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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 일촉즉발·경제 위기 본격화… '퍼펙트 스톰' 닥친 아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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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 일촉즉발·경제 위기 본격화… '퍼펙트 스톰' 닥친 아프간

입력
2021.08.23 21:0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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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병력, 저항군 진지 코앞서 대기
카불공항서 신원미상 침입자 총격전도
화폐가치 하락, 인플레로 밀가루·쌀값↑
"경제적 어려움, 탈레반의 가장 큰 도전"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조직 탈레반 대원들이 22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인근 거리를 순찰하고 있다. 카불=UPI 연합뉴스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조직 탈레반 대원들이 22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인근 거리를 순찰하고 있다. 카불=UPI 연합뉴스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무너뜨린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정상 국가’로의 길은 멀기만 하다. “포용적 정부를 구성하겠다”는 대외적 공언이 무색하게 뒤에서는 기존 정부를 지지하는 반(反)탈레반 세력을 향해 칼을 뽑아 들며 또다시 내전이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곪을 대로 곪았던 경제적 궁핍 상황도 탈레반 집권을 계기로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한층 더 악화할 게 확실시되고 있다. 외국 정부로부터 ‘정통성 인정’을 받는 것뿐 아니라, 정국 안정과 경제 살리기까지 그 어느 것 하나 녹록지 않으면서 탈레반 손아귀에 놓인 아프간에 ‘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 위기)’이 닥치는 분위기다.

탈레반, 저항군 진압 위해 병력 투입

22일(현지시간)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탈레반이 새 정부 구성을 앞두고 정상 국가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각종 안정화 조치를 내놓고 있지만 내부는 여전히 극심한 혼돈에 빠져 있다. 당장 정국은 내전 직전의 일촉즉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날 러시아 스푸트니크통신은 탈레반이 북부 판시지르주(州)의 한 계곡에 수백 명의 병력을 투입했다고 전했다. 이곳에 진지를 구축한 반탈레반 저항세력 진압이 목적이다.

정부군과 지역민병대로 구성된 저항군은 탈레반 측에 포괄적 정부 구성을 요구하며 이를 거부할 경우 ‘결사 항전’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아프간 ‘국부’로 불리는 아흐마드 샤 마수드 전 국방장관의 아들이자 저항군 지도자 아흐마드 마수드는 이날 사우디아라비아 국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린 아프간을 지킬 준비가 돼 있고 유혈사태를 경고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탈레반이 짜는 새 판에 기존 정부 목소리를 대변할 인사를 합류시키지 않는다면 전쟁마저 불사하겠다는 으름장이다.

21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대피 작전을 수행 중인 한 미 해병대원이 공항 철조망 너머로 넘겨진 현지인 아기를 돌보고 있다. 카불=EPA 연합뉴스

21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대피 작전을 수행 중인 한 미 해병대원이 공항 철조망 너머로 넘겨진 현지인 아기를 돌보고 있다. 카불=EPA 연합뉴스

대규모 무력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탈레반 측 진압군은 반군의 코앞에서 수뇌부의 공격 명령을 기다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은 양측 간 교전으로 번지지 않았지만, 대화가 어그러질 경우 즉각 본격적 내전 상황으로 돌입할 수밖에 없는 불씨도 살아 있다는 얘기다.

탈(脫)아프간 인파가 몰린 수도 카불 국제공항도 일주일째 생지옥이다. 이날 두 살배기 여아가 불어난 인파에 짓밟혀 압사했다. 신원 미상 침입자가 아프간 정부군 및 미군, 독일군과 총격전을 벌이면서 정부군 한 명이 숨지고 세 명이 부상을 입는 사건도 발생했다. 아비규환의 현장인 셈이다.

아프간 남아도 절대 빈곤에 '생존 위협'

고국에 머물러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남은 이들은 이제 국제사회의 원조 중단과 물가상승(인플레이션)에 따른 절대 빈곤으로 생존마저 위협받는 처지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아프간 내 밀가루, 쌀, 기름 등 생필품 가격이 탈레반의 카불 입성(15일) 일주일 만에 20% 올랐다고 전했다. 아프간 정부 몰락으로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 공무원 등은 주택 임차료는커녕 식량을 살 돈마저 부족해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한 전직 경찰은 “아내의 반지와 귀고리라도 팔려고 했지만 금은방은 문을 닫았고 사려는 사람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사실 탈레반 점령 전에도 아프간 경제 상황은 처참했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아프간 인구 90%가 하루 2달러(약 2,300원) 이하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현실은 더 악화됐다. 당장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이 탈레반의 ‘자금줄’을 끊었다. 주요 7개국(G7) 정상도 24일 긴급 영상회의를 열고 압박 수단 마련에 나선다. 이 자리에서 의장국인 영국이 경제 제재와 지원 중단 검토를 제안할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은 내다봤다. 여기에다 금융기관뿐 아니라 웨스턴유니온 같은 해외송금 업체마저 문을 닫으면서 돈 가뭄은 한층 심화했다. 지난해 해외 거주 아프간인들이 송금한 돈이 국내총생산(GDP)의 4%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돈줄을 죄는 일련의 행위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한테 돌아가는 셈이다.

10일 아프가니스탄 남부 최대 도시 칸다하르 중심가의 한 시장이 탈레반의 점령으로 텅 비어 있다. 칸다하르=EPA 연합뉴스

10일 아프가니스탄 남부 최대 도시 칸다하르 중심가의 한 시장이 탈레반의 점령으로 텅 비어 있다. 칸다하르=EPA 연합뉴스

화폐 가치 하락, 물가 상승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카불 함락 직전 1달러에 80아프가니 수준이었던 환율은 현재 달러당 86아프가니까지 올랐다. 화폐 가치가 일주일 만에 7.5%나 떨어진 셈이다. 이미 경제적으로 피폐한 아프간에 초인플레이션까지 닥칠 것이란 경고마저 나온다. 아즈말 아마디 전 아프간 중앙은행 총재는 블룸버그통신에 “통화 약세가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고, 그래미 스미스 해외개발연구소(ODI) 연구원은 “빨리 현금을 투입하지 않으면, 이제 일반인들은 길에서 빵을 사 먹기도 힘들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날로 악화하는 경제는 정권을 손에 넣은 탈레반에도 상당한 부담이 될 전망이다. 인도 일간 타임스오브인디아는 “(자금난이 이어지면) 폭력과 혼돈 상황은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경제적 어려움은 탈레반의 가장 큰 도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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