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판 의원 "이재명, 조폭 돈 20억 받아" 주장
조폭 출신 박철민 믿고 의혹 제기했다 낭패
박철민 변호 장영하의 "李, 조폭과 사진"도 거짓
장영하가 박철민 의심한 녹취록도 공개돼
박철민·장영하 고발돼 수사 받을 처지
1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 국감은 열리기 전부터 '이재명 국감'이라 불리며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피감기관 수장으로 국감장에 앉아야 하는 상황 자체도 그랬고, 대선 정국을 달구고 있는 '대장동 특혜 의혹'에 대한 야당의 공격과 이재명의 수비를 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꿀 재미를 선사할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정작 이날 이재명 국감의 신 스틸러는 '김용판의 돈 다발 사진' 이었습니다.
①18일 오전 김용판의 기습..."조폭 박철민이 이재명에게 돈 줬다"
전국 경찰 조직 '넘버2'인 서울경찰청장을 지낸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이 "이 후보가 조폭으로부터 돈 20억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수원교도소에 수감 중인 조직폭력배(조폭) 출신 박철민이 제공했다고 주장하는 돈다발 사진과 사실 확인서 등을 근거로 내놓았는데요.
김 의원은 그 출처와 관련해 "성남시 의회 1, 2, 3대 의원과 부의장을 했던 박용성씨(실제 박용승)의 아들 박철민씨와 코마트레이드 이준석 대표 등 모두 국제마피아파 소속 핵심 조직원"이라며 "장영하 변호사를 통해 박철민씨로부터 이 지사에 관한 공익 제보를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이 같은 주장에 이 후보는 "명백한 허위사실"이라며 "이래서 국회의원의 면책 특권을 제한해야 한다"고 반박했는데요. 그 사실 여부를 떠나 대장동 의혹이 아닌 다른 이슈를 꺼내들어 기습 공격을 했고 그것도 '조폭' '20억 원' 같은 눈에 확 띄는 단어가 등장했다는 것만으로 김 의원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여기에다 박철민씨와 소통하고 있다는 장영하 변호사가 이날 오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박철민의 얼굴을 공개하며 김 의원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그는 "박씨가 증언 신빙성을 높이려 본인 사진을 공개했다"며 "박씨가 자신의 증언이 허위 사실일 경우 허위 사실 유포죄든 명예훼손죄든 얼마든지 처벌받겠다고 했다"고 전하며 큰 소리쳤는데요.
②18일 오후...사진은 2018년 것으로 '가짜로 판명'
하지만 이날 오후 국감장에서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김 의원이 박씨가 제보했다며 국감장에서 띄운 돈 뭉치 사진은 2018년 11월 박씨로 추정되는 '박정우'라는 이름의 페이스북 계정에 이미 올라왔던 사진과 똑같다는 사실이 공개된 것입니다. 박정우는 박철민이 썼던 옛 이름이라고 하는데요.
김 의원의 의혹 제기 이후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같은 사실이 공유됐고, 민주당 한병도 의원도 국감장에서 2018년 11월 페이스북에 올라온 사진을 공개했는데요. 해당 사진은 김 의원이 제보자로부터 받았다는 돈다발 사진과 렌터카 업체 명함이 놓여진 것까지 완전히 똑같았습니다. 한 의원은 "2018년 11월 21일에 렌트카와 사채업을 해서 돈을 벌었다고 자랑하며 올린 사진"이라며 "이 후보님은 2018년 11월에는 성남시장도 아니셨잖냐"고 목소리를 높였죠.
여당은 김 의원과 국민의힘에 강경 대응하며 반격에 나섰습니다. 이 후보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인 우원식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아무리 대선을 앞두고 있다지만 국회의원이 신성한 국정감사 자리에서 조작된 자료를 제시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도저히 그냥 묵과할 수 없다"며 "조폭과 연계해 조작한 자료로 국정감사장을 더럽힌 김 의원은 국민 앞에 즉각 사죄하고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라"고 촉구했는데요.
③국감 뒤...민주당 "가짜 폭로" 강공·국민의힘 난감
윤호중 원내대표는 다음날인 19일 국감 대책회의에서 "조폭 연루설은 명백한 허위사실"이라며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명을 제소하는 등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습니다. 결과적으로 조폭의 주장을 사실 확인도 없이 국감장에서 폭로하며 여당과 이재명 지사에게 반격의 구실을 제공한 김 의원과 국민의힘은 수세에 몰렸습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억장이 무너졌다. 히딩크의 심정이 이해되더라. 그렇게 못할 수가 없다"(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혹평이 나올 정도였는데요.
정작 폭로의 당사자인 김용판 의원은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 실체는 명백하다. (박씨가 쓴) 진술서에는 진정성이 있다. 단지 사진 한 장으로 전체를 덮으려고 하는 것은 국민을 호도하는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사진은 그렇다 치더라도 박철민의 진정성은 믿는다며 이 후보와 조폭의 연관성 자체는 어디 가버린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이어갔습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이날 국정감사 대책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을 만나 "사진 (허위) 여부와 관계 없이 박씨 진술서는 매우 구체적이고, 자신의 명예를 걸고 진실이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에 진술서 진위는 함부로 의심할 수 없다"면서도 "(사진에 대한) 조사는 한다고 하니까 김용판 의원 말씀을 들어볼 것"이라고만 했는데요.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도 이날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박씨가 (진술서를) 직접 적은 게 확실하다고 본다. 위조의 가능성이 없다"며 "그 사진은 왜 등장했는지에 대해서 아직까지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어찌됐던 국감장에 깜짝 등장했던 돈 뭉치 사진 자체는 하루 만에 존재감이 바뀌어버렸는데요. 처음 나타날 때는 국민의힘을 살리고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를 곤란하게 할 것 같았지만 바로 다음날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에게 반격의 기회를 주고 국민의힘과 김용판 의원을 난감한 상황에 빠뜨린 것입니다.
게다가 박철민, 장영하 변호사 그리고 박철민의 부친 박용승 전 성남시 의원의 과거가 속속 드러나면서 이들의 주장에 대한 신빙성이 더 많이 의심받게 됐는데요.
박철민의 부친인 박용승 전 성남시의원은 현재 국민의힘 소속 정당인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은 더 악화했습니다. 그는 2008년 총선 때 친박연대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했고, 지난해 4·15 총선 때 함께 치러진 성남시의원 '라'선거구 보궐선거에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후보로 공천됐다가 무면허운전 전력으로 피선거권이 상실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돼 출마하지 못했는데요. 당시 그가 후보등록 마감 시한까지 사퇴절차를 밟지 않는 바람에, 아예 미래통합당이 후보를 못낸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도 박씨는 4월 24일 국민의힘 성남수정구 당협위원회 청년위원장으로 임명됐는데요.
박철민도 현재 폭행 등 8가지 범죄사실로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받고 수원구치소에서 복역중인데요. 그는 여성 지인들과 공모해 의도적으로 남성들에게 접근한 뒤 성폭행이나 성추행이라며 협박해 합의금 2억 여원을 받아냈고, 스스로 필로폰을 투약한 사실도 유죄가 인정됐습니다. 과거 구치소에 있을 당시에는 동료 재소자에게 "구형 선처를 받아주겠다"며 1억 9,000만원을 받아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구요.
④장영하의 또 다른 헛발질? 영어강사를 조폭이라 주장
그럼에도 박철민과 장 변호사는 물러서지 않았는데요. 장 변호사는 수감 중인 박철민을 접견한 뒤 20일 경기 성남시 자신의 법무법인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철민의 주장이 담긴 사실 확인서를 공개했습니다. 그는 "접견 시 미세한 부분은 말이 바뀌고 있지만 핵심적인 증언은 그대로"라며 "박씨 주장이 상당히 신뢰성이 높다"고 재차 주장했는데요. 그러나 진술서에 나온 내용 등을 묻는 추가 질문에는 "잘 모른다"거나 "박씨에게 설명들은 게 없다"고 얼버무렸습니다.
장 변호사는 오히려 과거 성남시장실에서 이 후보와 신원 불상의 남성이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하며 "보시다시피 이 후보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과 함께 있다. 이런 사람이 도지사를 하고, 대통령 후보를 한다는 것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고 주장했어요.
사진 속에는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된 남성이 이 지사의 성남시장 재임 당시 집무실에 놓인 것으로 보이는 책상 위에 다리를 올려놓은 채 포즈를 취했는데요. 책상에는 '성남시장 이재명'이라고 적힌 명패도 보입니다. 양쪽 엄지를 치켜든 해당 남성 옆에는 이 지사가 웃는 얼굴로 함께 선 채로 정면을 바라보며 기념 사진을 찍었어요.
사진 속 남성이 누군지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그는 또 "모른다"고 답했고, 사진 출처를 묻는 질문에는 "온라인에서 이 사진을 찾아서 여기에 공개한 것"이라고 했다는데요.
이재명 후보 측은 "해당 인물은 영어강사 정모씨"라고 반박했습니다. 이재명 캠프 수행실장 김남국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후보는 지난 2016년 시장실을 개방해 시민 누구나 방문할 수 있도록 했다"며 "시민들의 사랑을 받던 이재명 전 성남시장의 집무실을 이렇게 매도할 수 있느냐"고 주장햇는데요. 장 변호사가 문제 삼기 전날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 측이 문제삼자 김 의원이 해명했던 것을 확인하지도 않고 의혹을 제기한 것입니다.
⑤"작전 아냐?" 장영하도 박철민 의심한 녹취 공개돼
민주당에서 "면책특권이란 갑옷을 망나니 칼춤을 춘 것"(20일 민형배 의원)이란 원색적 비난까지 받은 김용판 의원은 "어쨌건 돈다발은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착잡하다"(19일 언론 통화)면서도 "비장한 마음으로 공익제보한 어떤 젊은이의 고뇌는 정말 전혀 보이지 않는가"(20일)라며 미련을 버리지 않았는데요.
박철민씨의 부친인 박용승씨도 19일 조선일보와 통화에서 "아들은 거짓말을 안 한다"며 감쌌습니다.
민주당은 또 한번 이들에게 반격을 했습니다. 박철민이 이 후보에게 돈을 건넨 사람으로 지목한 A,B씨가 장 변호사와 대화 도중 "이재명 후보를 본 적도 없다"고 말하는 음성파일과 녹취록을 김남국 의원이 21일 법사위 국정감사장에서 공개했는데요.
음성 파일에서 A씨는 장 변호사에게 "은수미(성남시장)란 사람하고 이재명이란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뇌물을) 전달했으면 했다고 하는데, 누구를 도와주기 위해 거짓말 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라고 전달 사실 자체를 부인했습니다. 다른 녹취 파일에 등장한 B씨 역시 "이 후보나 나른 측근에게 돈을 준 적이 있느냐"는 장 변호사의 질문에 "없다"고 답했는데요.
김 의원은 장 변호사 본인도 A씨와 대화하면서 "참 이상하네. 왜 박철민이가 그런 제보를 저거 하려고 그럴까?", "(박철민 말이) 앞뒤가 안 맞는 것 보다 말이 약간 왔다갔다한다", "박철민이가 돈이 생각나서 이렇게 저렇게 작전하는 것 아닌가?" 등 박철민씨 주장을 신뢰하기 곤란할 것 같다는 취지지로 말하는 대목도 나옵니다.
김 의원은 "박철민을 접견하면서 신빙성이 있는지, 진술이 모순되는 건 없는지 확인한 장 변호사 본인도 약간 뭔가 앞뒤가 안 맞고, 신빙성이 없고 일관되지 않는다는 걸 느꼈으면서도 폭로한 건 정치 공작 아닌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는데요
민주당, 장영하 변호사 고발...박철민도 시민에 고발돼
김용판 의원이 믿었던 박철민과 장영하 변호사의 주장이 하나씩 허위로 드러날 때마다 김 의원이 몸 담고 있는 국민의힘도 위축될 수밖에 없죠. 이들은 또 수사를 받을 처지입니다. 민주당이 김 의원에게 허위사실을 제보한 장영하 변호사를 22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같은 날 박철민도 일부 시민들에 의해 서울중앙지검에 고발됐습니다. 가짜 돈다발 사진'으로 논란을 자초한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은 민주당에 의해 국회 윤리위에 제소됐는데요.
그런데도 장영하 변호사는 22일 박철민의 문건을 또 공개했습니다. 문건에는 "10년간 조직폭력배 생활을 했고, 일각에선 제가 조직폭력배가 아니었다고 하는데 그에 대한 증빙자료를 공개하겠다"라며 자신의 범죄사실에 대한 변호인 의견서와 경기남부경찰청 광역수사대의 '국제마피아파 조직원들에 대한 인지보고서'를 증빙으로 첨부했습니다.
이 지사가 완전히 자유로워졌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새로운 증거나 제보, 변수가 툭 튀어나와,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처럼 전세를 뒤집을 수 있어서인데요. 국민의힘에도, 민주당에도 넉달의 시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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