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공간보다 더 낯선 시간… 설렘보다 긴장감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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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공간보다 더 낯선 시간… 설렘보다 긴장감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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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0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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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 한 발, ‘위드 코로나’ 시대 터키 여행기

이스탄불의 상징 아야소피아. 박물관이었다가 지난해 이슬람 사원으로 변경되며 입장료가 없어졌다. 누구나 통제 없이 들어갈 수 있어 예배당 내부가 거리를 유지하기 불가능할 만큼 관람객으로 붐빈다.

백신의 역습으로 다시 열리기 시작한 해외여행길. 하지만 이전의 여행과는 사뭇 달랐다. 여행은 낯선 공간과 마주하는 적극적인 행위다. 설렘 반, 기대 반으로 떠나던 해외여행에서 두려움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너무나 당연해서 의식조차 하지 않았던 모든 장면이 낯설었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 앞차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속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드넓은 공항 출국장은 적막강산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다. 봐 줄 사람 없는 대형 전광판 아래 할 일 잃은 자율발권기(키오스크)가 도열한 장면이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일찍 문을 닫은 카페, 일시적으로 영업을 중단한 면세점은 코로나19가 만들어 놓은 현재진행형 아픔이다. 지난달 26일 터키 문화관광부 초청으로 이스탄불로 향하는 밤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승객 없이 텅 빈 인천공항 출국장에 전광판만 불을 밝히고 있다.


코로나19 백신접종증명서는 질병관리청 홈페이지에서 발급할 수 있다. 대부분 국가가 요구하는 필수 서류다.


터키 정부의 사전입국신고서. 모든 사항을 입력하면 QR코드가 발급된다. 현지에서 호텔과 관광지에 입장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꼭 필요하다.


비행기를 타기까지의 과정도 예전과 달라졌다. 여권만 손에 쥐면 떠날 수 있었던 것에 비해 사전에 준비해야 할 서류가 늘었다. 우선 코로나19 백신접종증명서(영문)가 필요했다. 질병관리청 홈페이지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인증하는 확인서를 출력했다. 다음은 터키 정부에서 보내 온 링크에 접속해 사전입국확인서를 작성하고 QR코드를 출력해야 했다. 기본적인 여권 정보 외에 현지에서 머물 숙소와 전화번호까지 요구한다. 일정이 명확하지 않은 사람은 받지 않겠다는 의미다. 두 서류는 탑승 수속 과정에서 승무원들이 일일이 확인한다. 발권 창구 앞, 이탈리아로 가는 한 승객이 서류를 미리 준비하지 못해 발을 구르는 모습이 보였다.

터키는 코로나19에 걸렸다가 완치했거나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 또는 출국 72시간 이내 PCR 검사 음성확인서를 제시하는 한국인에 대해 격리 없는 입국을 허용하고 있다. 백신접종증명서와 음성확인서 두 가지 모두 요구하는 국가에 비하면 그나마 덜 까다로운 편이다.

현지 시간 오전 5시 이스탄불공항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약 2년 전 개장한 이스탄불 신공항은 유럽 중동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허브 공항이다. 평시 24시간 붐빈다는 공항이 스산하리만치 휑하다. 입국심사는 기다림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무표정이 무기인 심사대 직원도 “안녕하세요”라며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관광으로 먹고사는 나라지만 관광객이 귀한 시절이다. 입국장 대합실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 탑승권이 없는 사람은 아예 건물 안으로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스탄불 탁심광장에서 갈라타 타워로 이어지는 이스티크랄 거리. 항상 인파로 붐비지만 절반 정도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이스탄불 갈라타 타워 주변 풍경. 금각만 건너편(오른쪽)이 동로마 시대 유적이 있는 역사지구다.

다음 날 오후 신시가지 중심 탁심거리로 나갔다. 공항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다. 평일 낮인데 인파로 넘친다. 성탄전야 서울의 명동거리 분위기다. 코로나19는 이미 끝난 것 같다. 대충 봐도 절반은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타인과 스칠 때마다 조심스럽다. 이스탄불 시내와 보스포루스해협이 두루 조망되는 갈라타타워로 가는 좁은 골목길, 노천 카페의 낮은 의자에 다닥다닥 붙어 앉은 사람들이 식사하며 담소를 나눈다. 물론 ‘노마스크’다. 동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었던 역사지구로 이어지는 갈라타다리 위에는 행인과 낚시꾼들로 빼곡하다. 아무 일 없다는 듯 너무나 일상적인 모습이 또 낯설다.

이 도시의 상징적 관광지인 아야 소피아(성 소피아) 역시 다른 사람과 거리 유지가 불가능할 정도로 관광객이 많았다. 박물관으로 운영되던 아야 소피아는 지난해 이슬람 사원으로 전환하며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입장 인원도 제한하지 않는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알라 신과 모하메드가 공존하는…” 가이드의 설명이 귀에 박히지 않고 수십 미터 높이의 돔 아래 허공으로 떠돈다. 예배당 바닥을 가득 메운 관광객이 물결처럼 일렁이는 모습에 정신이 혼미하다. 기념사진을 찍겠다고 마스크를 벗는 관람객이 많아 자꾸 신경이 쓰인다. 모스크에서 바닷가로 나오는 시장 통로도 인파로 가득하다. 남대문시장 같은 좁은 골목에 상인과 행인이 뒤엉킨다. 구경할 게 많지만 재빨리 벗어나는 게 상책인 듯하다.

아야 소피아 인근 시장 골목이 인파로 가득 찼다. 평시라면 느긋하게 구경하겠지만, 서둘러 빠져나올 수 밖에 없었다.


터키는 백신 접종률을 올리기 위해 미접종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정책을 쓰고 있다. 백신접종 QR코드가 없으면 아예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다.

현재 터키는 실내 마스크 착용이 의무지만 식당이나 작은 가게에선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듯하다. 그렇다고 방역 정책이 느슨한 건 아니다. 터키공화국 선포 기념일인 10월 29일, ‘시난 오페라’ 공연에 초대받았다. 쉴레이마니예 모스크를 비롯해 400여 개의 기념비적 건축물을 남긴 오스만제국 시대의 영웅적 건축가 시난을 주인공으로 한 오페라다.

전날 모든 입장객이 PCR 검사를 받았다. 공연장에 들어갈 땐 일일이 신분증을 확인했고, 얇은 마스크를 쓴 사람에겐 바로 방역 마스크를 나눠주며 갈아 쓰도록 했다. '웬일로 이렇게 엄격하지?' 이유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공연 시작 전 에르도안 대통령이 참석해 축사를 했다. 2년 반의 공사 끝에 재개관한 아타튀르크 문화센터를 중심으로 한 베이욜루 지역을 이스탄불의 현대예술과 문화거리로 조성했다고 자랑하는 연설이었다.

관광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터키는 올 3월부터 업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코로나19 백신접종등록제를 도입했다. 여행사와 숙박업소, 식당과 상점 등 관광·서비스업 종사자에게 우선적으로 백신을 접종했다. 현재 2차 백신 접종률은 60%에 조금 못 미친다. 정부는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미접종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정책을 쓰고 있다. 보건당국에서 발급한 백신접종 코드(외국인의 경우 사전입국확인서의 QR코드)가 없으면 쇼핑센터나 호텔, 대형 건물에 들어갈 수 없다.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는데 꼭 필요한 대중교통 카드도 구입과 충전이 불가능하다.

이스탄불의 아타튀르크 문화센터. 공연장과 전시실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이다.


이스탄불 역사지구의 쉴레이마니예 사원. 오스만제국 시대의 건축물로 현지인들이 아야 소피아보다 더 중요시하는 사원이다.


갈라타 타워 야외 전망대에서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비잔틴 시대에 처음 세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타워의 하나로, 이스탄불 시내가 두루 조망된다.


그럼에도 하루 확진자는 2만 명, 사망자는 200명을 웃돌고 있다. 이제 막 ‘단계적 일상 회복’의 첫발을 내디딘 한국으로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치다. 현지인 가이드는 이슬람 특유의 ‘인샬라(신의 뜻대로)’ 정신이 방역의 방해 요소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불행을 개인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는 의미다.

출국을 앞두고 다시 한번 실시한 PCR 검사 음성확인서를 받아 든 순간,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라도 양성으로 판정되면 어쩌나.’ 일정 내내 자유와 해방감보다 긴장과 두려움에 짓눌렸던 탓이다. 한국에 도착하면 24시간 안에 다시 한번의 PCR 검사가 기다리고 있다. ‘위드 코로나’ 시대의 해외여행, 당분간 아니 어쩌면 아주 오랜 기간, 낯선 공간보다 더 낯선 시간 여행이 될 듯하다.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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