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딸기 대통령' 부부의 사랑과 도전

입력
2021.10.15 00:00
0면
0 0
봉농원 부부

봉농원 부부

경남 거창에는 흙에 청춘을 걸고 딸기에 인생을 건 사나이가 있다. 강렬한 포스와 외모부터 범상치 않은 ‘봉농원’의 류지봉 대표다. 그는 딸기 농사에서만큼은 정부가 인정하는 ‘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 명인’, 이른바 ‘딸기 대통령’으로 불린다.

그는 어릴 적부터 농업의 꿈을 가지고 농업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20세에 본격적인 농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여러 작목 중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며 고소득 작목인 딸기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공동선별장을 만들고 한국 최초로 미군 부대에 딸기를 납품하기도 했다. 2008년에는 북한에 가서 딸기 기술을 보급하는 등 류지봉 대표는 끝없는 열정과 노력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성장했다.

위대한 인물 뒤에는 늘 그 사람을 끝까지 믿고 지지해주는 조력자가 있다. 안중근 의사에게는 그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있었고, 율곡 이이에게는 어머니 신사임당이 있었듯, 경남 딸기 명인 류지봉 대표에게는 아내 김이순씨의 헌신과 지지가 든든한 버팀목이다. 1만5,000㎡가 넘는 하우스 안의 빨간 딸기가 그녀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김이순씨는 대학생 때 같은 학교 봉사단체에서 류 대표를 처음 만났다. 농업을 사랑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당당한 모습에 마음이 끌렸다. 결혼 후 농사를 몰랐던 그녀가 육아와 농사일을 병행하기란 쉽지 않았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그녀는 불도저같이 밀어붙이는 스타일의 남편을 따라가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고 한다. 특히 공들여 만든 딸기 하우스가 태풍에 날아가고 폭설 때문에 하우스가 내려앉았을 때는 농사를 포기하고 싶을 만큼 좌절하기도 했다.

딸기 농사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부부는 지인의 추천으로 한 농민학교에 다니면서 농업인 스스로 끊임없이 배우고 도전할 때 새로운 희망이 생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졸업을 기념하는 행사 중 하나인 농산물 패션쇼에서, 두 사람은 아이들과 함께 ‘딸기와 결혼식’이라는 콘셉트로 무대에 올랐고 당당히 대상을 받았다. 그 무대의 경험은 그들이 꿈과 열정을 가지고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그들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겠다고 다짐했다.

현재 류 대표는 딸기 생산과 함께 현장실습 교육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교육을 수료한 제자가 전국에 300명이 넘는다. 부인은 봉농원 홈페이지를 만들어 소비자와의 직거래 등 소통을 담당하고 있다. 고품질의 딸기 덕분에 소비자의 신뢰가 쌓이고 판매량도 점점 늘어나 딸기 농원을 전국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유기농 설탕으로 만든 딸기잼 판매와 딸기 체험농장도 운영 중이다. 부부는 농장을 통해 체험과 교육뿐만 아니라 마음의 안식처를 제공할 수 있는 치유농장 운영과, 소외계층에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사회적 기업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스스로 빛나는 줄 알았는데 당신이 나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이 글은 한 공모전 당선작이다. 이 글귀처럼 딸기 농사의 길도 김이순씨 혼자, 류지봉 대표 혼자 만들어낼 수 없었다. 류 대표가 빛나도록, 김이순씨가 빛나도록 서로를 비춰주는 조력자로서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봉농원'의 딸기는 ‘명인의 딸기’가 될 수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꿈이 없는 사람은 숨 쉬는 시체다’라는 신조로 늘 꿈을 꾸고 도전하는 농업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민승규 국립한경대 석좌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