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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워실 바보’와 널뛰는 부동산 공약

입력
2021.08.09 18:00
수정
2021.08.09 18:35
26면
0 0
장인철
장인철수석논설위원

정권마다 ‘널뛰기 정책’에 시장 파탄
해답 보일 만하니 대선바람에 또 휘청
여야 떠나 정책 일관성 위해 힘 보태야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핵심 공약 중 하나인 '기본주택'을 골자로 하는 부동산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이 지사는 임기 내 주택 250만 호 이상을 공급하고, 이 중 기본주택을 100만 호 이상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핵심 공약 중 하나인 '기본주택'을 골자로 하는 부동산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이 지사는 임기 내 주택 250만 호 이상을 공급하고, 이 중 기본주택을 100만 호 이상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뉴시스

유력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최근 인용했다가 구설에 오른 밀턴 프리드먼은 자유시장주의를 옹호함으로써 “부자 편만 들었다”는 식의 욕을 먹기도 하는 경제학자다. 하지만 그가 개념화한 ‘샤워실의 바보(a fool in the shower room)’ 현상은 적정한 중심을 잡지 못한 채 널뛰기를 반복하는 정책 실패와 관련해 자주 인용되는, 여전히 유효한 우화다.

바보가 샤워실에서 한쪽으로 물을 틀었더니 찬물이 쏟아졌다. 당황한 바보는 물 온도를 빨리 높이려고 수도꼭지를 급하게 반대편 끝까지 돌린다. 그러자 이번엔 너무 뜨거운 물이 쏟아진다. 수도꼭지를 적절히 조정한 뒤 좀 기다리면 되는데, 다급한 바보는 극에서 극으로 수도꼭지만 틀어댄다는 얘기다. 당초 프리드먼은 이 얘기를 경기 과열이나 침체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섣부른 시장 개입이 되레 역효과를 내는 데 대한 경고로 썼다. 하지만 이 우화는 정권 따라 냉ㆍ온탕을 오가며 망가지는 이 나라의 부동산 정책 현실에 더 잘 부합하는 것 같다.

박근혜 정부의 ‘빚내서 집 사라’ 정책은 근시안적 경기부양을 위해 이전의 부동산정책을 180도 바꿨다가 낭패를 불렀다. 전임 이명박 정부는 집값 거품을 막고, 부동산 투기를 잠재울 만한 매우 획기적인 공급책을 시행했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간 150만 호의 분양ㆍ임대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보금자리주택’ 정책이 그것이다.

분양 물량만 연간 7만 호, 10년간 70만 호였다. 공공택지 개발로 입지도 좋고 가격도 쌌다. 꾸준히 추진되면 적어도 집값 안정엔 크게 도움이 될 만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이 정책에 급브레이크를 건다. 2013년 취임 직후 발표한 ‘4ㆍ1 부동산 대책’을 통해 이미 공급이 확정된 20만 호 외에, 50만 호의 추가 보금자리주택 공급을 취소하고, 대출규제를 크게 완화하면서 ‘빚내서 집 사라’ 정책을 시동했다.

경기 활성화와 침체에 빠진 부동산 시장을 살린다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저금리로 돈이 풀리는 가운데 공급을 줄인다고 나서자 결국 주택시장이 과열되고 말았다. 이번엔 문재인 정부가 다시 수도꼭지를 반대편 끝으로 돌렸다. 공급책으로의 회귀가 아니었다. 문 정부는 공급은 충분하다고 오판하고 ‘가수요’만 잡으면 뛰는 집값을 잡을 수 있다고 여겼다. ‘투기와의 전쟁’이 선포됐고, 각종 규제책이 총동원됐다. 하지만 애초부터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임대주택 활성화 방안 같은 치명적 실책까지 저질렀다. 결국 집값은 역대 최고치로 치솟고, 주택 양극화가 회복하기 어려울 만큼 커지는 초유의 파국적 상황을 맞게 됐다.

문제는 앞으로도 부동산 정책에서 ‘샤워실의 바보’ 현상이 되풀이될 조짐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임기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현 정부는 이명박 정부 식의 대량 공급책을 보강해 시동을 걸고 있다. 하지만 정책 추동력이 떨어진 가운데, 여야 대선 주자들이 저마다 중구난방식 부동산 정책을 내놓으면서 시장 불확실성만 되레 가중시키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사실 실패 덕에, 이제는 향후 부동산 정책이 마땅히 지향해야 할 방향이 얼추 잡혔다고 본다. 맞춤형 신규 주택건설과 매매 활성화로 공급을 늘리고, 투기적 수요에 대한 규제를 견고히 유지하며, 장기적으로는 지방거점 활성화를 통해 수도권 주택수요를 분산시키는 것 등이다.

여야 대선주자들도 제각각 섣부른 무지개만 그리며 또다시 ‘샤워실의 바보’ 우려를 키울 게 아니다. 이제부턴 뼈아픈 실패의 보상으로 그나마 가닥이 잡힌 정책방향을 차질 없이 완수할 구체적 방안을 두고 경쟁하는, 믿을 만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장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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