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 정규직 전환 미쳤네요. 정규직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구직자는 외면하고 어중이떠중이 뒷문으로 채용된 비정규직들은 정규직 되고.” “매점 아줌마도 대졸 공채로 입사해서 머리 아픈 일하는 직원들하고 똑같은 급여 받는 거죠. 공산주의스러운 발상이죠.”
2017년의 마지막 날, 서울교통공사 노사가 무기 계약직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하자 온라인 공간에서는 원색적 비난이 쏟아졌다. ‘88만원 세대’의 공저자로 유명한 박권일은 최근작 ‘한국의 능력주의’에서 이 일화를 소개하면서 한국사회를 사로잡은 ‘능력주의’는 지대추구의 특성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능력에 따라서 일하고 보상받자’라는 주장 이면에 입직 당시의 시험 성적만으로 자신이 누리는 급여나 복지 특권을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박권일은 “시험 보고 입직한 사람만 정규직의 지위를 누리고,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그 일에 숙달됐어도 시험을 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저임금과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것이 공정한가?”라고 직구를 던진다.
양극화 시대…능력주의 한계 드러나
능력주의는 ‘능력과 노력에 따른 응분의 보상체계’라는 의미로 널리 쓰인다. 능력은 재능과 노력으로 구성되지만 방점은 노력에 있다. 노력한 만큼 가져간다는 생각이 불평등을 정당화한다. 신의 뜻에 따라서 신분을 세습했던 시대보다 능력주의가 작동하는 현대가 대중에게 유리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능력주의가 사회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는다. 영국의 사회학자가 반세기 전에 정립한 개념이 어째서 오늘날 한국에서 논쟁거리로 떠올랐을까?
그것은 능력주의가 불공정한 불평등을 합리화한다는 사실이 한국에서도 드러났기 때문이다.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시기에는 그러한 부작용이 부각되지 않았다. 절대 다수가 가난했기 때문에 열심히 일할수록 형편이 나아졌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희망과 능력주의는 통하는 면이 있었다. 지표로도 상고나 공고를 나왔던 사람들이 중산층 대열에 합류할 여지가 커졌던 것이 확인된다. 외환위기 이전까지는 말이다. 이제는 듣기가 지겨울 정도로 잘 알려진 ‘양극화’의 시대가 열리면서 열심히 일해도 빈곤을 벗어나기 어려운 사회구조가 고착화됐다. 당장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학벌과 소득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증명한 연구들을 찾아보기가 어렵지 않다. 교수들끼리 뭉쳐서 자녀들의 스펙 쌓기를 돕는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박권일은 “이제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의 입을 찍소리 못하게 틀어막는 철퇴가 됐다”라고 비판한다.
"능력주의는 지배적 원칙으로는 부적당"
박권일은 “능력주의는 정의를 가장한 부정의, 사이비 정의”라고 못박는다. 사회구조적으로 만들어진 모순을 온전히 개인의 문제로 돌린다. 박권일은 세습 신분제적 요소가 제거된 것으로 가정되는 ‘이상적 능력주의’ 역시 능력을 분배의 유일하거나 지배적 기준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비판한다. 불평등의 심화는 민주주의의 악화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능력주의는 민주사회가 추구해야 할 지배적 정의 원칙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정유라가 3루에서 태어난 사람인 건 맞지만…"
최서원의 딸 정유라를 비판한 글로 온라인 커뮤니티들에서 화제를 모았던 ‘이대 학생의 일침’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우리가 중앙도서관에서 밤을 샐 때 너(정유라)는 어디서 뭘 했을까? 네 덕분에 그 동안의 내 노력들이 얼마나 빛나는 것인 것,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실감이 난다.”
박권일은 정유라를 3루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비유한다. 어쩌면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점수를 벌어놓은 사람일 수도 있다고도, 조국의 딸 조민 역시 최소한 3루에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초점을 이대 학생에게 옮긴다. “그는 3루에서 태어난 건 아니지만 사회 전체를 놓고 보면 적어도 ‘1루에서 태어난 사람’ 정도는 된다. 글쓴이가 타고난 학습능력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등록금이 비싼 대학교 중 하나에서 학업에 열중하는 것이 순전히 본인의 공적이나 기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개인적 자질과 가정환경은 전적으로 우연히, 그러나 너무나 불평등하게 주어지는 조건이다. 불법이나 편법이 아니라고 해서 인생 출발선의 불공정이 자동으로 공정해지지는 않는다.”
여전히 남은 질문 "대안이 뭔가?"
능력주의 비판은 어제오늘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마이클 샌델이 내놓은 철학서가 서점가를 휩쓸기도 했다. 능력주의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꽤 알려져 있는 셈이다. “그래서 대안이 뭔데? 어쩌자는 건데?”라는 질문에 답변하는 것이 과제로 남아있다. 박권일은 책의 말미에서 다양한 대안을 제시한다. 사회의 작동원리를 바꾸는 작업은 언뜻 불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박권일은 결국에는 한국인들이 길을 찾을 것이라고 썼다. 그는 능력주의를 화석연료에 비유한다. 한때 사회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고 성장의 필수연료였지만 이제는 바꿔야 할 연료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