 존재인 이터널(Eternal) 중 한 명인 '파스토스'는 인류에게 생존 기술을 전해 주었지만, 일본에 핵 폭탄이 떨어지는 것을 목격하고 이를 후회하는 장면이 제시된다. 해당 장면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많은 논란을 불렀다.

이 영화의 각본을 담당한 라이언 피르포와 매슈 '카즈' 피르포는 14일부터 진행된 여러 언론과 인터뷰에서 '핵 공격'을 다루는 장면에 대해 따로 해명했다. 둘은 사촌 관계로 '이터널스'의 각본을 공동 작업했다.

라이언은 '인버스'와의 인터뷰에서 해당 장면을 "결정적인 한계점"으로 설정했다면서 "불멸의 우주 신들이 '인류가 너무 나갔다. 더 이상 도울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는 장면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영화 '이터널스' 예고편에 묘사된 히로시마 원자폭탄 폭격(위 사진)과 이를 본 파스토스의 반응.

영화 '이터널스' 예고편에 묘사된 히로시마 원자폭탄 폭격(위 사진)과 이를 본 파스토스의 반응.


카즈는 같은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내가 아는 한 '제노사이드(대량학살)'를 다루는 최초의 디즈니 영화"라면서 "이 사건은 일본계 미국인이자, 일본에 가족이 있는 나로서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 문제를 모두가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모든 연령과 인종, 장소와 관계없이 관객들이 우리(인류)가 무슨 일을 했는지 짚어보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인버스'와 인터뷰가 공개되기 앞서서도 국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이터널스'를 두고 "일본을 피해국으로 상정함으로써, 일제의 아시아권에 대한 침략을 정당화할 우려가 있다"는 비판 목소리가 나왔다. 물론 인류 역사에서 핵무기가 차지하는 '잘못된 전쟁과 폭력의 상징'이라는 위상 때문에 해당 장면이 들어갔을 수 있다는 반박도 있었다.

그런데 이 인터뷰 내용이 알려지면서 많은 네티즌이 비판적 해석에 무게를 싣기 시작했다. 이들은 특히 신적 존재가 인류를 돕는 것을 후회하는 수단으로 '히로시마 폭격'을 제시했다고 하는 라이언의 언급이나 '제노사이드'란 표현, 혈통을 강조하는 카즈의 발언 등을 문제 삼았다.



카즈 "히로시마 폭격으로 더 많은 생명 구했을까, 답은 불명확"


카즈 피르포가 10월 27일 런던에서 열린 영화 '이터널스'의 영화 시사회에 참석해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카즈 피르포가 10월 27일 런던에서 열린 영화 '이터널스'의 영화 시사회에 참석해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다만 카즈의 다른 인터뷰를 보면, 그가 히로시마 원자폭탄 공격을 비판하면서 일제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백한 의도를 지닌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볼 수 있는 발언도 했다.

같은 날 공개된 '폴리곤'과 인터뷰에서 카즈는 히로시마 폭격 사건이 '회색 지대'에 있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전쟁이라는 회색 지대의 도덕적 복잡성을 놓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매우 유용하다"면서 "우리가 그 폭탄을 떨어트렸어야 했는가, 그 행동이 결과적으로 수백만의(더 많은) 생명을 구했는가, 이런 질문에는 누구도 답을 내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카즈는 핵 공격 장면이 "모든 각본의 초안에 있었다"면서 "클로이(자오, 감독)가 이 장면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각본을 고치는 과정에서 매번 많은 이들이 해당 장면을 '무섭다' '분열적이다' '대량 학살(제노사이드)에 대한 얘기다'라며 빼자고 했지만 감독이 끝까지 이를 지켜냈다고 언급했다. 카즈는 "영화가 전통적 관점에 너무 많이 도전하기 때문에 논란이 있는 것에 놀랍진 않다"면서도 결과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여론과 달리, 서구에선 히로시마 원자폭탄 공격을 '전쟁 범죄'로 다루는 것 자체보다 그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는 주체가 '흑인 성소수자' 캐릭터로 설정된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 많았다.

예를 들면 성소수자를 위한 웹진 '뎀(Them)'은 해당 장면을 다루면서 "성소수자 캐릭터가 모순된 고민을 안고 있는 것은 좋다"면서도 "하지만 전쟁 범죄를 영웅의 심리적 불안 요소로 사용할 뿐 아니라 그 주체 캐릭터가 하필 유일한 수퍼 게이 캐릭터라는 점은 좀 징그럽게 느껴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히로시마 폭격은) 순전히 백인 남성에 의해 주도된 전쟁의 결과"라며 "그런데 왜 마블 역사상 최초의 성소수자 캐릭터가 이를 후회해야 하느냐"고 덧붙였다. 피르포 형제는 이런 비판에 대해서는 별다른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인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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