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윤석열...측근 관련 의혹 진땀
"측근 아니다" "특수관계 無" 등 '빠른 손절"?
역대 대통령들도 측근 관련 문제 도마에
"측근 과오는 내 책임" 사과한 노무현·노태우
?측근에 발 등 찍힌 김영삼·이명박
내년 대선을 앞두고 벌써부터 대선주자들의 '측근 관리' 전쟁이 시작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대장동 사업 특혜' 의혹,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고발 사주' 의혹으로 그들의 측근들이 도마에 올랐다.
측근은 정치 지도자의 귀를 독점하며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갖는 이들이다. 오죽하면 사전에도 '측근정치'라는 단어가 존재할까. 최고 정치권력자의 사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 측근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정치가 그것이다.
이들은 학연과 지연, 혈연을 주축으로 줄기처럼 뻗어 있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한번 인연을 맺은 측근들과 오랜 기간 동고동락한다. 그래서 이들을 두고 '정치적 동반자' '정치적 동업자'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끈끈한 관계도 깨지기 마련. 측근들이 등을 돌리는 순간 정치인에겐 폭탄이 되어 돌아온다. 우리 정치 역사에서 측근 정치가 떼려야 뗄 수 없는 특수관계인 이유다. 특히 역대 대통령들에게 그들의 존재는 꽃길이었다가 악연으로 돌변한 경우가 다반사였다. 과연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퇴임 후에도 대국민 사과한 노태우
"못난 노태우, 외람되게 국민 여러분들 앞에 섰습니다. 구차한 변명처럼 들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통치 자금은 잘못된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 정치의 오랜 관행이었습니다. 이를 과감히 떨쳐버리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저의 책임입니다."
1995년 10월 27일. 퇴임한 지 2년 만에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사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른바 '6공 비자금' 관련 내용이었다. 당시 박계동 의원이 국회 본희의장에서 노 전 대통령이 4,000억 원의 비자금을 시중 은행에 분산 예치해뒀다고 폭로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 폭로 이후 8일 만에 대국민 사과를 위해 카메라 앞에 섰다. 그는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5년 동안 약 5,000억 원의 통치 자금이 조성됐다"며 "주로 기업인들로부터 성금을 받아 조성된 이 자금은 저의 책임 아래 대부분 정당운영비 등 정치 활동에 사용됐다"고 밝혔다.
이어 "이렇게 쓰고 남은 통치 자금은 저의 퇴임 당시 1,700억 원가량 되었다"면서 "통치 자금을 조성한 것도 비난받아 마땅할 터인데 이를 국가와 국민을 위해 유용하게 처리하지 못한 것은 더더욱 큰 잘못이었다"고 머리를 숙였다.
이 비자금은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인 이원조 전 은행감독원장(금융감독원의 전신 중 하나)의 작품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원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비서실 소속 경제비서관으로, 이후 노태우 정부에선 '정치자금 황태자'로 불렸을 정도로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러나 박 의원의 폭로로 구체적 액수와 예치된 은행 지점, 예치 내용과 형태, 계좌번호까지 적나라하게 공개됐다. 당시 폭로에 따르면, 이 전 원장은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직전인 1993년 1월 말까지 상업은행 효자동 지점에 예치됐던 4,000억 원의 비자금을 각 시중은행에 100억 원씩 40개 계좌로 나눠 분산 예치했다.
당시 보도들을 보면 이 전 원장이 주도적으로 비자금을 관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몇몇 시중은행 영업담당 상무들을 불러 차명 계좌를 확보하라고 지시했고, 이러한 내용은 다시 은행 지점장들에게 극비리에 전달됐다.
결국 이현우 전 청와대 경호실장에 의해 비자금의 실체가 밝혀지기도 했다. 이 전 실장은 노 전 대통령의 육사(17기) 후배이자 하나회 회원으로, 최측근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여러 차례 이어진 검찰 수사에서 소극적으로 진술에 임했지만, 기업에 돈을 받은 내역은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전 실장의 자백에도 수사 기관과 언론은 "비자금 액수는 더 많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최측근 '입단속' 못한 김영삼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비자금 관련 폭로에 국민들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공분도 커졌다. 더욱 놀라운 건 이러한 비자금이 14대 대선에도 흘러들어갔다는 폭로도 이어져 당시 김대중(DJ)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와 재임 중이던 김영삼(YS) 대통령에게 악재로 작용했다.
김영삼 정부는 당장 수사해야 한다는 언론 등의 압박에 수세에 몰렸다. 사실 김영삼 대통령은 제 발등이 찍힌 상황이었다. 이 모든 결과의 시작은 그의 최측근이자 당시 총무처(현 행정안전부) 장관인 서석재씨의 '입' 때문이었다.
서 전 장관은 김 대통령의 '상도동계(김영삼 대통령의 직계 정치세력을 의미)' 핵심 인물로 불리는 최측근이었다. 김 대통령과 같은 경남 출신이며, 대통령에 의해 정계에 입문한, 그야말로 '김 대통령의 사람'이었다.
서 전 장관은 같은 해 8월 일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전직 대통령 중 한 명이 4,000억 원의 가·차명계좌를 가지고 있다는 '설'을 풀었다.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하에 말했다지만, 이튿날 언론에 보도되면서 이 사안은 박 의원의 폭로로 이어지는 등 후폭풍을 낳았다.
측근의 '입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서 전 장관의 '입'은 긍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 문민정부가 추진한 금융실명제가 뿌리내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또 전직 대통령 비자금 사건 수사 및 5·18 민주화운동, 12·12 군사반란 관련 재판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도 받았다.
측근 끌어안은 노무현
"안희정씨는 오래 전부터 나의 동업자이자 동지였습니다. 사리사욕을 위해 일한 것이 아니라 나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입니다. 수사가 끝났다 할 즈음에 구체적 문제들을 밝히겠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죄송합니다."
2003년 5월 1일. MBC '100분 토론'에서 취임 50일을 맞아 대국민 TV토론을 가진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이었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감쌌다. 안 전 지사는 대선 전에도 대기업들로부터 수십억 원의 정치 자금을 받아 일부를 개인 용도로 유용했다는 혐의를 받아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노무현 정권 출범 한 달도 안 돼 '나라종금 퇴출저지 로비' 의혹까지 불거진 것이다. 나라종금 퇴출을 막기 위해 이 회사의 대주주인 보성그룹의 김호준 전 회장이 1999년 6월 안 전 지사에게 2억 원을 건네는 등 여야 정치권에 로비 자금을 뿌렸다는 의혹이었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렇다. 안 전 지사는 김 전 회장의 동생이자 대학 선배인 김효근 닉스(청바지) 대표에게 자신의 생수회사에 투자 명목으로 2억 원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형에게 받은 2억 원을 안 전 지사에게 건넨 김 대표 역시 나라종금 퇴출저지 청탁은 없었다고 피력했다.
하지만 당시 한나라당의 입장은 달랐다. 안 전 지사의 생수회사가 "사실은 노 대통령의 소유"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은 '노무현 게이트'로 몰아가며 "노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몰아갔다. 요즘처럼 "특검 수사"를 외쳤다. 그러자 안 전 지사와 청와대, 민주당은 노 대통령과는 무관하다며 핏대를 세웠다.
안 전 지사와 노 전 대통령은 끈끈한 인연이 있다. 안 전 지사는 정계에 입문한 이후 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됐다. 일명 '노무현의 좌희정-우광재(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로 불리며 노무현 정권을 수립한 일등공신으로 꼽혔다.
이후에도 노 전 대통령은 안 전 지사를 한 번 더 옹호했다. 안 전 지사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른 후 2008년 출판기념회를 열었을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축하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내가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도 안희정씨가 나 대신 많은 희생을 감수하고 나는 엄청난 빚을 진 것"이라고 했다.
그의 측근 감싸기는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도 이어졌다. 2004년 최 전 비서관이 연루된 비자금 사건이 터지자 노 전 대통령은 특별기자회견을 열고 "최도술씨는 20년, 안희정씨는 15년 나와 일했으며, 이들이 조달하고 사용한 대선자금은 저의 손발로서 한 것"이라며 자신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측근 감싸기'는 노 전 대통령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2004년 3월 야당 국회의원들에 의해 탄핵 소추안이 통과하는데 빌미를 제공했다. 탄핵 소추안에는 안 전 지사, 최 전 비서관 등 측근들의 불법정치자금 수수와 함께 이를 두고 책임지겠다고 했던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다만 헌법재판소는 당시 노 전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을 기각했는데, 측근들의 불법 행위에 직접 개입했다고 볼만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도 들었다.
측근들이 등 돌린 이명박
'집사' '영원한 비서' '금고지기'. 최측근이 아니면 붙을 수 없는 수식어들이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곁에는 믿음직한 측근들이 즐비했다. 그런데 이 측근들에 의해 이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 등 무려 20여 가지의 혐의로 구속됐고, 중형을 선고받았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그렇듯 이 전 대통령 역시 숱한 의혹에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측근들을 굳게 믿었는지, 자동차 부품회사인 '다스'의 실소유자 의혹,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 사건 등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무리하게 측근들에 책임을 떠넘긴 탓이었을까. 영원할 줄 알았던 '집사'와 '비서', '금고지기'는 슬슬 입을 열었다. '영원한 비서'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은 1997년 이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의원이었을 당시 비서관으로 인연을 맺은 후, 무려 20여 년간 이 전 대통령을 보필했다. 서울시장 의전비서관과 대통령실 부속실장 등이 그의 자리였다. 그럼에도 그는 국정원 특활비, 뇌물수수 등을 검찰에 술술 불었다.
'집사'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과 '금고지기'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다스와 국정원 특활비 등과 관련해 검찰에 실토했다.
심복들의 변심은 이 전 대통령의 재판을 불리하게 만들었다. 2018년 1심에서 징역 15년형, 벌금 130억 원, 추징금 82억 원이라는 중형이 선고됐다. 항소심(징역 17년 형, 벌금 130억 원, 추징금 57억 원)과 상고심까지 이어졌지만, 대법원은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의 판결을 확정했다.
이 전 대통령은 상당히 많은 측근을 거느린 정치 지도자였다. 그는 영포라인(경북 영일·포항)과 대구·경북(TK), 고려대 출신을 중심으로 인맥 줄기를 뻗어갔다. 측근들의 힘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지만, 무리한 측근 확장은 이 전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빠른 손절' 취한 이재명·윤석열
현재 대선 국면도 측근 관리가 최대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측근 관련 의혹이 언론을 도배하고 있다. 이들이 의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택한 건 빠른 '손절' 전략이다.
이 후보는 '대장동 사업 특혜' 의혹과 관련해 측근 여부를 정리부터 했다. 그는 1일 체포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향해선 "측근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고, 18일 국감에서도 "제가 가까이 하는 참모 중 '동규' 이렇게 표현되는 사람은 없다"고 못 박았다. 심지어 TV토론에서는 유 전 본부장을 향해 "측근 그룹에도 끼지 못한다" 등의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반면 현재 이재명 캠프 총괄부실장인 정진상 전 성남시 정책실장은 측근으로 인정하며 감싸 안았다. 결국 선택적으로 측근을 선별해 손절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관계자이자 측근으로 분류된 손준성 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에 손절 반응을 보였다. .
윤 전 총장의 캠프 관계자들은 손 검사가 윤 전 총장의 측근이 아니라고 대응했다. 윤희석 캠프 대변인은 지난달 TBS라디오에서 "손 검사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인사를 냈고, 고발장을 보냈다는 시점에 대검에서 윤 전 총장과 석 달도 같이 근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병민 캠프 대변인도 YTN라디오에서 "특수한 관계로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고발 사주 의혹이 윤 전 총장과는 무관하다는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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