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군대 창설 시 국제 무력분쟁 우려
‘유럽의 화약고’로 불리는 발칸반도 보스니아에서 분열의 불씨가 되살아나고 있다. 영토 내에서 자치권을 나눠 가진 세르비아계가 분리 독립 움직임을 가시화하면서 26년간 이어온 ‘불안한 평화’가 깨질 위기에 처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는 최소 1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1992년 내전 악몽을 떠올리며 경계를 늦추지 못하고 있다.
2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보스니아 유엔 고등대표부를 이끄는 독일 정치인 크리스티안 슈미트 특사는 안전보장이사회에 “보스니아가 내전 이후 가장 큰 실존적 위협에 직면해 있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문건에는 “국제사회가 세르비아 분리주의를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데이턴) 평화 협정이 파기될 수 있다”는 경고가 담겼다.
이는 세르비아 분리주의 지도부의 독립 움직임을 언급한 것이다. 보스니아는 유럽에서 가장 불안한 정치 현실을 겪고 있다. 인종과 종교에 따라 세르비아계(정교), 보스니아계(이슬람), 크로아티아계(가톨릭) 3개 세력으로 나뉘며 반목을 일삼은 탓에 ‘화약고’로 불릴 만큼 늘 긴장 상황이다. 1992~1995년에는 최소 10만 명이 숨진 내전의 참혹한 기억도 있다.
한 국가 울타리 안에 살던 사람들이 동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또는 종교가 달라 서로를 잔인하게 죽였던 비극적 사건은 1995년 12월 서방이 개입해 종전협정(데이턴 협정)을 체결하며 간신히 끝났다. 이후 ‘1국가 2체제’로 재편됐다. 보스니아계(인구 50%)와 크로아티아계(15%)가 많이 거주하는 10개 주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으로, 세르비아계(31%)가 많은 지역이 ‘스르프스카 공화국(RS)’이 됐다. 이들은 외교ㆍ국방 등을 제외하고 광범위한 자치권을 갖는다. 민족 분포를 기준으로 지배 체제를 나누되 하나의 국가 형태는 유지한 셈이다.
크고 작은 갈등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민족을 대표하는 대통령을 각각 뽑고 8개월씩 임기를 돌아가며 수행토록 하는 등 나름의 ‘균형’을 맞추면서 아슬아슬한 평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달 RS 지도자 밀로라드 도디크가 “공화국 영토 내에서 연방 정부기관의 권한을 정지하고, 독자적 행정기관과 사법부, 군대를 만들겠다”고 선언해 갈등의 불씨가 살아났다.
도디크는 내전 당시 세르비아계가 저지른 인종 청소를 부정하는 민족주의자다. RS를 통치해 온 15년간 꾸준히 분리 독립을 주장해오기도 했다. 그런 그가 사실상 새 정부 수립에 준하는 분리 노선을 걷겠다고 밝히면서 세르비아계 분리독립이 코앞으로 다가온 셈이다.
그가 돌연 현 국가구조에 ‘반기’를 든 이유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지난 7월 슈미트 유엔 특사의 전임자인 발렌틴 인즈코 특사가 내전 당시 발생한 인종 청소 등 세르비아계 전쟁범죄를 부정하는 행위를 처벌하겠다고 나서면서 민족 감정을 자극한 게 도화선이 됐다는 분석이 많다. 또 유엔 고등대표부가 수년간 중앙정부 권한을 점차 강화하면서 세르비아계가 자치권 훼손의 위기를 느꼈다는 해석도 있다.
일단 미국, 유럽 등 서방국가는 도디크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의 분리 독립이 현실화할 경우 제2의 내전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탓이다. 유럽 내 ‘힘의 균형’ 역시 뒤흔들 공산이 크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반(反) 서방 성향의 도디크를 공개 지지해 왔다. 만일 RS가 보스니아 연방군에서 이탈해 독자군대를 창설할 경우 국제 무력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우려된다. 영국 BBC방송은 “세르비아 민족군의 부활은 보스니아의 많은 사람들에게 두려운 전망”이라며 “이미 허약한 (보스니아) 정부의 권위가 더 약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