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기찻길 옆 쪽빛바다 넘실… 철길 소음 대신 이야기꽃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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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기찻길 옆 쪽빛바다 넘실… 철길 소음 대신 이야기꽃 피다

입력
2021.10.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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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길, 가고 싶은 거리> (50) 해운대 '그린레일웨이'
열차 달리던 철길, 사람 다니는 산책로로 변신
도심 숲길과 바다 숲길 이어진 9.8㎞ 구간
개성 넘치는 카페, 맛집 어우러진 공간도 탄생

부산 해운대 ‘그린레일웨이’ 중 해운대 미포와 송정으로 이어지는 해안 절경을 즐기면서 걸을 수 있는 산책로 구간. 이 구간에서는 해변열차와 스카이 캡슐을 탈 수도 있다. 해운대구 제공

걷기에 좋은 길은 어떤 길일까. 이 질문을 던져 돌아오는 대답은 사람마다 다르다. 보행 안전성, 쾌적성, 편의성 등 다양한 요소에 방점이 찍히지만, 그 중에서 빠지지 않고 공통적으로 돌아오는 답은 아름다운 풍광이다. 예의 세 요소를 아무리 잘 갖췄던들, 그 길이 끼고 있는 '뷰'가 그렇고 그렇다면 그냥 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부산 해운대 미포에서 송정까지 해변을 따라 이어지는 구간을 포함한 '그린레일웨이’는 최고의 걷기 좋은 길이다.

지난 10일 오후 부산 해운대 미포에서 ‘해운대 해변열차’를 타는 블루라인파크로 들어가는 길목. 많은 사람들이 휴일을 맞아 가족이나 친구, 연인 등과 화창한 가을 날씨를 만끽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해변열차가 다니는 철로와 나란히 있는 나무 데크 길에도 산보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무 데크 길 옆으로 푸른 해운대 바다가 펼쳐진다. “정말 전망 좋네”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는 감탄사들이 이어졌다.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경치에 넋을 잃고 한참을 바다만 바라보는 방문객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 길은 ‘그린레일웨이’ 중 일부 구간으로 사람들이 바다를 감상하면서 미포에서 송정까지 걸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아름다운 풍광이 절정에 이르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린레일웨이’는 말 그대로 ‘철로’다. 동해남부선 복선전철화 사업 과정에서 쓸모 없어진 폐선로를 활용해 산책로를 만들었다.

길이 9.8㎞에 이르는 이 길은 해운대 도심 숲길과 함께 천혜의 해안 절경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바다 숲길 등 여러 풍광이 어우러져 있다. 2015년 9월부터 조성 사업이 시작돼 지난해 11월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중간의 미포~송정 4.8㎞ 구간에는 해변열차와 머리 위 7~10m 높이의 공중에 설치된 레일로 '스카이 캡슐'이 다닌다. 단순히 걷는 길 이상의 볼거리와 즐길거리도 겸비한 길이다.

해운대 그린레일웨이에 조성된 나무 데크 길을 걸으면서 푸르른 바다를 볼 수 있다. 해운대구 제공


수탈 역사 현장, 시민 품으로

해운대 지역의 동해남부선 구간은 일제강점기인 1935년 개통한 포항~부산 구간의 일부다. 일제가 우리나라 자원을 수탈하거나 일본인들의 해운대 관광을 위해 만들어졌다. 1930년대 동해남부선을 이용해 쌀 등 많은 물품이 동해남부선 최대 발착역인 부산진역에 모였고, 부산항과 부산역을 통해 일본과 경성(서울) 등 다른 지역으로 갔다.

당시 수탈의 도구였던 이 철도는 해방 뒤 교통수단으로 변신했다. 포항~경주~울산~부산으로 이어졌다. 단선 선로였지만, 오랫동안 동해남부선 본선 구간으로 사용됐다. 세월이 지나면서 시가지가 확장되고 철로를 양쪽 방향으로 설치하는 복선화가 필요했다. 하지만 땅이 좁아 복선화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2013년 12월 동해남부선 본선은 해운대 장산 내 터널을 통과하는 새 선로로 이설됐고, 기존 선로는 쓰지 않게 됐다. 이후 폐선부지 활용을 두고 많은 말들이 있었다. 그중 상업 개발을 하는 방안이 나오자 시민들은 반발했다.

부산시는 2015년 2월 학자, 시민단체, 주민대표, 시·구의원 등이 주축이 된 합의기구를 만들었다. 회의를 거듭한 끝에 환경훼손과 상업개발을 최소화하는 개발계획안의 내용이 나오면서 시민들의 의견을 존중, 폐선부지를 공원화하기로 결정했다. 부산시는 동해남부선 폐선부지 전 구간을 시민에게 돌려주기 위해 산책로와 공원 등으로 만드는 데 315억 원을 투입, 지난해 11월 5년간의 공사를 마무리했다.

길이 열리자 사람 소리가 들렸다

그린레일웨이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산책을 즐긴다. 해운대가 아닌 지역의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오면서 명소가 생기기까지 했다.

해리단길에 있는 한 가게. 부산시 홈페이지

가장 대표적인 곳이 ‘해리단길’이다. 동해남부선 옛 해운대역 역사 부근인 이곳은 예전엔 기찻길 옆 작은 동네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문화와 감성이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카페와 맛집, 책방 등 50~60여 곳이 자리 잡고 있다. 오랜 기간 동안 철길 소음에 시달리면서 소외됐던 공간이 개성 넘치는 카페와 상점들이 즐비한 명소로 탈바꿈한 것이다.

해리단길은 2018년 부산연구원의 ‘부산 10대 히트상품’으로 선정됐다. 2019년에는 행정안전부가 선정한 ‘대한민국 최고 골목길’이 됐다. 당시 ‘지역 골목상권 활성화 우수사례 발표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해리단길은 도시재생 사례 가운데 예산이 거의 들지 않은 대표적 사례로 주목받았다.

지난 5월 ‘길에서 만나는 바다, 해운대 그린레일웨이’는 ‘2021 제11회 대한민국 조경대상’에 선정돼 이달 12일 국토부장관상을 받았다. 시민의 휴식과 즐거움을 더해 주는 ‘숲, 바다 산책로’로 탈바꿈시켜 도시의 공간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를 재생산한 도시재생의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은 것이다.

해운대 그린레일웨이 중 도심 숲길 구간의 모습. 가운데 산책로는 원래 철로가 있던 자리다. 해운대구 제공


계속되는 변신과 도전

작년 11월 그린레일웨이 조성 공사는 끝났지만, 이곳엔 새로운 것을 더해 이 길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작업이 부단히 이뤄지고 있다. 그린레일웨이 구간 중간쯤에 있는 동해남부선 옛 해운대역사를 도심 공원으로 조성하는 방안이 진행되고 있다. 옛 해운대역사는 국내 유일의 팔각정 형태 기차역사로 보존 가치가 높다.

해운대구는 팔각정 존치 내용을 담은 공원조성계획안을 마련했다. 팔각정 철거 내용이 담긴 공원화 계획을 세웠다가 지역 사회의 반발로 무산되자 옛 해운대역사 보존을 위한 의견 수렴과 자문 등을 통해 공원화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은 팔각정 지붕과 기둥 등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핵심이다. 팔각정 역사 양쪽 옆으로 나온 콘크리트 구조물은 부분적으로 없애지만, 그대로 유지된 팔각정 지붕 아래로 사람들이 다닐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드는 것이다. 이 통로는 옛 해운대역 뒤쪽 해리단길과 앞쪽 해운대해수욕장으로 향하는 구남로를 연결해 주는 새로운 길의 역할을 한다.

해리단길에 보행자우선도로를 만드는 사업도 진행돼 해리단길 주변 750m 구간의 도로 폭이 좁은 골목길을 방문객이 보다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보행 환경을 개선했다.

그린레일웨이 위치도

새로운 볼거리도 예정돼 있다. 해운대 미포와 청사포 산책로 사이에 있는 폐쇄된 군 막사를 문화 공간으로 바꾸기로 했다. 청사포 해안가에 있는 군 막사를 전시 공간으로 꾸미겠다는 것이다. 이 막사는 1985년 북한 간첩선이 청사포에 침투한 이후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린레일웨이 해변 산책로 아래쪽에 있다.

해운대구 관계자는 “파도 소리를 살리는 등 젊은 감각에 맞는 특별한 전시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라며 “그린레일웨이에 새로운 볼거리를 더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전쟁 때 사라진 송정옛길 복원도 진행되고 있다. 송정옛길은 일제 강점기부터 해운대 좌동과 송정을 오가는 주민들의 주요 이동통로였다. 하지만 한국전쟁 당시 군수창고가 설치되면서 주민 통행을 제한해 최근까지도 잊힌 길로 남아 있었다.

해운대구는 지난해 산책로 일부와 낡은 군수창고만 남아 있던 좌동 부산환경공단 앞부터 송정동 산58에 이르는 2㎞ 구간을 역사와 문화가 있는 길로 꾸몄다.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폐군수창고 ‘기억쉼터’를 비롯해 ‘신곡산 전망대’ 등 편의시설을 설치하고, 걷기 좋은 숲길로 복원한 것이다. 숲길, 해안길을 모두 즐길 수 있는 힐링 보행로인 송정옛길이 완전 복원되면 달맞이길, 송정해수욕장, 그린레일웨이 등 부산 명소들이 연결돼 또 다른 '걷기 좋은 길'이 생기게 된다.

부산= 권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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