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 강변에서 발견된 조선인 여성들…  미군이 기록한 일본군 위안부

이전기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버마 강변에서 발견된 조선인 여성들…  미군이 기록한 일본군 위안부

입력
2021.08.26 15:32
수정
2021.08.26 17:15
0 0

태평양 전쟁이 아시아 곳곳에서 벌어지던 1944년 8월, 버마의 이라와디 강가에서 조선인 여성 20명이 영국군에게 발견됐다. 일본군이 패주하면서 버려진 조선인 위안부들이었다. 미국 전시정보국(OWI) 심리전팀이 작성한 일본인 전쟁포로 심문 보고서에는 이들이 고향을 떠나온 과정과 타국에서 겪었던 일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보고서는 이들이 1942년 5월 조선으로 몰려온 일본인 대리인(agent)들에게 속아서 모집됐다고 밝히고 있다. 대리인들은 “새로 영토로 확보한 동남아시아에 파견돼 위안 봉사활동(comfort service)을 하게 된다”면서 봉사(service)의 성격을 특정하지 않았다. 병원을 방문해 부상병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일을 할 것이라고 불분명하게 설명했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1942년 8월 20일 버마로 향한 수송선에 탑승한 조선인 여성은 703명에 달했다.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본 해방 전후의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미국의 소리(VOA) 기자와 MBC 워싱턴특파원으로 근무했던 언론인 김택곤은 지난 20여 년 동안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그 답을 찾아왔다. 해방 직후 한반도에 진주한 미군정의 문서부터 평양 주재 소련대사관에서 노획된 편지까지 그가 추려낸 4,000건의 자료에는 한국의 현대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OWI가 작성한 보고서는 그 일부다.

미국 육군 인도-버마전쟁지구사령부에 파견된 전시정보국 심리전팀이 1944년 10월 1일 작성한 일본인 전쟁 포로 심문 보고서. 현재의 미얀마 북쪽에 있는 미치나 지역을 점령한 이후, 패잔병 소탕작전에서 포로로 잡은 한국인(Korean) 위안부 여성(comfort girls) 20명을 심문한 결과를 담고 있다. 맥스미디어 제공


보고서에는 당시 위안부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이 담겨 있다. 위안부 가운데 절반이 넘는 11명이 19세 이하의 나이로 모집됐다. 이들은 서울과 평양은 물론, 고흥, 삼천포, 진주, 마산 등에서 모집됐다. 가장 어렸던 대구 출신의 김연자는 17세에 버마 땅을 밟았다. 김연자의 계약서에는 “일본군의 제반 규정을 지켜야 하며 가족의 빚 상환을 위해 선금으로 지급된 액수에 따라 6개월에서 1년까지 집주인을 위해 의무적으로 일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연구한 일본의 학자들이 펴낸 ‘일본인 위안부-애국심과 인신매매’에 따르면 돈을 빌려주고 근무하면서 갚도록 계약하는 방식은 일본에서 일본군을 대리해 위안부를 모집한 중개업자들이 흔히 사용한 수법이었다. 일본의 극우세력은 ‘무력을 이용한 강제연행은 없었다’면서 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하지만 학자들은 약취 유괴는 당대의 일본법으로도 불법이었다고 지적한다.


'미국 비밀문서로 읽는 한국 현대사 1945-1950'. 김택곤 지음ㆍ맥스미디어 발행ㆍ752쪽ㆍ3만5,000원


보고서에는 ‘1943년 빚을 청산한 일부 위안부가 한국으로 돌아가도록 허용됐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김택곤은 귀향의 기회는 사실상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병사들이 지불한 돈의 대부분을 포주들이 가져갔을 뿐만 아니라 빚을 상환한 위안부라도 집에 돌아가기 위해서는 군 당국의 허락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김택곤은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귀향을 허용하는 군의 명령은 매운 드문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위안부 생활을 더는 지탱할 수 없을 만큼 몸과 마음이 다 망가진 여성들에게 내려졌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무엇보다 위안부들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위안소 밖에는 차례를 기다리는 병사들이 언제나 장사진을 이뤘다. 여성들은 고통스럽고 힘겨웠으며 그때마다 병사들은 화를 냈다고 진술했다. 보고서에는 ‘만취한 장병들과 이튿날 전투를 앞둔 병사들이 몰려오면 그때마다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고 증언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폭격이 심해지면서 위안부들은 참호로 수시로 대피했는데 그곳에서도 위안소에서와 같은 일을 해야 했다.

김태곤은 버마에서 벌어진 비극을 조명하는 데 머물지 않고 미국 국립보관소에 보관된 한국 자료들을 바탕으로 주목받지 못한 역사를 되짚는다. 주요 인사들이나 기관이 주고받은 자료들 속에는 승전국 지위를 얻으려고 안간힘을 썼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몸부림부터 북한의 남침을 경고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전망까지 온갖 내용이 담겨 있다. 빛 바랜 서류더미에 새롭게 그려낸 한국 현대사다.


미국 육군 전시정보국 심리전팀이 작성한 일본인 전쟁 포로 심문 보고서에 기록된 위안부들의 신상. 이름과 나이, 출신지가 기록돼 있다. 맥스미디어 제공


김민호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라이브 이슈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