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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 작가이자 치열하게 인생을 사랑했던 여성, 토베 얀손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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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 작가이자 치열하게 인생을 사랑했던 여성, 토베 얀손을 그리다

입력
2021.09.13 04:3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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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개봉하는 핀란드 영화 '토베 얀손'

핀란드의 국민 캐릭터인 무민의 원작자인 토베 얀손의 삶을 그린 영화 '토베 얀손' 중 한 장면. 얀손은 극중 "내 길이 만화가인지, 소설가인지, 극작가인지, 화가인지 모르겠지만 모두 하고 싶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만화와 동화를 그리고 쓰면서도 평생 화가로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영화사 진진 제공

핀란드의 국민 캐릭터인 무민의 원작자인 토베 얀손의 삶을 그린 영화 '토베 얀손' 중 한 장면. 얀손은 극중 "내 길이 만화가인지, 소설가인지, 극작가인지, 화가인지 모르겠지만 모두 하고 싶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만화와 동화를 그리고 쓰면서도 평생 화가로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영화사 진진 제공

"화가로서 실패해서요."

화가로 활동하다 동화를 쓰게 된 이유를 묻자 토베 얀손은 씁쓸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16일 개봉하는 영화 '토베 얀손'(15세 관람가)에 나오는 대사로, 이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사이기도 하다.

정직한 제목이 말해주듯 영화는 핀란드의 국민 캐릭터 '무민'으로 유명한 작가 토베 얀손(1914~2001)의 삶을 그린다. 북유럽 설화 속 괴물이 원형인 무민은 서구권에선 동화와 만화, 애니메이션 주인공으로 70여 년간 사랑받아온 캐릭터. '토베 얀손'은 얀손을 다룬 첫 번째 전기 영화다.

지난 1일 폐막한 제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작으로 먼저 선보인 이 영화는 성공한 예술가를 다룬 일반적인 전기 영화와 결이 다르다. 감동적 성공 스토리의 기승전결 구조를 따르지 않고, ‘히트작’의 탄생 배경도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토베 얀손’은 서른 살의 얀손이 무명 화가였던 1944년부터 부친이 세상을 떠난 1958년까지 14년의 삶을 그린다. 얀손은 “예술가가 아니면 동정의 대상인” 집에서 “천재 아버지의 오점”인 딸로 태어났다. 정치 풍자 만화가로, 삽화가로 재능을 조금씩 인정받지만 그에겐 어디까지나 그림을 그리기 위한 부업일 뿐이다. 예술가들 모임에서 만난 유부남 언론인 아토스 비르타넨과 연인이 된 얀손은 삽화 의뢰로 알게 된 시장의 딸이자 연극 연출가인 비비카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비비카는 야릇한 인물. “네 그림도 좋지만 네가 그린 만화는 특별해”라며 얀손의 진짜 재능을 끌어내주지만, 이기적이고 자유분방한 연애로 얀손에게 상처를 안긴다.

‘토베 얀손’은 얀손의 화려한 성공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대신 예술과의 관계, 사랑하는 이들과의 관계에서 그가 보이는 긴장과 불안, 희열과 좌절, 열정과 우울의 터널을 어떻게 통과하는지 질풍 같은 감정의 여정을 보여준다. 그 중심에는 실패한 사랑 이야기가 있다.

자유분방하게 욕망을 드러내며 주체적 삶을 살았던 얀손의 열정적인 삶을 그리지만 전반적 정서는 불안하고 외롭다. 그렇다고 차갑게 가라앉은 공기가 영화의 마지막까지 지배하는 건 아니다. 고독과 상처, 우울을 딛고 얀손은 조금씩 성장하며 작가로서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영화 속 얀손이 상처와 술에 취해 추는 막춤과 실제 얀손의 행복한 춤을 각각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 배치한 건 그러한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토베 얀손'에서 주인공 얀손이 무민을 그리는 장면.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토베 얀손'에서 주인공 얀손이 무민을 그리는 장면. 영화사 진진 제공

'토베 얀손'은 여성의 관점으로 여성 예술가의 삶을 그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영화다. 감독, 제작자, 촬영감독, 시나리오 작가 모두 여성이다. 자이다 베리로트 감독은 "세상에서 자신의 목소리와 자리를 찾아 헤매는 뛰어난 예술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라고 소개했다. 린다 베스베르그 촬영감독은 16㎜ 카메라의 거친 질감으로 20세기 중반의 유럽을 고풍스럽게 재현해내며 영화의 완성도를 끌어올린다.

얀손은 주위의 평가와 상관없이 평생 화가로 살았다. 동성애에 대한 따가운 눈초리 속에서도 죽을 때까지 그래픽 아티스트였던 연인 툴리키 피에틸라와 함께하며 사랑을 지켰다. 영화는 얀손과 피에틸라와의 관계가 시작하는 것을 보여주며 끝이 난다. 영화를 제작한 안드레아 로이터는 “얀손을 동화책 읽어주는 나이 든 여성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그가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규범에 도전하는 열정적이고 당찬 여성이었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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