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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래를 봅니다"… 에릭 칼의 '공감각적' 회화 선물

입력
2021.08.26 15:0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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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어린이 책은 결코 유치하지 않습니다. ‘꿈꿔본다, 어린이’는 아이만큼이나 어른도 함께 읽으면 더 좋을 어린이 책을 소개합니다. 미디어리터러시 운동을 펼치고 있는 박유신 서울 석관초등학교 교사가 <한국일보> 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애니메이션 제작자 이안 하비가 에릭 칼의 작품을 바탕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유튜브 캡처

애니메이션 제작자 이안 하비가 에릭 칼의 작품을 바탕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유튜브 캡처

그림책이 모두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나는 온전히 어린이를 위해 계획된 '두 손 위의 예술적 경험'이라는 점에서 언제나 귀중함을 느낀다. 그런 면에서 에릭 칼은 내 인생의 작가다. 에릭 칼의 모든 작품이 색채의 아름다움으로 가득하지만 그 중에서도 'I See A Song'이라는 특별한 작품이 있다. 국내에 '나는 노래를 봅니다'(더큰컴퍼니)로 번역된 작품이다.

책장을 넘기면 검은 실루엣의 바이올린 연주자가 등장한다. 연주의 시작과 함께 활 끝에서 아름다운 추상적 이미지가 피어나고, 곧 그 이미지는 책장을 가득 채운다. 우리는 음악이 만들어 낸 우주 안에서 달이 바다를 헤엄치고 아름다운 물고기가 리드미컬하게 유영하는 바닷속 세상을 만나게 된다. 바닷속 인어와 함께 음악이 만들어 내는 감동에 눈물을 흘리고, 흐름을 따라 피어나는 가지각색의 감흥이 만들어 낸 이미지에 젖어 들다 보면 어느새 연주가 끝나 있음을 알게 된다. 이제 음악의 감동으로 알록달록하게 물들어 있는 연주자에게 박수를 보낼 시간이다.

에릭 칼의 'I See A Song' 표지.

에릭 칼의 'I See A Song' 표지.

에릭 칼이 보여준 아름다운 '시각적 음악'에서 어렵지 않게 칸딘스키를 떠올릴 수 있다. '음악을 그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20세기 초 칸딘스키가 그의 회화를 통해 탐구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칸딘스키는 다양한 음악적 심상을 시각적 기호로 번역해 회화를 음악처럼 ‘작곡(composition·컴포지션)’했다. 우리는 칸딘스키의 추상회화 속에서 흘러넘치는 색채와 선과 형의 율동을 통해 음악적 기쁨과 감동을 느낀다. 그러나 칸딘스키의 회화 작품에는 형식적 한계가 있다. 음악은 시간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칸딘스키의 이 주제는 미디어 발전과 함께 20세기 내내 탐구됐다. 20세기 초 독일 영화인들은 영화라는 시간예술 속에서 칸딘스키를 완성시켰다. 오스카 피싱어의 추상 애니메이션이 대표적이다. 피싱어의 애니메이션 속에서 추상 회화의 형과 선과 색채들은 음악에 맞춰 리드미컬하게 율동한다. 후에 피싱어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시각적 음악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 '판타지아'가 그러한 맥락에서 나온 작품이다. 시각과 음악의 어울림은 20세기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주요 주제다.

애니메이션 제작자 이안 하비가 에릭 칼의 작품을 바탕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유튜브 캡처

애니메이션 제작자 이안 하비가 에릭 칼의 작품을 바탕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유튜브 캡처

'나는 노래를 봅니다'는 칸딘스키의 탐구 주제에 대해 에릭 칼이 그림책 작가로서 어린이를 위해 마련한 답변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림책은 책장과 책장을 통해 음악적 이미지에 시간을 부여한다. 음악의 시간은 이미지와 함께 내러티브를 만들어 내고 감상자를 예술적 감동에 몰입하게 만든다.

흥미롭게도 '나는 노래를 봅니다'에서 온전히 독자의 상상력에 맡긴 음악예술과 움직임 역시 애니메이션으로 다시 태어났다. 어린이 애니메이션 제작자 이안 하비가 에릭 칼의 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더 월드 오브 에릭 칼'시리즈에 수록된 동명의 애니메이션 작품이 그것이다. 애니메이션 '아이 씨 어 송'은 에릭 칼이 표현한 음악적 회화를 공감각적 체험으로 이끌어낸다. 바로크풍의 서정적 음악과 생동감 있는 움직임이 그림책을 살아 움직이게 한다. 음악적 감동으로 인어가 눈물을 흘릴 때 감상자 역시 음악의 색채에 물들어 마음이 젖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아마도 어린이를 위해 만들어진 최상의 예술적 경험일 것이다.

나는 노래를 봅니다·에릭 칼 지음·더큰컴퍼니·28쪽·9,000원

나는 노래를 봅니다·에릭 칼 지음·더큰컴퍼니·28쪽·9,000원

에릭 칼의 예술은 그림책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공감각적 회화와 시각적 음악으로 어린이를 안내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어린이 독자는 '나는 노래를 봅니다'를 통해 음악 그림책의 예술적 체험 속으로 안내하는 '현대의 칸딘스키'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림책은 매체와 매체를 잇고, 그 안에서 예술적 아이디어를 이어가는 장르 간 연결 고리인 동시에 그 세계를 어린이에게 열어주는 문이다. 에릭 칼은 세상을 떠났지만 최근 발간된 이수지 작가의 '여름이 온다'가 어린이를 위한 시각적 음악의 계보 위에 서 있다는 점은 그 문이 여전히 열려 있고, 이제 한국 어린이들에게 다가왔다는 점에서도 깊은 감동을 준다.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 '여름이 온다'는 비발디 '사계' 중 '여름'을 회화로 표현했다.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 '여름이 온다'는 비발디 '사계' 중 '여름'을 회화로 표현했다.


박유신 서울 석관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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