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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언제 쫓겨날지 몰라" 고려인 할머니의 눈물

입력
2021.10.25 09:3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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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라 없이 지낸 150년, 고려인
빈곤·내전으로 중앙아시아 떠돌던 후손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국적 말소 절차 진행
기대 품고 온 조부모 나라서도 이방인 신세

편집자주

출생신고도 사망신고도 할 수 없는 이들이 있다. 분명 존재하지만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는 이들, 무국적자다. 전 세계 무국적자는 300만 명, 그중 3분의 1은 아이들로 추산된다. 국가에 소속되지 못해 학교에 갈 수도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는 이들의 삶은 깜깜한 절망 그 자체다. 무국적 문제는 보편 인권에 바탕해야 할 인간사회의 심각한 허점이자 명백한 인재(人災)다. 이제는 바로잡아야 할 때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3세 이아미나(55·가명)씨가 경기 안산시 자택에서 손녀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이정원 기자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3세 이아미나(55·가명)씨가 경기 안산시 자택에서 손녀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이정원 기자

"국적이 없는 건 견딜 만해요. 하지만 손주들만큼은 평생 불안에 떨며 살게 하고 싶지 않아요. 평범한 한국 사람처럼 사는 게 꿈이에요."(국내 거주 고려인 이아미나씨)

고려인에게 세계 10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은 자랑이자 기회의 땅이다. 일제강점기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가 시베리아의 동토를 맨손으로 일궜고,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떠밀려간 중앙아시아의 황무지도 옥토로 바꿔낸 이들에게 '코리안 드림'은 이루지 못할 꿈이 아니다. 하지만 국적 문제는 억척 같은 이들의 의지마저 앗아가고 있다.

코리안 드림 안고 온 지 3년, 느닷없는 '무국적' 통보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3세 이아미나(55·가명)씨는 2017년 방문취업비자(H2)를 갱신하려다가 생각지도 못한 '무국적' 통보를 받았다. 경기 안산시 선부동, 코리안 드림의 꿈을 안고 온 고려인 3,000여 명이 모여 살아 '고려인 동네'로 불리는 땟골에 터를 잡은 지 3년째 되던 해였다.

당장의 추방 위기는 고려인 지원단체 '너머' 등의 도움을 받아 동반비자(F1)를 받는 것으로 넘겼지만,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 속에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 동반비자로는 일을 할 수도 없다. 지난달 16일 안산에서 만난 이씨는 "손자·손녀가 한국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 10년은 더 일해야 한다"며 "추방 걱정 없이 일하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자신이 한국에 입국하기 8년 전인 2009년부터 무국적자였다는 사실을 이때 처음 알았다. 이씨는 "2009년 국적을 상실했다면 최소한 2014년 한국행 비자를 받을 땐 안내가 있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대사관에 따져 물었지만 딱 부러지는 대답은 듣지 못했다. 우즈베키스탄의 엉성한 행정시스템 탓일 거라는 주변의 말에 답답한 마음만 더할 뿐이다.

옆 나라 카자흐스탄에 영주권이 있었던 이씨는 "한국 생활이 길어지면서 영주권자 자격도 만료됐다"며 "무국적자가 됐다는 사실을 진작 알았더라면 카자흐스탄 국적이라도 취득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한숨지었다.

실종된 오빠... 14년 만에 받은 국적 상실 통보

이씨가 조상들의 출생증명서 등 각종 서류를 보여주고 있다. 이정원 기자

이씨가 조상들의 출생증명서 등 각종 서류를 보여주고 있다. 이정원 기자

이씨가 국적을 잃어버린 경위는 이렇다. 그는 2003년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할 마음에 우즈베키스탄 국적 포기 절차를 밟은 적이 있다. 2002년 카자흐스탄 경찰이던 오빠가 실종된 지 1년 만에 범죄 조직에 잔인하게 살해당한 채 발견되면서다. 새언니마저 떠나면서 고아가 된 조카 4명을 자신이 거둬야 했다. 입양을 하려면 조카들과 국적이 같아야 했고, 고심 끝에 우즈베키스탄 국적 포기 신청을 하고 카자흐스탄 영주권을 받았다.

하지만 입양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신속히 국적을 정리해주지 않은 탓이다.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을 오가며 조카들을 돌봐야 했고, 두 집 살림을 건사하는 삶은 간단치 않았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이씨는 결국 2014년 한국행을 결심했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던 도중에 이씨 자신도 모르게 국적이 말소돼 버린 것이다.

한국 생활도 고단하긴 마찬가지였지만,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하며 희망을 키울 수 있어 견딜 만했다. 우즈베키스탄에 있던 아들 내외와 손자가 오면서 한국은 모국이 아니라 진짜 내 나라가 돼 갔다. 손녀도 태어났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손자는 이제 모국어보다 한국어를 더 잘한다. 이씨는 "(스탈린 강제이주 당시) 내 조부모는 짐짝처럼 열차에 실려 카자흐스탄 땅에 던져졌다"며 "낯선 땅을 떠돌던 역사를 손주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임금 체불에도 말 못해" 불법체류와 다를 바 없는 삶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3세 노안나(40·가명)씨의 출생증명서. 노씨 부모님의 출생지와 민족 등이 함께 적혀 있다. 이정원 기자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3세 노안나(40·가명)씨의 출생증명서. 노씨 부모님의 출생지와 민족 등이 함께 적혀 있다. 이정원 기자

무국적 고려인은 국내에서 불법체류자와 다를 바 없는 신세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3세인 노안나(40·가명)씨는 지난해 200만 원가량의 월급을 떼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마스크 판매가 한창 호황이던 지난해 충남 천안시의 마스크 공장에서 밤낮으로 일한 대가였지만, 어디에도 말 못하고 혼자서 속앓이만 하고 있다. 무국적 신분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추방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씨는 강제이주 이후 대물림된 빈곤에서 탈출하기 위해 2012년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했다가 여의치 않자 2015년 한국으로 다시 옮겨 왔다. 우즈베키스탄 여권으로 비행기를 탈 수 있었지만, 자신이 무국적자라는 사실을 2017년 뒤늦게 알고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국적을 상실한 과정은 이아미나씨와 비슷하다. 카자흐스탄에 이주해 영주권을 얻고자 모국 국적 포기 신청을 했고, 하세월이던 국적 말소 절차가 당사자도 모르게 진행돼 버린 것이다.

노씨는 "한국에 와서 공장 일을 하면서 러시아 국적 고려인 남편을 만났고,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면서도 "국적 없는 엄마 밑에서 아이가 고생하게 될까 봐 어떤 것도 쉽게 결정할 수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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