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팬덤의 현장 쇼팽 콩쿠르 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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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팬덤의 현장 쇼팽 콩쿠르 D-1

입력
2021.09.30 20:00
수정
2021.10.01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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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아
조은아피아니스트ㆍ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1986년 이보 포고렐리치. https://ivopogorelich.com/


제10회 쇼팽 국제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며 이보 포고렐리치를 처음 만났던 마르타 아르게리치는 그를 ‘사막에 불시착한 어린왕자’로 기억한다. 가죽바지에 목을 훤히 드러낸 화이트 셔츠를 입은 21세 청년은 당차고도 불손한 아우라를 뿜어내며 무대에 등장했었다.(관련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WL_I1z5OHe4) 포고렐리치의 쇼팽은 그 누구하고도 비슷한 구석이 없었다. 위험을 감수하며 기존의 질서를 뒤흔드는 거침없는 해석에 아르게리치는 감전된 듯 단박에 이끌렸다고 한다.

5년에 한 번, 오직 피아노 부문에서, 오로지 쇼팽의 작품들로만 우열을 가리는 이 천하제일 피아노 경연대회는 당시에도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맹렬한 혈투를 벌였다. 열렬한 팬덤과 격렬한 논쟁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던 포고렐리치의 독특한 개성은 바르샤바의 경연이 본격 시작되기 전부터 언론의 관심과 출전자들의 견제에 노출되었다. 그에게 쇼팽 콩쿠르의 악풍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확고한 미적 기준을 요구하는 쇼팽의 피아니즘은 객관성을 중시하며 전통을 수호하려 들었다. 심사위원단은 예선부터 드러난 포고렐리치의 독특한 개성에 격렬한 거부반응을 보인다. “콩쿠르의 스타는 어디까지나 쇼팽이지 일개 참가자가 아니다”라고 그의 독자성을 반박하는가 하면, “이 연주를 선발한다면 평생 해왔던 음악인생을 부정하는 셈”이라며 거세게 물리쳤던 것이다.


2013년 이보 포고렐리치. 빈체로 제공


통상적인 콩쿠르는 심사 과정에서 최저, 최고 점수를 제하고 평균을 낸다. 심사위원의 편견 혹은 담합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쇼팽 국제 콩쿠르는 1점 같은 낙제점도 고스란히 반영해 심사위원의 자율성과 권위를 존중한다. 결국 포고렐리치는 오케스트라와 협주곡을 연주하는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만점을 준 심사위원이 더 많긴 했지만, 아예 낙제점을 준 심사위원들의 몰이해를 극복하지 못했던 탓이다. 이 기계적인 심사 시스템에 마르타 아르게리치는 엄중히 항의한다. ‘여럿이 말을 그리면 낙타가 되어버린다’는 냉소를 전하며 예술에서 민주주의가 공정한 결과를 담보할 수 있는지 신랄히 비판한다. 그리곤 심사위원단의 일원이란 사실이 부끄럽다고 소란스레 선언하며 사퇴해버린다.

당시 우승자는 베트남 출신의 당타이 손이었다. 쇼팽 콩쿠르 사상 아시아권 최초의 우승자란 중요한 상징성을 획득했는데도 포고렐리치를 향한 대중의 열광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탈락 직후 언론과 가진 인터뷰는 200여 회에 달했고, 바르샤바 음악원의 학생들은 ‘우리의 우승자는 이보 포고렐리치’라며 대안 트로피까지 전달했다.(관련영상: https://youtu.be/aAFb9YkjK0g) 쇼팽 콩쿠르의 우승자와 음반계약을 체결하는 오랜 전통을 지켜온 도이치 그라모폰은 당시론 예외적으로 탈락자와 장기계약을 맺는다.

포고렐리치의 세계적 명성은 이처럼 콩쿠르 탈락으로부터 비롯된 열광적 신드롬에 기인했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에겐 무거운 강박이 되었던 모양이다. 2008년 포고렐리치는 쇼팽 국제 콩쿠르 위원회 측에 1980년 당시 자신의 연주 영상과 채점표를 공개해 달라고 요구한다. 왜 그런 대우를 받았는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으며 이제껏 짓눌려 왔던 그림자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언론에까지 알려져 파장이 일어나자 쇼팽 콩쿠르 측은 ‘법원의 판결처럼 콩쿠르 결과는 되돌릴 수 없다’라고 민감히 반응한다.

2015년 조성진이 우승한 이후 한국에서도 뜨거운 팬덤을 형성해온 쇼팽 콩쿠르가 내일(10월 2일)로 다가왔다. 5년마다 한 번, 5의 배수 연도에 늘 개최되었지만 작년엔 코로나19 확산으로 1년 연기됐다. 연주 영상 심사와 예선을 거친 96명의 본선 진출자 중 한국인은 7명에 이른다. 잔혹한 이벤트라 할 이 경연에서 포고렐리치처럼 고유의 개성을 갖춘 인재를 발굴할 수 있을 것인가. 참신한 예술성이 만발하길 고대해본다.

조은아 피아니스트ㆍ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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