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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류세 20% 인하 효과 누리려면 2주 뒤 직영주유소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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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류세 20% 인하 효과 누리려면 2주 뒤 직영주유소 가세요"

입력
2021.10.31 09:00
수정
2021.10.31 11:4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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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11월 12일부터 6개월 동안 유류세 20% 인하
역대 최대 인하폭에도 효과 체감 2주 걸려
소비자 "내릴 땐 하세월, 올릴 땐 전광석화" 불만
정유업계 "직영 주유소 8%뿐... 즉시 체감 한계"

지난달 26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리터당 1,799원, 경유를 1,599원에 판매하고 있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정협의회에서 유류세 20% 인하, 액화천연가스(LNG) 관세율 0% 등을 내년 4월 30일까지 적용하는 내용의 물가안정대책을 발표했다. 뉴스1

지난달 26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리터당 1,799원, 경유를 1,599원에 판매하고 있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정협의회에서 유류세 20% 인하, 액화천연가스(LNG) 관세율 0% 등을 내년 4월 30일까지 적용하는 내용의 물가안정대책을 발표했다. 뉴스1

정부가 물가 안정과 서민이 느낄 부담을 줄이기 위해 12일부터 내년 4월 30일까지 약 6개월 동안 휘발유·경유·LPG 부탄에 부과하는 유류세를 20% 내리기로 발표한 지난달 26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석유협회가 열받게 하네요'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이 글에는 유류세 인하 소식을 다룬 방송 뉴스를 캡처한 화면이 담겨 있었는데요. 석유협회 측 관계자가 "주유소 기름 탱크에는 이미 유류세를 납부한 기름이 있어, 사온 가격 보다 더 낮게 팔 수 없다 보니 재고 소진에 보름 정도 걸린다"고 말했습니다.

유류세가 내려도 소비자가 그 효과를 누리려면 2주가량 시간 차가 생기는 사정을 설명한 것인데요. 유류세 20% 인하가 소비자 가격에 100% 반영된다고 가정할 경우 휘발유는 리터(L) 당 164원, 경유 116원, LPG부탄은 40원씩 내려갈 것으로 정부는 예상했지만, 협회의 설명대로라면 소비자는 11월 말쯤 이 혜택을 보게 되는 겁니다.

이에 글쓴이는 "기름값 오를 때는 중동에서 새벽 배송으로 기름 사왔더냐"고 쏘아붙였습니다. 기름값 내릴 때는 보름에 걸쳐 천천히 내리고, 올릴 때는 왜 그리 신속하게 올리냐고 비판한 것이죠. 4,000 명 넘는 누리꾼들도 이 글을 추천하며 글쓴이 주장에 동조했고, 이 글은 가장 많이 읽힌 글 1위에 올랐습니다.

정말 기름값 내리는데 2주나 걸릴까요? 정말 가격 내릴 때보다 올릴 때 더 빠를까요? 어느 쪽 말이 맞는지 과거 유류세 인하 사례를 되짚어봤습니다.



2018년, "15% 인하" 발표 뒤 2주 차에 가격 인하 폭 가장 커

유류세 20% 인하 효과.

유류세 20% 인하 효과.

가장 최근 유류세를 한시적으로 인하했던 것은 3년 전입니다. 정부는 국제 유가 상승과 내수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세 자영업자와 서민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2018년 11월 6일부터 이듬해 5월 6일까지 15% 인하했다가 5월 7일부터 약 4개월 동안 인하폭을 7%로 줄인 뒤 9월 1일 정상세율을 적용하는 단계적 환원 조치를 취했습니다.

주유소 판매가격 정보를 알려주는 한국석유공사의 '오피넷' 주간 국내 유가 동향에 따르면 당시 인하 시작일인 11월 6일이 포함된 11월 첫째 주(11월 4~10일)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660.4원으로 전주 대비 29.6원 내렸고, 그다음 주인 11월 2주에는 1,575.2원(-85.2원), 11월 3주(-28.7원), 11월 4주(-30.2원)로 나타났습니다.

전달인 10월 3주(+11.4원) 4주(+3.4원) 5주(+0.3원) 꾸준히 오르던 휘발유 값이 내리면서 유류세 인하 효과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만, 11월 2주 때 하락폭이 다른 주에 비해 거의 3배에 달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때 유류세 인하가 가장 많이 반영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물론 기름값은 세금뿐만 아니라 국제유가, 수요공급, 국제정세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영향을 줘 단순히 분석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만, 국내외 유가 동향을 모니터링하는 석유공사 관계자도 29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국제유가가 2018년 10월 1주를 정점으로 하락한 영향도 있지만, 11월 둘째 주가 하락폭이 다른 때 보다 큰 건 유류세 인하가 반영된 효과"라고 말했습니다.




2018년 5·9월 유류세 환원할 때는 1주 차에 가장 많이 올라

유류세가 환원되기 전날인 2019년 8월 31일 기름을 넣으려는 차량들로 주유소 앞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인터넷 캡처

유류세가 환원되기 전날인 2019년 8월 31일 기름을 넣으려는 차량들로 주유소 앞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인터넷 캡처

그렇다면 내렸던 유류세가 원래대로 돌아갈 때는 어땠을까요? 유류세 인하율이 7%로 줄어들었던 2019년 5월 7일이 포함된 5월 2주(5월 5~11일)에는 휘발유 값이 1,496.4원이었습니다.

이날 전후 한 달 동안 추세를 살펴보면 4월 1주 1,398.0원(전주 대비 +9.8원), 2주 1,408.3원(+10.3원), 3주 1,423.1원(+14.8원), 4주 1,441.0원(+17.9원), 5월 1주 1,460.0원(+19.0원), 2주 1,496.4원(+36.4원), 3주 1,525.5원(+29.1원), 4주 1,532.3원(+6.8원)으로, 유류세 인하율이 줄어든 5월 2주 상승폭이 다른 때보다 컸네요. "국제 유가가 5월에는 오르내렸지만, 큰 변동은 없었다"는 석유공사의 설명을 감안하면, 유류세 인하율 조정 효과가 바로 나타난 것으로 보입니다.

유류세가 정상으로 환원된 2019년 9월 1일이 포함된 9월 1주(9월 1~7일) 휘발유 값은 1,516.9원으로 전주 대비 22.9원 오르고, 2주 1,523.5원(+6.6원), 3주 1,529.1원(+5.6원), 4주 1,539.0원(+9.9원)으로 역시 환원 직후에 인상 폭이 다른 때 보다 컸습니다. 시민들이 가격 환원 전 기름을 가득 넣으려고 전날(8월 31일) 차량을 끌고 나와 자정까지 주유소 앞이 장사진을 이뤘던 기억도 나네요.

이쯤 되면 누리꾼들이 불만을 나타내는 이유가 타당해 보이긴 합니다. 중간에 정유사든 주유소든, 소비자가 누려야 할 인하 효과를 가로챈다는 거죠. 그래서 "가격 내릴 때나 올릴 때나 바로 즉시 적용하면 아무 문제 없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정유업계 "직영 주유소 8%에 불과... 정부 적극 협조해도 한계"

유류세 15% 인하 소식을 보도한 한국일보 2018년 11월 7일 자 지면.

유류세 15% 인하 소식을 보도한 한국일보 2018년 11월 7일 자 지면.

그러나 정유업계는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특히 정유업계가 직영으로 운영하는 주유소가 7.8%에 불과해,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해도 그 효과가 나타나는 데 한계가 큰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석유협회 관계자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정유업체가 정부 지침에 따라 유류세 인하 시 최대한 빨리 가격을 낮추고, 올릴 때도 최대한 늦게 올리는 데 적극 협조한다"면서도 "이런 방식으로 정유사가 가격을 통제할 수 있는 '직영' 주유소는 100개 중 8개밖에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개인이 자영업으로 운영하는 나머지 92개 주유소는 최대한 많은 이익을 내고 싶어 하니까 가격 인하 시점을 가능한 한 늦추고, 올릴 때는 가능한 한 많은 물량을 탱크에 저장했다가 인상할 것"이라며 "이들에게 '싸게 팔라'거나 '값을 천천히 올리라'고 요구할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스오일 등 국내 4대 정유회사들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직영 주유소의 경우 정부 방침대로 세금을 내린 만큼 기름값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민간이 운영하는 주유소는 '가격 내리는 것은 최대한 늦게, 올리는 것은 최대한 빨리' 식으로 하다 보니 실제 현장 주유소에서 기름값이 내리는 데 있어 의도적으로 시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유류세 인하 체감 효과가 적은 건 세금이 매겨지는 '시점'도 영향을 준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유류세는 '제조장으로부터 반출할 때 부과한다'는 규정(교통에너지환경세법)에 따라, 휘발유·경유를 정유사에서 밖으로 내보낼 때 정유사에 유류세가 부과됩니다. 소비자에게 아직 판매하지도 않은 제품에 부과된 세금을 정유사가 선납(先納)하는 구조예요.

이를 소비자가 주유소에서 기름을 구매할 때 세금이 매겨지는 방식으로 바꾸면, 유류세 인하할 때, 그리고 원상태로 되돌릴 때 그 효과가 바로 나올 수 있다는 겁니다. 다만, 지금까지 선납으로 편리하게 세금을 거둬 온 정부가 선뜻 나설지는 의문이 듭니다.




"유류세 인하 효과 최대로 누리려면 직영주유소로 가세요"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그렇다면 소비자들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업계 관계자는 "기름값이 오를 때나 내릴 때나 직영주유소를 찾아가라"고 조언했습니다.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정유사들은 일정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유류세 인하 즉시 휘발유 값을 내리고, 올릴 때는 최대한 천천히 올리기 마련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주변의 직영 주유소와 경쟁 관계인 일반 주유소들도 유사한 수준으로 가격이 조정된다는 겁니다.

오히려 심상치 않은 유가 상승세가 더 문제라는 얘기도 나옵니다. 정유 업계 관계자는 "현재 유가가 높은데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등이 배럴당 100달러 이상으로 급등할 수도 있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어, 유류세 인하 효과가 상쇄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실제로 고유가 현상이 나타났던 2008년 정부는 유류세를 10% 인하(3월 10일)했지만 효과는 얼마 가지 못했습니다. 3월 2주(3월 9~15일) 휘발유 가격이 전주보다 29.33원 하락해 1,658.54원, 3주에 1,656.78원(-1.76원)으로 떨어졌다가 4주 1,677.82원(+21.04원), 4월 1주 1,681.93원(+4.11원), 2주 1,683.76원(+1.83원), 3주 1,688.02원(+4.26원)으로 상승했죠.

당시 세율 인하가 100% 가격에 반영될 경우 리터당 82원 내릴 것이라는 정부 기대에는 미치지 못해도 일정 정도의 인하 효과가 나타났지만, 한 달이 좀 지나자 인하 이전 수준으로 회복된 겁니다. 3월 배럴당 95.9달러였던 두바이유가 7월 131.3달러까지 오르면서 휘발유 가격은 7월 1,922원까지 올랐다가 이후 국제유가가 하락하면서 12월 4주에는 1,292.88원까지 떨어졌습니다.

박민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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