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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과 교양 사이… 다리를 놓는 서평지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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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과 교양 사이… 다리를 놓는 서평지가 나왔다

입력
2021.11.05 18:0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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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읻다, 서평지 '교차' 첫 호 발간

불평등기원론을 다루는 대중적 서평들이 ‘자연상태’의 선함과 사회의 타락을 강조하는 거친 도식화 앞뒤로 현대 한국사회의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불평등에 대하여 독자에게 안도감을 준다면…(중략)…프랑스 문학 전공자인 정승옥과 이동렬의 30여 년 전 연구가 있지만, 이들의 선구적인 안내와 자극은 이제 그 자체로는 책의 이해를 돕지 않는다.

서평잡지 교차의 창간호에 실린 ‘인간 불평등 기원론’ 서평에서

지난달 출판된 '교차'의 창간호에는 260여 년 전 세상에 나온 장자크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 대한 서평이 실렸다. 정확히 말하면 이충훈이 옮기고 도서출판b가 지난해 내놓은 판본에 대한 글이다. 이 책은 63년 전부터 여러 차례 한국어로 옮겨졌고 현재 서점에서 만날 수 있는 판본이 11개에 달한다. 서평을 쓴 루소 연구자 김영욱은 30년 전의 연구들까지 소환하면서 '우리는 왜 연거푸 불평등기원론을 요구했는가'라고 묻는다. 그리하여 고전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를 새로운 관점으로 풀어낸다.

'교차'는 직원이 두 명뿐인 출판사 읻다가 내놓은 서평 전문잡지다. 창간호는 '지식의 사회, 사회의 지식'을 주제로 인문학부터 과학까지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서 서평 11편을 담았다. 개인적 감상을 전달하는 짤막한 글이 아니다. 원고지 80매에서 120매에 이르는 논문에 버금가는 글이다. 사회학부터 과학철학, 종교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배경의 연구자들이 서평을 매개로 새로운 지식을 전달한다. 저작이 지성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부터 학계에 던지는 과제에 이르기까지 대중적 서평에서 보기 어려운 담론을 제시한다. 출판시장의 위기 속에서 작은 출판사가 학술지식과 대중이 만나는 광장을 만들어낸 셈이다. 지난달 27일 서울 마포구의 읻다 사무실에서 김현우 대표와 남수빈 편집자를 만나서 교차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들어봤다.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마포구의 출판사 읻다 사무실에서 김현우(오른쪽) 대표와 남수빈 편집자가 서평지 '교차'의 기획의도를 설명하고 있다. 한지은 인턴기자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마포구의 출판사 읻다 사무실에서 김현우(오른쪽) 대표와 남수빈 편집자가 서평지 '교차'의 기획의도를 설명하고 있다. 한지은 인턴기자


"학술과 교양 사이…밀도 높은 서평들을 모았죠"

교차는 2015년 설립돼 해외 고전을 출판해 온 읻다가 국내 저자들과 협업해 내놓은 첫 책이다. 본격적으로 국내 저자의 인문교양서를 제작하기에 앞서 잡지를 먼저 만든 것이다. 체질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성과다. 김 대표는 "학술과 교양 사이의 서평을 제공하는 서비스나 책이 없었다"면서 "시류에 맞아떨어지는 책보다는 작은 출판사로서 개성을 보여주는 책을 기획했다"고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남 편집자 역시 "학술지에 실리는 밀도 높은 서평을 한자리에서 보고 싶어하는 독자가 적지 않지만 학회지는 아무래도 접근성이 나쁘다"면서 "최신 사상부터 이론의 동향까지 여러 분야 연구를 모아서 볼 수 있는 매체를 만들고 더 많은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1년에 두 차례 출판하는 반연간지

새로운 길을 가면서 고민도 컸다. 지난해 말 어렴풋이 구상해 오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기획위원 선정을 마무리한 이후에도 독자들이 서평지에 관심을 가질지는 미지수로 남아 있었다. 원고료와 제작비용을 충당하고 수익을 내려면 최소한 2,500부는 팔아야 한다. 두 직원이 마케터 없이 다른 단행본까지 만들고 파는 상황에서 이루기 만만찮은 목표다. '교차'를 1년에 두 차례 발행하는 반연간지 형식으로 6호까지만 제작하는 이유다.

크라우드 펀딩에서 목표액 3배 모금해

이런 상황에서 올해 8월 말부터 한 달 정도 진행했던 크라우드 펀딩은 독자의 존재를 확인하는 기회였다. 첫날부터 모금액이 목표액 300만 원을 훌쩍 넘겼다. 최종 모금액은 1,000만 원에 이르렀다. 남 편집자는 "책이 완성되지 않았는데도 교차가 지금까지 한국에 없었던 굉장히 진지한 서평 잡지라는 점을 알아준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독자층을 "책을 만드는 편집자, 그리고 관련 주제를 연구하는 연구자, 마지막으로 일반 독자"로 예상하면서 "인상비평이 아니라 한 사람이 책을 소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면 책을 열심히 읽었던 독자들도 마찬가지로 반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종교학부터 과학까지 다양한 분야 다뤄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 '교차'의 제작에는 다양한 배경의 연구자가 참여했다. 먼저 주제와 성격을 결정하는 기획위원으로는 인문과학서적을 출판하는 박동수 사월의책 편집장을 비롯해 과학사 전공자까지 4명이 참여했다. 섭외 과정에서 남녀 성비까지 고려됐다. 서평자들은 대부분 박사급 연구자들이지만 가정의학과 전문의면서 문화인류학과 교수인 연구자도 있다. 김 대표는 "연구자 대부분이 30대 후반에서 40대"라면서 "박사학위를 받을 예정이거나 취득한 이후 시간이 오래 지나지 않아서 최신 연구를 아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제작과정 중 난제가 저마다 독특한 배경을 가진 전문가의 글을 하나로 묶는 것이었다. 원고 스타일을 맞추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김 대표는 "저희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부분과 전문가가 강조한 부분이 다른 경우도 많았고, 무엇보다 서평 대상 이외의 책을 근거로 활용할 경우에 그것이 정말 객관적으로 논변을 이끄는 자료인지 판단하기도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서평자가 전문가로서 본인의 논리나 해석을 전면에 부각시키는 경우도 잦아서 그때마다 "선생님, 저희 책이 완전히 학술지가 아니고 대중도 이해하고 논의에 끌려 들어가야 합니다"라고 설득하고 수정을 요청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결과적으로 둘이서 만들 수 없는 프로젝트였다"면서 "새로운 편집자를 모실 계획"이라며 웃었다.

"긴 책 읽기 어려워지는 환경, 깊이 있는 매체들 더 필요"

읻다는 '물질'을 주제로 '교차' 2호를 제작하고 있다. 지난달까지 서평 청탁을 거의 마무리 지었다. 읻다는 교차가 학술과 교양, 그리고 대중을 잇는 다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럼으로써 진지한 책, 학술서적을 읽는 독자가 늘기를 바란다. 남 편집자는 "인문사회과학분야 책을 만드는 편집자끼리 만나는 독서모임에서 '점점 더 긴 책을 읽기가 힘들어지는 환경이 되는 것 같다'는 말들이 나왔다"면서 "그럴수록 깊이 있는 이야기를 길게 다루는 매체가 더 필요해지는 것 같다. 그런 빈자리를 교차가 채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마포구의 출판사 읻다 사무실에서 김현우 대표와 남수빈 편집자가 서평지 교차를 출판하면서 어려웠던 과제를 설명하고 있다. 한지은 인턴기자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마포구의 출판사 읻다 사무실에서 김현우 대표와 남수빈 편집자가 서평지 교차를 출판하면서 어려웠던 과제를 설명하고 있다. 한지은 인턴기자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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