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대회서 덜컥 금메달, 어릴 적부터 운동꾼
리우 이후 마음고생…혹독한 훈련으로 더 성장
"한번도 내색 않던 애가 처음으로 힘들다고"
"너무 고생 많던 아들, 고맙고 사랑한다 말하고 싶어"
근대5종 첫 메달의 역사를 만들어낸 전웅태(26·광주광역시청)는 항상 자신감이 넘친다. 도쿄올림픽 개막 직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될 놈은 된다. 나는 될 놈이다”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던 그다.
하지만 사실 그에게도 이번 올림픽은 많이 두려웠다. 첫날 펜싱 랭킹라운드에서도 긴장하며 예상보다 낮은 성적을 냈다. 생애 첫 올림픽이었던 리우의 기억 때문이다.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전웅태는 당시 펜싱에서 13승 22패(178점)로 30위에 그쳤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며 마지막 경기 레이저런(사격+육상 복합경기) 에서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긴 했지만 아쉬운 성적이었다.
“리우에서 망가져 와서 한동안 마음고생과 방황을 많이 했어요. 부모 된 입장에서 너무 속상했어요.” 전웅태의 어머니 방윤정(53)씨는 아들이 운동을 시작한 이후 가장 마음 아팠던 순간이었다고, 리우올림픽 이후의 시간을 돌아봤다. 고등학교 때 승마를 하다가 말에 밟혀 팔이 부러졌을 때도 이렇게 아프진 않았다. 그만큼 전웅태에게도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올림픽 전초전으로 열렸던 리우 월드컵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었기에 충격도 컸다.
하지만 전웅태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 성격이다. “어릴 때부터 고집이 셌다”고 했다. 리우 메달이 무산된 상황임에도 방황을 빨리 끝내고 도쿄올림픽을 향해 다시 자신을 내던졌다. 훈련은 어느 때보다도 혹독했다. 새벽 6시부터 밤 9시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전웅태 본인도 “정말 지옥 같았다”고 표현했다. 부족한 펜싱에 특히 집중했다. “웅태가 정말 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한 번도 힘든 내색하지 않던 애가 이번 올림픽을 준비하면서는 처음으로 '엄마 너무 힘들어' 하더라고요.”
전웅태는 어릴 적부터 운동신경이 뛰어났다. 워낙 활동적인 성격에 가만히 있질 못했다. 자전거를 사달라고 해 매장에 데리고 갔는데 한 번에 두발 자전거를 타버렸다. 공원에서 빌린 스케이트보드도 곧잘 탔다. 운동 신경이 뛰어난 건 분명했지만 운동을 시킬 엄두는 나지 않았다. 당시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움을 겪으며 집안 사정이 안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인근 신정초등학교 수영장이 증축 개장한 것을 계기로 수영을 배우게 됐다. 어린 아들이 무료 수영 전단을 받아와 수영을 배우고 싶다는 데 등록을 안 해 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적응을 잘 못 했다. 너무 늦게 운동을 시작했기에 소년체전 강서지역 예선에도 떨어졌다. 하지만 전웅태는 근대5종을 만난 이후 재능을 발휘했다. 초등학교 6학년, 선생님의 권유로 관심이 갔다. 본격적으로 배우기도 전에 참가한 서울시 대회에서 초등부 부문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물 만난 고기가 따로 없었다.
전웅태는 서울체육중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근대5종을 시작하면서 금방 한국의 간판으로 성장했다. 리우 이후에도 2018년 국제근대5종연맹(UIPM) 월드컵 3차 대회 우승, 4차 대회 준우승, 월드컵 파이널 2위에 올랐고,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선 개인전 금메달을 따냈다.
그래도 올림픽은 다르다. '또 실패하면 어쩌지' 두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도쿄로 떠나기 전 마지막 외박을 나온 전웅태에겐 결연함이 느껴졌다. 이미 메달은 상관없었다. 그는 어머니에게 “정말 최선을 다해서 후회 없이 훈련했다. 메달을 못 따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닿을 수 있는 끝까지 노력해 본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아들이 그런 말을 하는데 뭐라고 하겠어요. 우리도 그냥 편안하게 하라고, 즐기라고 했어요. 주변의 기대나 그런 것 신경 쓰지 말고 하던 대로만 최선을 다하라고요.”
아들이 동메달을 따던 날 저녁 어머니 방씨는 자신이 일하는 백화점에서 손님들과 함께 아들의 도전을 지켜봤다. 결승선을 통과하며 ‘드디어 해냈다’는 듯 두 팔을 치켜드는 전웅태의 모습에 모두가 환호했다. “저게 내 아들”이라고 했다. 방씨는 “빨리 아들을 보고 싶다. 고생 많았고,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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