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조직법 개정안 발의부터 부결까지]
5월 발의... 대법원 "판사 늘려야" 찬성
민변 "국민 눈높이 재판·법관 독립...
'경력 법관 채용' 제도 취지 잊었나" 반대
법사위 이후 통과 탄력 받는 듯 했으나
본회의서 기권 46표 나오며 결국 부결
민변 "사법개혁 올바른 정착 계기 삼아야"
판사임용기준을 법조 경력 10년에서 5년으로 낮추면 사실상 판사 승진제가 부활한다. 1, 2심 판사의 요건이 법조경력 5년과 10년으로 나뉘기 때문이다.
현행법은 길게는 18년간 논의 후 도입했다. 반면 이번 개정안은 공청회 한 번 안하고 발의 후 3개월 만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처리하려 한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반대 토론 중
현행법 도입 후 법관 임용에 상당한 제한을 겪고 있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 매년 149~175명의 법관을 임용했지만, 2013년 이후에는 2017년과 2020년을 제외하고는 39~111명만이 임용됐다.
충분한 수의 판사 임용을 통해 충실하고 신속한 재판을 받을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려는 개정안의 입법 취지에 공감한다.
6월 법원행정처의 법원조직법 개정안 찬성의견
지난달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홍정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부결됐습니다. 찬성 111표, 반대 72표, 기권 46표로 반대와 기권을 합하면(118명) 찬성과의 차이가 불과 7표에 불과했습니다. 그만큼 의견이 팽팽하게 갈렸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현행 제도(일명 '법조일원화')는 10년 이상의 법조경력을 가진 자를 법관으로 임용하도록 합니다. 단 유예기간을 둬 2013년부터 최소 법조 경력 기준을 차근차근 높여가고 있습니다. 올해까지는 법조 경력 5년 이상의 판사를 임용했고, 내년부터 2025년까지는 7년 이상의 경력자를, 2026년부터는 10년 이상의 경력자를 법관에 임용할 예정입니다.
법조일원화는 사법개혁의 하나로 도입됐습니다. ①다양한 경험을 쌓은 판사가 일반 국민의 시각에서 재판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또 ②부장판사, 더 나아가 법원장, 대법원장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독립된 재판을 하는 기틀을 마련하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10년 이상의 법조 경력자를 뽑으면 미국처럼 1심 재판을 판사 혼자(단독 재판부) 충실히 심리하는 시스템이 갖춰질 거라는 기대도 있었죠.
대법원·홍정민 "경력 법관 뽑아보니... 신규 임용 판사 줄어"
그런데 5월 18일 발의된 개정안은 판사 임용 기준을 법조경력 10년 이상에서 5년 이상으로 다시 낮추자고 주장합니다. 판사 임용 기준을 높여보니 신규 판사 임용이 크게 줄어드는 문제점이 발생했다는 겁니다. 특히 2018년부터 법조경력을 3년에서 5년으로 올리면서 2017년보다 전체 판사 수가 줄어드는 현상까지 발생했습니다.
그와 함께 법조경력 10년이면 법조계에 어느 정도 자리 잡았을 때라 법관 지원자가 더욱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 판사수 부족으로 이미 '3분' 또는 '5분' 재판의 문제점을 경험하고 있다는 점도 개정안 통과의 근거로 제시됐습니다.
민변, 개정안 반대..."정작 새 법관 늘리려는 노력은 안 해"
대법원은 6월 홍 의원 발의안에 찬성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7월 15일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1소위를 통과한 이후 거센 비판에 직면합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사법센터는 다음날 개정안을 규탄하는 장문의 성명서를 발표합니다. 가장 우려했던 것은 재판 독립의 훼손이었습니다. 사법센터는 "(법조경력) 5년 이상으로 낮추면 상대적으로 연령이 낮은 법률가들이 임용되고, 부장판사의 지도를 받으며 보조적 지위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동시에 법원이 지난 10년 동안 법관 임용 방식이나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법관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는 점도 꼬집었습니다. "필기시험과 성적 위주의 임용제도는 법관 지원자들의 범위를 좁혀 제도 취지에 반한다", "판사지원율이 낮아지는 것은 판사의 노동 강도가 높기 때문인데, 법원을 매력적인 직장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다"는 것이죠.
대법원, 판사 수 증감 예측자료까지 내며 조목조목 반박
그러자 대법원이 직접 나섭니다. 법원 안팎에서 쏟아진 반대 의견에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며 조목조목 반박한 것입니다. 대법원은 "현행 제도를 현실에 맞게 정착시키기 위한 개선의 일환"이라며 "(이른바 '엘리트 판사'의 승진 코스였던) 고등법원 부장판사 직위가 없어지고, (부장판사 3명으로 구성된) 대등재판부를 확대하며 법원 내 관료주의는 상당 부분 해결됐다"고 말했죠.
신규 임용 판사의 역할이 보조 정도에 머물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판사로서 법리를 정확하게 적용하고 판결문 작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능력을 확인하기 위한 평가는 있어야 한다. 또 우리 국민은 1심 단계부터 합의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판결 초고를 쓰는 배석 판사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대법원은 여기에 현행법과 개정안 각각에 따른 판사 수 증감 예측 자료도 함께 발표했습니다. 현행법을 유지하면 2029년 총 판사 수는 현재보다 200명가량 줄어들지만, 개정안이 통과되면 지금보다 500명 이상 늘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탄희, "개정안은 관료주의로의 회귀" 반대...결국 부결
이후 로스쿨협의회, 한국법학교수회, 대한변협 등 법조계 단체들이 개정안에 찬성 의사를 밝히며 다시 개정안 통과 분위기가 무르익는 듯했습니다. 개정안은 지난달 24일 법사위를 통과했는데요. 대법원은 그 전날 "법원조직법이 개정되면 장기 법조경력자 임용을 확대하기 위한 상설 기구를 설치하겠다"는 계획까지 발표합니다.
분위기는 본회의가 열렸던 지난달 31일 다시 반전됩니다. 민변과 참여연대가 그날 개정안 통과 중단을 촉구하는 한편, '사법농단의 폭로자' 이탄희 민주당 의원이 반대 토론에 나서면서입니다. 사법농단은 법원 관료주의의 폐해가 집약된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관련기사)
이 의원이 우려한 것 역시 '관료주의로의 회귀'였습니다. 즉 '1심 판사는 5년, 2심 판사는 10년'으로 임용 기준의 차이를 두면 '1심→2심'으로의 승진 구조가 다시 만들어질 것이라는 겁니다. 이 의원은 승진에서 탈락한 판사들이 법복을 벗고 변호사 개업을 하면서 발생하는 전관 예우의 폐해도 발생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개정안을 발의한 홍 의원은 '법관 1인당 연간 사건 수가 589건으로 사법시스템이 비슷한 독일, 일본에 비해 2배 이상 많다', '민·형사사건 1, 2심 처리일수는 10년 동안 각각 30일, 56일 이상 증가했다'는 데이터를 제시하며 개정안 통과를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부결됐죠.
같은 당 동료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에 대해 반대 토론을 하고 또 다른 같은 당 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지며 법안이 없던 일이 되는 경우는 흔치 않죠. 그만큼 법안 자체가 민감하고, 통과될 경우 파장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공감대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다시 '사법개혁'...논의 불붙을까
민변 사법센터는 이후 "10년 동안의 법조 일원화를 평가하고 올바른 정착을 위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는 논평을 냈습니다. 이번 법안의 발의와 처리 속도가 이례적으로 빨랐다는 점에서 '법원행정처의 입법 로비와 국회의원들의 무비판적 수용'을 규탄하기도 했고요.
3개월 넘게 이어진 법원조직법 개정을 둘러싼 진통은 결국 사법개혁 논의의 불쏘시개가 된 셈입니다. 다만 그동안 국회의 방관, 법원의 미온적 태도에 비추면 장작이 활활 타오를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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