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소자에 비대면 처방한 의사 실형 선고
과잉 처방 감시하지만 비대면은 어려워
법조계 "의사 윤리의식 중요" 자성 촉구
의사 A(54)씨는 2019년 1월 자신을 찾아온 '브로커'로부터 교도소 수감자에게 신경안정제인 디아제팜 등 향정신성의약품(향정)을 처방해달라는 요구를 받고, 환자 얼굴도 보지 않은 채 처방전을 발급했다. 불법 처방은 4년 동안 140차례에 걸쳐 계속됐다. 2015년 12월부터 2019년 7월까지 A씨에게 처방전을 받은 수감자만 35명에 달했고, 다수는 마약사범이었다.
수원지법 형사10단독 이원범 판사는 "의사로서 약물 오남용에 따른 부작용과 위험성을 잘 알고 있음에도 향정을 처방받지 못하는 마약사범 등을 대상으로 직접 진찰 없이 처방전을 발급했다"며 A씨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비대면·과잉… 마약류 불법 처방 횡행
28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A씨처럼 마약류를 불법 처방해주거나 특정인에게 과잉 처방해주는 의사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내과의사는 외국인 환자에게 2015년부터 4년 동안 47회에 걸쳐 향정 수천알을 처방해 준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았다.
심지어 타인 명의로 처방전을 작성해 마약류를 스스로 투약한 의사가 당국에 적발되기도 했다. 대구지법 형사1단독 이호철 부장판사는 지난 7월 15일 의사 B(53)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약물치료강의 수강을 명령했다. B씨는 신경안정제에 중독돼 병원 직원과 가족 명의로 허위 처방해 투약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수감자들은 의사에게 불법 처방받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출소한 C(50)씨는 의료 목적이 아닌데도 신경안정제나 마약성 진통제 등 마약류를 처방받아 복용하는 재소자들을 목격한 적이 있다. C씨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처방받기도 하고, 마약류를 처방해달라는 편지만 받고도 약을 내주는 병원도 있다"며 "재소자들 사이에선 마약류를 잘 처방해주는 병원이 공유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불법 많지만 적발 어려워
의료법상 마약류관리법 위반으로 금고형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으면 의사면허가 취소된다. 마약류 불법 처방이 의사 면허 박탈로 이어질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적발은 쉽지 않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2018년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을 구축해 오·남용을 감시하고 있지만, 현재는 식욕억제제와 졸피뎀 등 일부 마약류만 감시망에 올라있다.
더구나 남용이 아닌 비대면 처방은 통계상으론 드러나지도 않아 내부 제보가 없다면 적발조차 어렵다. 일선 경찰서 간부는 "불법 처방은 의사와 환자 상호 간의 은밀한 거래이기 때문에 외부에서 인지하기는 쉽지 않다"며 "적발 가능성은 낮은 반면 손쉽게 경제적 이득이 뒤따르기 때문에 일부 의사들의 비윤리적인 행태가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적발과 처벌 강화가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마약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박진실 변호사는 "마약류 불법 처방의 이면엔 결국 의사 개개인의 윤리 의식 결여가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의사 출신의 박호균 변호사도 "아무리 규제하려고 해도 의사 개인이 일탈하려고 마음먹으면 막기 어렵다"며 "약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환자를 자제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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