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한’ 보편화된 가상 일본 그린 장편소설?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
노마문예신인상 수상한 재일교포 3세 작가 작품
도쿄올림픽에서 유도 동메달을 딴 안창림 선수는 재일교포 3세다. 전일본학생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뒤 귀화를 제안받았지만 거절하고 2014년 한국으로 건너와 한국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그가 정작 차별을 실감한 것은 한국으로 넘어온 이후다. 일본에서는 ‘조센징’이라고, 한국에서는 ‘쪽바리’라고 불리며 이중 차별을 경험하는 존재가 재일 한국인이다.
이용덕의 장편소설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는 이처럼 일본과 한국 양쪽 모두에서 타자화되는 재일 한국인의 현실을 톺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작가 역시 1976년 사이타마현에서 태어난 재일 한국인 3세다. 와세다대학 제1문학부를 졸업한 뒤 2014년 ‘죽고 싶어지면 전화해’로 제51회 문예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지난해 출간돼 노마문예신인상을 수상한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는 작가가 처음으로 재일 한국인이라는 테마를 본격적으로 다룬 장편소설이다.
소설의 설정은 극우파들이 정권과 여론을 장악한 가상의 일본 사회다. 외국인에 대한 생활보호가 사라지고 한국에 악감정을 가진 일본 국민이 90%에 달하는, 말하자면 ‘혐한’이 보편화된 근미래다. 재일과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 극심해진 일본에서 한국 음식점들은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라는 종이를 내걸고 장사하고, 전광판을 포함한 대부분의 안내판에서는 한글이 사라진다.
이런 상황에서 한 젊은 여성이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여동생의 복수를 꿈꾸는 김태수에게 가시와기 다이치라는 재일 한국인 남성이 찾아온다. 그는 "김태수씨가 진심으로 원하는 두 가지를 확실하게 이루어드릴 수 있다"는 야릇한 제안을 던진다.
소설은 다이치가 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재일 한국인들을 하나씩 포섭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물론 이들이 모두 같은 가치관을 가진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한국은 '모국'이고, 또 누군가에게 한국은 '외국'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이들에게 한국이 결코 '안전하고 친절한 고국'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재일 한국인에 대한 혐오가 극심하다고 해서 일본 사회가 모든 영역에서 혐오와 차별에 무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본 정부는 동성혼을 합법화하고 부부별성제를 실현하는 등 진보적인 정책을 추진한다. “한쪽의 인권 침해를 다른 쪽의 인권 보호로 상쇄”하는 전략인 셈이다. 일본 이외의 세계가 저지르는 혐오나 차별에 비하자면, 오로지 재일 한국인만을 대상으로 한 흉악 범죄는 별 게 아니라는 논리까지 펼친다.
이 같은 설정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차별'과 ‘혐오’ 그 자체다. 한국에 대한 애국심을 고취하고, 반대급부로서 ‘혐일’ 감정을 키우는 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한국으로의 귀화를 선택하는 대신 재일교포로 남아 싸우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설령 한국에 간다고 해도, 우리들은 역시 박해받지 않겠어? 적극적 차별주의자의 비율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어느 나라든 어느 지역이든 변하지 않을 테니까"라는 자조적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소설에서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되는 마야가 단순히 재일 한국인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페미니스트에 비건에 기지 반대를 외치는" 인물이기도 하다는 설정이 말하는 바 역시 그렇다. 소설은 재일 한국인이 처한 현실에 대한 첨예한 고증이자, 혐오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를 향한 공통 질문이기도 하다.
다소 과격한 구호처럼 느껴지는 제목은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 발생 당시 실제 있었던 사건에 기반한다. 당시 ‘조선인이 소동을 틈타 우물에 독을 풀었다’와 같은 유언비어가 퍼졌고, 이를 실제로 믿은 일본인들이 자경단을 급조해 죽창과 곤봉, 단도 등의 흉기로 이웃 재일 조선인들을 학살한 사건이다.
90여 년 전과 지금은 얼마나 다른가. 여전히 일본 극우단체의 데모에서 ‘좋은 한국인도 나쁜 한국인도 다 죽이자’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린다. 그뿐일까? 종교와 민족의 이름을 내건 배제와 탄압의 역사는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현재진행형이다.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라는 제목의 결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씁쓸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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