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해 11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사법농단' 관련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공판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사법농단’이라 불리는 사법행정권 남용 실태가 드러난 지 곧 만 3년이 된다. 고고함과 권위로 포장됐던 사법부의 민낯은 2017년 3월 ‘법원행정처(행정처)가 양승태(72) 전 대법원장에 비판적인 판사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했고, 이에 이탄희(42) 전 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이 항의성 사직서를 냈다’는 보도 이후 드러났다. 강제징용ㆍ통상임금ㆍ전교조 사건 등에서 청와대 입맛에 맞는 판결을 이끌어 내 사법부 스스로 독립성을 외면했다는 사실도 줄줄이 밝혀졌다.

양 전 대법원장의 후임자인 김명수(61) 대법원장은 이듬해 5월 사법행정권 남용 보고서를 발표하며 관련자 형사처벌 검토와 행정처 개혁을 약속했다. 그 결과로 검찰 수사가 이어지며 양 전 대법원장 이하 13명의 법관들이 형사재판을 받고 있고, 1건은 1심 재판이 끝났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의 폐암 수술과 임종헌(61) 전 행정처 차장의 법관 기피 신청으로 재판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행정처를 대법원으로부터 분리된 조직으로 만들겠다는 김 대법원장의 약속은 어떻게 되었을까. 법원의 자체 조직개혁은 동력을 잃었고, 행정처 폐지의 키를 쥔 국회에서 사법개혁은 존재감이 사라진 지 오래다

 ◇ 내ㆍ외부 비판에 멈춘 법원 자체개혁 
20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 첫날인 지난해 10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회의실에서 법무부 국정감사가 열렸다. 첫날 감사 대상인 대법원을 대표해 김명수 대법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사법농단은 사법행정사무를 처리하는 권한이 대법원장과 행정처로 집중되면서 발생한 사태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인 행정처가 인사ㆍ예산ㆍ회계 등 중요한 업무를 도맡는 사이, 행정처는 1%의 엘리트 판사들만 가는 ‘출세의 지름길’이 되었다. 보장된 승진 앞에 법관들은 관료화됐고, 대법원장은 제왕적 사법행정권을 누릴 수 있었다.

김 대법원장이 사법개혁 방안으로 행정처 폐지를 내세운 것도 이 때문이었다. 같은 해 2018년 11월 대법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사법행정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해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이하 사개특위)에 제출했다. 주요 내용은 법원행정처를 폐지하는 대신,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사법행정회의가 주요 사법행정 안건을 심의ㆍ의결하고, 법원사무처를 신설해 집행과 실무를 담당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법원 자체 안에 대해 내외부적으로 “개혁 의지가 후퇴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당시 박주민(47)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법원장이 법원사무처장을 임명하기 때문에 대법원장의 사람은 사실상 7명”이라며 달라진 것이 없다고 일침을 놓았다. 사법행정회의 위원장은 대법원장이 맡고 법관 위원과 비법관 위원은 각각 5명씩 두되, 비법관 위원 중 1명은 국회 인사청문을 거쳐 법원사무처장으로 임명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법원의 개선안을 만든 ‘사법발전위원회 건의 실현을 위한 후속추진단’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추진단 단장을 맡은 김수정 변호사는 “추진단이 대법원장에 건의한 법률 개정안에 대해 다시 법원 구성원들로부터 의견을 듣는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라고 비판했다. ‘셀프개혁’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추진단을 꾸렸는데 다시 법원 내부 의견을 듣는 건 모순된다는 주장이었다.

대법원은 차선책으로 지난해 9월 사법행정자문위원회(이하 자문위)를 구성했다. 대법원장 포함 법관 5명과 비법관 4명이 인사ㆍ예산 등 대법원장이 올린 안건을 분기별로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또 산하에 법관인사분과위원회를 둬 행정처 외부 법관들이 인사안을 한 번 더 검토하도록 했다. 자문위의 회의결과를 대법원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등 사법행정사무를 투명하게 처리하려는 노력의 일환이긴 하지만, 말 그대로 차선책이기 때문에 제왕적 대법원장ㆍ법관의 관료화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기능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열쇠 쥔 국회는 “사법개혁 나몰라라”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안이 표결처리되고 있다. 오대근 기자

법원행정처 폐지는 그 근간이 되는 법원조직법을 개정해야 가능하다. 즉, 국회가 사법개혁의 결정적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총선을 세 달 남짓 앞둔 현재, 법원조직법 개정은 여당 쟁점 법안에 포함되기는커녕 사실상 사장된 분위기다. 청와대의 강력한 입법 의지를 등에 업고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통과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ㆍ검경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한 국회 관계자는 “법원조직법은 논의의 ‘ㄴ’자도 안나오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대법원이 2018년 12월 사개특위에 제출했던 법안 포함, 현재까지 행정처 폐지를 담은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모두 4개(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 안, 안호영ㆍ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안)다. 그 중 대법원 안은 내ㆍ외부 반발로 발의조차 안됐다. 각각 2018년 2월과 9월에 나온 주광덕, 안호영 의원 안도 발의된 지 1년이 훌쩍 지났지만 진전된 논의를 이끌어내진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1월 초 발의된 박주민 의원 안도 회기(5월 29일) 내에 통과될 가능성이 전무하다. 박 의원 측은 “세 법안들이 21대에서 사법개혁 논의의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법원조직법 개정안 비교. 박주민 의원실

지금에서야 법원조직법 개정안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진다고 가정하더라도, 개정안 자체에 논쟁의 여지가 있어서 전향적인 결과를 얻긴 힘들다. 박 의원 안은 ‘법원행정처를 대체할 사법행정위원회 위원 중 비법관 6명을 국회에서 선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를 두고 헌법 101조 1항(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 위반 등 사법권 독립을 해친다는 논란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박 의원 측은 헌법학자로 유명한 정종섭 자유한국당 의원의 의견을 인용하며 “헌법 101조에 규정된 사법권은 법령을 해석ㆍ적용하는 재판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사법농단 사태를 돌이켜 볼 때 법안의 취지를 백 번 이해한다”면서도 “양날의 칼이 될 것 같은데 한 쪽 날이 과도하게 크고 날카로운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비쳤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민주당 10호 영입인재인 이탄희 전 판사에게 당원교과서를 전달하며 기념촬영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법농단 사건이 역사의 성숙한 발전을 가져다 줄지, 아니면 그저 한 역사적 사건으로만 남을지 기로에 서 있는 상황이다. 지금으로서는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지난 13일 사법농단 첫 선고에서 유해용(54)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유 전 연구관은 임 전 행정처 차장과 공모해 휘하의 연구관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의료인’ 소송 진행 상황을 파악해 보고하도록 한 혐의 등을 받았지만 법원은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았다. 이뿐만 아니라 이 판사 등 사법개혁의 선봉에 섰던 판사들이 총선출마를 이유로 연달아 법복을 벗어 자칫 사법개혁의 정당성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이 21대 국회에서 사법개혁의 꺼진 동력을 살릴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사법개혁으로 쌓인 명성을 정계진출에 이용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윤주영 기자 ro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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