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년 만에 마련된 전문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두고 의료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13개 분야별 전문간호사 업무를 지정하고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전문간호사 자격인정 등에 관한 규칙 개정안'이 입법예고 기간이 끝났음에도, 대한의사협회 등의 반발이 거세자 정부가 공포 여부를 망설이고 있다. 보건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상황에 정부가 지나치게 의사 눈치를 본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14일 개정안을 두고 “의료계에서 개정안의 단어 하나하나에도 민감해하고 있어 여러 검토를 거쳐야 할 것 같다”며 "개정안 공포까지 앞으로 한달 이상 걸릴 것"이라 밝혔다.
의협 등 "전문간호사제는 의사 권한 침해"
전문간호사란 해당 분야에서 3년 이상 경험이 있고, 석사 학위 이상을 취득해 특정 분야에서 전문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간호사를 말한다. 전문간호사제 자체는 1973년 도입됐으나 업무 범위가 명확지 않아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전문간호사제의 업무범위를 명확히 규정한 개정안을 만들었다.
하지만 의사단체는 이를 의사 권한 침해로 받아들이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들은 ‘지도에 따른 처방하에 시행하는 처치’ 같은 문구를 문제 삼는다. 마취전문간호사가 의사 지시 없이 단독으로 마취할 수 있다는 뜻이라는 주장이다. 의협은 이달부터 복지부 청사 앞에서 개정안 반대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 중이다. 진료거부, 헌법소원 등도 불사한다는 계획이다. 의협 이외 응급구조사협회도 ‘응급전문간호사가 응급구조사의 업무 영역을 침범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의사 없고 전문간호사 안 되면, 누가 치료하나
이에 대해 간호사 단체들은 “개정안은 간호사의 '단독' 의료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하고 있다. 전문간호사는 간호사보다 업무 범위가 넓을 수밖에 없다는 걸 의사들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최수정 한국전문간호사협회 부회장은 “미국은 일찌감치 의사, 간호사, 약사 등 6개 전문직 단체가 협의를 진행한 끝에 '소비자에게 효율적으로 보건의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업무가 서로 겹친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합의했다"며 “국내에서도 확실한 프로토콜 아래 의사가 상당수 업무를 전문간호사에게 위임할 수도 있다는 연구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마취 문제만 해도 전문의를 구하기 어려운 일부 지역 병원에서는 현실적으로 마취전문간호사가 필요한데, 전문의는 늘리지 않으면서 전문간호사만 불법이라는 것 적절치 않다”고 반박했다.
신영록 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코로나19 상황에서 복지부가 의협 눈치를 보고 있다”며 “현장에서는 인력부족으로 간호사들이 ‘PA(Physician Assistant)’라는 이름으로 불법 진료를 하고 있어 대안이 필요한데, 앞에서는 합법인 전문간호사제를 막고 뒤에선 불법을 방치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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