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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귀신과 시체가 '여성'이어야 하는 이유

입력
2021.08.21 04:3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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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미지(未知)를 공포로 취급해 온 역사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과학을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하미나 작가는 과학사 전공자답게 2030 여성의 건강문제, 덜 눈에 띄는 여성의 산업재해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1994년 방영한 KBS 드라마 '무당'의 한 장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4년 방영한 KBS 드라마 '무당'의 한 장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모할머니는 서울 삼양동의 가난한 달동네에 살았다. 가족 안에서 나는 늘 자기만 아는 못된 애로 여겨져 왔다. (지금은 그것을 칭찬으로 알아듣는다.) 친척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별로 없는데 이모할머니는 그런 나를 가장 예뻐하셨다. 대여섯 살이었는데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은 날 정말 사랑한다.

유치원 시절 어느 날 삼양동 할머니 댁에 놀러 갔는데 좋아하는 과일이 잔뜩 있었다. 짜장면을 딱 한 그릇 시켜주셨는데 나무젓가락을 쪼개 내 손에 쥐어주시며 귓속말로 말하셨다. "절대 다른 사람 주지 말고 너만 먹어." 언제나 양보하라는 말만 듣고 자란 내게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내가 경험한 최초의 편애였다.

이모할머니는 꽤 유머러스했다. 친구들을 잔뜩 데리고 엄마가 운영하는 떡볶이집에 가면 잔뜩 먹는 우리를 담배를 태우며 뿌듯하게 바라봤다. 잘 먹고 돌아서면 배웅하며 덧붙였다. "영양가 없는 손님들 가네…."

한번은 할머니 댁에서 놀다가 안방 문을 열었는데 낯선 아저씨가 할머니를 껴안고 가슴을 주물럭거리는 모습을 목격하고 말았다. 서로 깔깔거리며 뒹굴며 노는 모습을 내가 멍하니 쳐다보자 할머니는 주저함 없이 말했다. "미나야, 이 아저씨가 할머니 괴롭힌다!"

이모할머니는 무당이었다. 집에는 신당 같은 것이 있었고 늘 향 피우는 냄새가 났다. 친척 중엔 기독교 신자가 더 많다. 목사도 있고 집사, 권사, 사모도 있다. 신내림 받은 여자를 가족에게서 자꾸만 밀어내려 하자 어느 날 엄마는 말했다. "무서워하지 마세요. 서로 다른 신을 모실 뿐 똑같은 사람인 거예요. 자꾸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으니까 더 악에 받치는 거죠."

죽었거나, 곧 죽을 여자들

과학에 관심이 많은 만큼 무당, 샤먼 등 종교적인 경험에도 관심이 많다. 그것이 진실이어서라기보다는 서구, 백인, 남성 중심 세계관에서 벗어난, 대안적인 '앎의 체계'라는 점에서 관심이다. 이때 무엇이 진짜인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이 받아들인 세계관이 그가 속한 집단에 대해서 무엇을 말해주는가가 더 흥미로운 문제다.

영화 '랑종'의 한 장면. 다음영화 제공

영화 '랑종'의 한 장면. 다음영화 제공

태국의 샤머니즘을 다룬 영화 '랑종'을 크게 기대했으나 강아지를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기에 보기를 포기했다. 이 영화에서 귀신에 들려 잔혹한 행동을 보이는 핵심적인 인물은 젊은 여성이다. 나홍진 감독의 전작 '곡성'에서는 아예 어린 여자 아이가 공포를 주는 존재로 나온다.

여름만 되면 개봉하는 각종 공포 영화에 등장하는 귀신은 왜 주로 젊은 여성일까. 스릴러물에서 여성은 주로 시체로 나온다. 아니면 곧 죽을 사람이랄지. 그렇게 해야 더 효과적이다. 미디어에서 맞거나 토막 나 죽는 젊은 여자들의 몸을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 마치 여성의 몸이 폭력을 얼마든지 행해도 되는, 심지어 그럼으로써 쾌감을 얻을 수 있는, 영혼도 의식도 없는 고깃덩어리라는 듯이.

공포에 맞서는 해결사, 남자

반면 혼란스러운 세계에서 질서를 찾아가려 애쓰는 인물들은 남성이다. 공포 영화가 공포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보면 우리가 (사실은 남성 감독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다. 이들은 낯선 사람들, 타자들, 그래서 자신이 가진 앎의 체계로 해석이 되지 않는 사람들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그들을 죽인다. 혹은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해 그들이 모두를 죽이게 만든다. 그러한 엔딩이 완전한 무질서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곡성'에서도 마지막까지 미스테리한 존재로 나오고 모든 사건의 원흉으로 지목된 자는 낯선 외지인이었다. 요컨대 두려움은 두려움을 주는 대상이 아니라 그 대상을 해석하지 못하는 상황에 있다.

무질서를 상징하는 여성과 질서를 상징하는 남성. 공포를 주는 여성과 혼란스러운 남성. 문제 그 자체인 여성과 해결사로서의 남성. 이러한 대조는 오컬트 영화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1973년 개봉한 영화 '엑소시스트'는 오컬트 영화 중에서도 불멸의 걸작으로 여겨지는데 한 소녀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연달아 벌어지고 최후의 수단으로 남성 신부가 파견돼 구마의식을 치른다는 내용이다. 악령에 씐 여자 아이가 네 발로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이 매우 유명하다.

영화 '엑소시스트' 한 장면. 네이버영화 제공

영화 '엑소시스트' 한 장면. 네이버영화 제공


아픈 것뿐인데, 악령이 되다

귀신에 쓰였다고 여겨진 많은 여성이 신체형장애를 앓은 여성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신체형장애는 우울증과 자주 동반하여 나타나는데, 정신적 갈등이 신체적인 증상으로 표현되어 나타나는 장애로 기질적 병리가 없거나 의학적으로 적절히 설명되지 않는 장애로 정의된다. 그러니까 왜 아픈지 모르는데 계속 아픈 사람들, 곧 기존의 해석 틀로 설명되지 않는 무질서를 상징하는 사람들이다.

신체형장애는 여성, 가난한 사람, 시골에 거주하는 사람 등 사회의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더 흔하다. 대부분의 환자가 여성이다. 과거 히스테리아(hysteria)로 불리던 질환에 뿌리를 두고 있다. 흔히 히스테리를 부린다고 말할 때의 그 히스테리로, 자궁을 뜻하는 그리스어 히스테라에서 유래했다.

중세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히스테리아는 사탄에 의한 것으로 여겨졌다. 교회에서는 기도와 악령을 쫓는 의식인 엑소시즘을 통해 이들을 치료했다. 대단히 많은 히스테리아 환자가 마녀로 몰려 고문당하고 처형당했다. 흥미로운 것은 중세 시대가 아니라 중세가 끝나가고 근대 과학이 기틀을 잡아가는 근세에 마녀재판으로 처형당한 여성의 수가 가장 많았다는 것이다. 마치 새로운 과학적 세계관으로 기존의 두렵고 미지의 영역으로 상징되는 중세 마녀를 처형해버리겠다는 듯이.

프랑스 신경학자 장 마르탱 샤르코가 치료했던 히스테리아 여성 환자들의 모습이 실린 책 '살페트리에르 병원의 초상 사진' 일부. 웰컴콜렉션 제공

프랑스 신경학자 장 마르탱 샤르코가 치료했던 히스테리아 여성 환자들의 모습이 실린 책 '살페트리에르 병원의 초상 사진' 일부. 웰컴콜렉션 제공

19세기 정신분석학에서 히스테리아는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히스테리아 환자는 갑작스러운 사지의 마비, 호흡 곤란, 실어증, 발작, 해리 등의 증상을 보였다. 이 증상이 낯설고 무서워 보였을 것이다. 치료법으로는 남편과의 규칙적인 성관계, 임신, 출산, 오르가슴, 휴식 등이 제안됐다. 히스테리아 여성들은 야망에 찬 지식인 남성들의 미지의 분석 대상, 혹은 신기한 관찰 대상으로 다루어졌다.

프랑스의 신경학자 장 마르탱 샤르코는 히스테리아 연구를 마법의 세계에서 근대 과학의 세계로 가져온 자로 알려졌다. 그의 연구는 대중적으로도 인기가 많았다. 그는 매주 강의를 열어 젊은 여성 환자를 전시하여 생생한 시연을 보였다. 그는 여성 히스테리아 환자의 증상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이들의 삶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다음은 그의 화요 강의를 기록한 내용의 일부다.

장 마르탱 샤르코의 히스테리아 강의 일부

샤르코: 다시 한 번 히스테리아의 근원 지점을 눌러 봅시다. (남성 인턴이 환자의 난소 부근을 만진다.) 또 해봅시다. 대개 이들은 혀를 깨물 수도 있지만, 그리 흔한 일은 아닙니다. 이 활 모양의 등을 보세요. 교과서에서도 잘 나오는 현상이지요.
환자: 엄마, 무서워요.
샤르코: 이 정서적 폭발에 주목하십시오. 우리가 내버려둔다면 다시 발작 행동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환자는 다시 소리 지른다. "엄마!")
샤르코: 다시 이 비명에 주목하세요. 아무것도 아닌 일에 대해서 지나친 소음이라고 할 수 있죠.

출처: '트라우마: 가정폭력에서 정치적 테러까지'

프랑스 신경학자 장 마르탱 샤르코가 치료했던 히스테리아 여성 환자들의 모습이 실린 책 '살페트리에르 병원의 초상 사진' 일부. 웰컴콜렉션 제공

프랑스 신경학자 장 마르탱 샤르코가 치료했던 히스테리아 여성 환자들의 모습이 실린 책 '살페트리에르 병원의 초상 사진' 일부. 웰컴콜렉션 제공


'공포'와 '배움'은 한 끗 차이

우리가 공포로 소비하는 문화의 기저에는 뿌리 깊은 여성 혐오의 역사가 있다. 억울함이 쌓이고 쌓이다 악에 받쳐 미쳐버린 여자들이 있다. 나는 상상해본다. '랑종'의 밍(여주인공)이 직접 자신의 영화를 만든다면 어떤 이야기가 될까? '엑소시스트'의 소녀가 직접 카메라를 들 수 있었다면 영화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멕시코 샤먼의 가르침을 담은 책 '돈 후앙의 가르침'에서 돈 후앙은 배움의 과정에서 만나는 첫 번째 적이 공포라고 말한다. 배움은 자기가 예상한 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모든 단계가 새로운 도전이다. 공포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저 두려워하며 앞으로 나아갈 뿐. 그러나 두려움은 사물을 다른 방식으로 보게 한다.

히스테리아 증상을 보이는 여성 앞에서 공포를 느꼈던 남성이 그들을 '처치'하는 대신 그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배움의 과정에서 공포를 느낀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공포를 느낀다는 것은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는 뜻이니까. 그랬다면 이들에게 새로운 배움의 지평이 열렸을지도 몰랐을 텐데.

하미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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