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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아래서 빨개지는 피부, 까매지는 피부

입력
2021.08.14 05:30
수정
2021.08.14 15:02
13면
0 0

편집자주

일상 속 생명과학 이야기가 격주 토요일 <한국일보> 에 찾아옵니다. ‘여행하는 과학쌤’이란 필명으로 활동 중인 이은경 고양일고 교사가 쉽고 재미있게 전해드립니다.

햇빛을 받은 남성의 팔이 빨갛게 변했다. 피부색이 하얀 사람이 일광화상에 취약한 것은 멜라닌 색소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햇빛을 받은 남성의 팔이 빨갛게 변했다. 피부색이 하얀 사람이 일광화상에 취약한 것은 멜라닌 색소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얼굴 밑을 더 신경 썼어야 했다. 햇빛이 강한 날이라 긴 옷을 챙겨 입고는 안심하고 돌아다닌 것이 화근이었다. 목 앞쪽이 간지럽고 따가워 나도 모르게 긁다가 거울을 보자 빨갛게 달아오른 피부에 오돌토돌한 수포가 가득했다. 피부를 다 감쌌다고 생각했는데 넥라인을 따라 둥그런 목 언저리와 양말을 신지 않은 발등에 정직한 모양으로 화상을 입고 말았다.

피부는 외부 환경의 자극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1차적인 방어선이다. 바깥쪽부터 순서대로 표피, 진피, 피하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정상적인 표피층은 그 아래 진피에 존재하는 혈관과 신경 등을 보호해준다. 외부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표피는 상처가 나거나 화상을 입는 등 손상되기 쉽지만 표피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기저층에서 세포가 끊임없이 분열하여 새로운 세포들로 대체될 수 있다.

표피의 기저층에는 표면을 대체하기 위해 분열하는 세포 외에 특수하게 분화된 다른 세포도 존재한다. 어두운 계열의 색소인 멜라닌을 만드는 멜라닌 세포다. 멜라닌은 다양한 방식으로 중합체를 형성해 형태와 색상이 다양한데, 표피에 존재하는 멜라닌은 자외선을 흡수해 안전하게 소산시킬 수 있는 구조다. 자외선이 피부 세포의 핵에 그대로 도달하면 DNA의 구조가 틀어져 정상적인 생명 활동을 방해한다. 멜라닌 색소가 자외선을 대신 흡수해 DNA의 손상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자외선 자극을 많이 받을수록 멜라닌 세포에서 더 많은 양의 멜라닌이 만들어진다.

멜라닌 세포가 만드는 멜라닌의 종류와 양에 따라서 자연히 피부의 색상이 달라진다. 예컨대 흑인의 멜라닌 세포에는 흑갈색의 멜라닌이 다량 존재하는 반면, 백인의 멜라닌 세포에는 적갈색의 멜라닌이 소량 존재하는 식이다. 똑같은 햇빛을 받았는데 피부색이 하얀 사람만 '일광화상'을 입고 빨갛게 달아오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피부색이 어두운 사람은 멜라닌 색소를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외선을 받아도 피부 세포가 쉽게 손상되지 않으며, 자외선 자극에 의해 더 많은 양의 멜라닌이 만들어진다. 이와 달리 피부색이 밝은 사람은 자외선을 흡수할 멜라닌 색소가 부족하기 때문에 피부 세포가 손상되어 염증 반응이 일어난다. 혈관이 팽창하여 피부가 붉어지고 발열과 통증이 동반되며, DNA가 손상돼 피부암이 발생할 확률도 높아진다.

자외선의 위험성을 익히 알고 있더라도 야외 활동을 하는 중에 수시로 자외선 차단제를 덧발라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는 자외선 차단 지수가 높은 옷감의 의류를 동원해서 피부가 노출되지 않도록 꼼꼼히 감싸주는 편이 좋다. 패션 테러리스트라는 구박을 받거나 유난스럽다는 핀잔을 듣더라도 어쩔 수 없다. 긴 양말과 스카프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로 보이더라도 일광화상으로 인해 고생한 후에는 생각이 달라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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