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언론중재법' 강행에 방관 모드?
법안 거부권 행사 안 해 '암묵적 동의' 할 듯
#1. “권력기관 개혁을 제도화로 마무리 짓고자 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국가정보원법, 검경 수사권 조정 등 입법을 위한 국회 협조를 당부드린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2. "입법은 국회 소관이라 할 말이 없다."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문 대통령의 침묵에 대해 청와대가 내놓은 설명의 요지다.
문 대통령이 유불리를 따져 ‘선택적 침묵’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검찰개혁은 '깨알 주문'... 언론중재법에는 '침묵'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밀어붙이기로 정국이 얼어붙었는데도, 언론중재법이 '국민 기본권'과 관련한 사안인데도, 청와대는 내내 입을 닫고 있다. “입법ㆍ사법ㆍ행정권 3권 분립 원칙에 위배되므로 청와대는 입법에 의견을 말할 수 없다”는 게 청와대 논리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지난해 국회를 향해 검찰개혁법 통과를 '깨알 주문'했다. “공수처 설치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국회에 다시 당부드린다”(2018년 2월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 “국회도 검찰개혁을 위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아주시기 바란다”(2019년 국회 시정연설) 등에서다.
검찰개혁뿐만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2020년 12월 “공정경제 3법(상법ㆍ공정거래법ㆍ금융그룹감독법)과 노동관련법 등의 정기국회 내 성과를 거두기 희망한다”고 했다.
청와대와 국회는 국정 운영의 양대 축이다. 청와대가 국정과제를 제시하고 국회는 입법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대통령제의 작동 원리다. '3권 분립'은 행정부와 입법부의 상호 견제·균형을 강조하는 원칙이지, '너 따로 나 따로'를 규정한 게 아니다.
'당청은 원팀'임을 문 대통령은 강조해왔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지난 5월 취임했을 때 “송 대표를 중심으로 '원팀'을 만들어 민주당과 청와대가 호흡을 맞춰달라”고 했다.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강행에 청와대가 "민주당이 하는 일이라 모른다"는 태도를 취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 정치인 시절 '언론 자유' 지지했는데
문 대통령이 언론 자유를 지지한다면서 언론중재법에 침묵하는 것도 모순적 태도다. 문 대통령은 지난 17일 한국기자협회 창립 57주년 축하메시지에서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 기둥이다. 정부는 여러분이 전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언제나 함께하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100대 국정 과제에는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독립성 신장’이 포함돼 있다.
문 대통령은 2019년 9월 ‘국경없는 기자회’ 인사들을 만나 “언론의 자유야말로 민주주의의 근간,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2012년 대선 때는 언론노조의 ‘언론민주주의 회복 서약식’에 참석해 “차기 정부는 언론 자유의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어떠한 시도도 배격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국가기관의 권력 남용을 근절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문 대통령이 퇴임 후 언론의 칼날을 피하기 위해 언론중재법 통과를 묵인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침묵은 의혹을 더 키운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퇴임한 고위 공직자가 언론 보도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길을 열어 뒀다. '문 대통령 가족의 보험 입법'이라는 비판을 해소할 책임이 직접 당사자인 문 대통령에게도 있다.
◇문 대통령, 법안 거부권 행사 안 할 듯
민주당은 이달 30일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고 예고했다. 민주당 안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폭주하는 상황이다. 민주당을 멈춰 세우고 사회적 논의를 다시 시작하게 할 마지막 힘은 문 대통령의 '한마디'에 있다.
국회 본회의 통과 이후에도 기회가 없는 건 아니다. 문 대통령이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하면 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끝내 눈감을 것이라는 전망이 현재로선 많다. 여권 관계자는 "청와대가 적극 반대했다면 민주당이 이렇게 법안을 추진할 수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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