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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영변 핵시설 전격 재가동... "핵시계 다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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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영변 핵시설 전격 재가동... "핵시계 다시 돌렸다"

입력
2021.08.30 20:00
수정
2021.08.30 21:44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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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EA "7월 초부터 영변 시설 재가동 정황"

북한 내 주요 핵시설 현황. 그래픽=박구원 기자

북한 내 주요 핵시설 현황. 그래픽=박구원 기자

북한이 2018년 12월 이래 개점휴업 상태였던 영변 핵시설을 전격 재가동한 정황이 포착됐다. 영변 핵시설은 핵탄두 제조에 필요한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곳으로 북한 핵개발의 본진(本陣) 격에 해당한다. 대북 적대시 정책을 전부 폐기하라는 요구를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자 “그렇다면 멈춰 세웠던 핵시계도 다시 돌리겠다”고 역공에 나선 것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7일(현지시간) ‘북한에 대한 안전조치 적용에 관한 보고서’를 내고 “영변 5㎿(메가와트)급 원자로가 7월 초부터 원자로 가동과 일치하는 냉각수 방출 등의 징후를 보였다”고 밝혔다. IAEA는 특히 “방사화학실험실에 증기를 공급하는 화력발전소가 올 2월 중순부터 7월 초까지 5개월간 가동됐다”는 점을 핵시설 재가동 증거로 제시했다.

방사화학실험실은 ‘우라늄 정제→미사용 연료봉 제조→연료봉 연소→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로 이어지는 플루토늄 생산 과정 중 최종 단계인 ‘재처리’가 이뤄지는 장소다. 북한은 1992년 IAEA에 제출한 방사화학실험실 설계 정보에서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완료를 위해선 5개월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화력발전소 가동 기간과 거의 일치하는 만큼 설비 유지 등을 위한 일시적 가동이 아닌 플루토늄 생산을 목표로 한 전면 재가동이 이뤄졌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IAEA는 또 다른 핵시설로 알려진 평양 인근의 강선 지역에서도 내부 건설 작업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고 보고서에 적시했다.

北 "핵무기 더 갖겠다" 선언?

지난해 10월 북한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진행된 열병식에서 탄도미사일을 실은 트럭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0월 북한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진행된 열병식에서 탄도미사일을 실은 트럭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영변 핵시설은 북한 핵무기 개발의 시작이자 뼈대다. 1989년 플루토늄 추출에 필요한 재처리 시설을 처음 돌린 바로 그곳이다. 국제사회는 2006년부터 2017년까지 북한의 6차례 핵실험에 쓰인 핵물질 상당량도 영변 핵시설에서 생산됐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현재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는 적게는 25~30개(지프리드 해커 스탠퍼드대 선임연구원), 많게는 67~116개(미국 랜드연구소)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2년 6개월이나 운영을 중단했던 최대 핵시설을 재가동했다는 건 핵무기 생산을 더 늘리겠다는 명제로 귀결된다. 향후 추가 핵실험이나 핵탄두 투발 능력을 증명하기 위한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이 뒤따르면 북한의 핵 개발 가속 의지는 보다 선명히 드러나게 된다.

반면 재가동 대상이 ‘영변’이란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미는 북한에 약 20곳의 핵무기 관련 시설이 있는 것으로 의심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2019년 언론 인터뷰에서 하노이 회담 결렬 이유 중 하나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한두 곳 핵시설을 없애길 원했지만, 그는 5곳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영변만 주시하고 있지 않고, 확장해 해석하면 영변 핵시설의 가치도 예전만 못하다는 뜻이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30일 “그간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했다고 볼 정황은 어디에도 없었다”면서 “영변이 돌아가든 말든 북핵 위협이 상존하는 현실은 그대로”라고 말했다.

북미 '시간 싸움' 시작됐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평양 4·25 문화회관에서 열린 제1차 군 지휘관·정치간부 강습회를 지도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평양 4·25 문화회관에서 열린 제1차 군 지휘관·정치간부 강습회를 지도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북한의 의도가 무엇이든 조 바이든 미 행정부에는 새로운 안보 악재가 될 게 확실하다. 외교가에선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다시 돌린 시점을 주목하고 있다. 7월은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정책 재검토를 마친 뒤 새 정책을 발표한 직후다. 바이든 대통령은 ‘관여’를 통한 비핵화 해법을 제시했지만,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은 대북제재 해제는 없다고 못 박았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대북 기조에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최고 수위의 압박을 구사한 셈이 됐다. 한 국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정책의 방향을 바꾸지 않는 한 먼저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북한의 의지가 핵시설 재가동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핵 해법의 ‘새판 짜기’도 불가피해졌다는 평가다. 현재로선 북미가 “시간은 우리 편”이라며 서로 유리한 패를 들고 있다고 우기는 형국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이 고강도 제재 카드를 갖고 있는 한 아쉬울 건 상대라고 판단하자, 북한도 핵고도화 의지를 내비치면서 시간의 주도권을 미국만 쥐고 있지 않다고 응수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부는 당분간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외교부는 이날 “한미가 긴밀히 공조해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있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통일부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정착,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조영빈 기자
정승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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