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을 공격한 분들께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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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산을 공격한 분들께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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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1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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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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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Words : 여성의 언어

항상 특권을 누려온 사람들에게는 평등이 억압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If you've always been privileged, equality begins to look like oppression.

미국의 역사학자 캐럴 앤더슨

Her View : 여성의 관점

지난달 30일 일본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 결승에서 안산이 주먹을 쥐고 있다. 연합뉴스


<19> 반격은 시작되었다 (8월 5일자)

안녕하세요, 허스토리입니다. 허스토리는 온라인 논쟁을 공적인 장에서 다루는 것에 회의적이지만, 오늘 뉴스레터는 안산 선수의 '쇼트커트'를 중심으로 온라인상 어떤 갑론을박이 있었는지 총정리하려고 해요. 제1야당 대변인과 대표까지 입장을 밝히며 정치권으로 불씨가 붙은 데다, 그간 성차별주의자의 억지 주장 백래시가 사회에 가져온 해악이 무척 큰 만큼 조목조목 따질 필요성을 느꼈어요. 허스토리가 하나하나 떠먹여 드릴게요. (지금부터는 편의를 위해 비격식체로 설명할게요)

▶ 대체 무슨 일이야? (※일자는 논란이 정점에 이른 어림 날짜)

- 7월 24일 : 남초 커뮤니티에서 안산 선수의 '쇼트커트' '여대 출신' 등을 콕 집어 페미니스트라며 SNS 등 온라인 전방위 공격

- 7월 25일 : '#여성_숏컷_캠페인' 시작. 류호정, 구혜선, 김경란, 곽정은 등 각계 여성 '쇼트커트' 지지 물결

- 7월 28일 : 남초 커뮤니티, '쇼트커트'가 문제가 아니라 '허버허버' '오조오억' 등 온라인 용어를 썼다며 '남혐' 주장. 안 선수의 메달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각에서 제기 ↔ 온라인 공격을 국가대표 선수에 대한 테러로 규정하고 협회에 선수 보호 촉구

- 7월 30일 : 안산 도쿄올림픽 여자 양궁 금메달 3관왕

▶ 뭐가 문젠데?

① 안산 선수의 짧은 머리? (X) : 그의 몸은 그의 것이야. 사회 규범 내에서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을 추구하는 건 개인의 자유야.

② 짧은 머리는 페미니스트다? (X) : 짧은 머리를 페미니스트라 단순 치환하는 것은 논리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주장이야.

③ '허버허버' '오조오억'은 남혐 용어다? (X) : 우선 '남성 혐오'라는 개념부터 성립하지 않아. 혐오는 단순히 싫어하는 감정을 말하는 게 아니야. 권력의 위계 구조 속에서 이뤄지는 소수자·약자에 대한 차별, 착취, 폭력을 의미하는 것이거든. 우리나라뿐 아니라 대부분 사회에서 남성의 젠더 권력이 우위에 있어. (우리나라는 여성 우위 사회라고? 일례로 네 성씨는 누구 성이야?) 무언가를 게걸스럽게 먹는 '허버허버', 무척 많음을 뜻하는 '오조오억'이 남혐 용어라면, 권력 구조 상에서 소수자와 약자를 차별하는 뿌리와 의미를 갖고 있어야 하는데, 과연 그럴까? 오히려 여성들이 자주 사용하는 인터넷 신조어에 낙인을 붙여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는 분풀이성 억지 주장에 가까워.

④ 페미니스트다? (X) : 페미니스트가 문제라는 당신, 혹시 페미니즘을 '여성 우월주의'로 잘못 받아들이고 있지 않는지? 페미니즘은 가부장제가 강요하는 억압을 거부하고 누구도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여권 신장 운동이자, 성평등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야. 누구도 '페미니스트'라는 점이 낙인이 되어서는 안 돼.

⑤ 그간 '남혐이다' '페미다'는 억지 주장에 꼬리 내렸던 기업과 공공기관들 (O) : '포스터 속 집게손가락이 메갈리아의 표식이다' '재단이 페미니즘 관련 독서 모임에 후원했다' 등. 이 같은 실체 없는 '페미 몰이' 공격이 하루 이틀 일은 아니야. 사회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한 큰 고민보다, 논란 잠재우기에 급급한 기업과 공공기관들이 근거 없는 주장에 하나씩 굴복하면서, 온라인 성차별주의자들은 승리의 경험을 먹고 기세등등해졌어.


▶ 갑자기 왜 정치권에서 난리?

- 시작은 안산 선수가 개인전 금메달을 딴 7월 30일이었어. 양준우 국민의힘 대변인은 페이스북에 "안산 선수에 대한 도 넘은 비이성적 공격에 대해 단호히 반대한다"면서도 "논란의 핵심은 '남혐 용어 사용'에 있고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이라고 주장했어. '혐오' 개념의 오용은 차치하고, '왜 남혐 용어를 사용해서 남성들의 분노를 부추기느냐'는 여성 탓이 행간마다 묻어 있어. 양 대변인은, 이준석 대표가 토론 배틀로 직접 뽑은 '이준석 키즈'이기도 해.

- 이준석 대표는 자신에게 입장을 묻는 장혜영 정의당 의원에게 "이준석이 무슨 발언을 한 것도 아닌데 커뮤니티 사이트에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느냐"고 되물어. 재차 궁지에 몰리자 양 대변인의 발언이 "여성 혐오적 관점이 없다"고 옹호했어. 지난 3일에는 양궁협회가 "메달 박탈 요구 전화 없었다"라고 밝힌 보도를 내걸고는, 오히려 정의당 탓을 하면서 젠더 갈등 유발을 통한 정치공작으로 몰아가. 전형적인 논점 흐리기야. 직접 전화라는 구체적 행위를 하지 않았을 뿐, 안산 선수에 대한 온라인 공격은 '분명히' 있었음에도 "그런 일은 없었다"며 현실을 부정하는 식이지.

- 왜 이 대표에게만 그러냐고? 그는 4월 보궐 선거 이후, 주로 남초 커뮤니티에서 결집된 20대 남성의 분노와 지지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왔어. 대표직에 오르기 전 GS25의 '집게 손가락' 포스터를 두고, 남성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면서 회사의 입장 표명을 요구하기도 했어. 게다가 온라인 커뮤니티의 익명 의견을 페이스북과 방송 토론 등에서 확산시키며, 성차별주의자의 주장을 공론장으로 끌고 나왔다는 점에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 모두의 노력이 필요해!

- 기업·기관 : 주장과 민원에 대해 '원칙'을 세워야 해. 문제 제기가 정당한 소비자와 시민의 요구인지, 아니면 근거 없는 억지인지 말이야. GS25, 다이소, BBQ, 카카오뱅크, 카카오톡, 이마트24, 교촌치킨, 농심, 동서가구, 경찰청, 전쟁기념관, 국방부 ... 이 많은 기업과 기관이 고작 '집게손가락' 이모티콘 때문에 공식 사과문을 내거나 이미지를 수정했어. 전쟁기념관은 무려 2012년 설치한 시설물까지 철거했다니까? 신기하게도 이 같은 '몰이'가 휘몰아치고 나면, 아무도 진실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야. 정말 배후에 '메갈' 디자이너가 있었는지 밝혀진 곳은 어디에도 없어.

- 언론 : 최근 일주일 동안 가장 많이 본 단어가 '논란'이지 않을까? '안산 페미 논란' '쇼트커트 논란' '남혐 논란' 등 적절치 못한 기사 제목으로 '논란' 빚은 언론이 많았어. 한 일간지는, 관련 기사 제목에 뻔히 '온라인 학대'라는 외신의 표현을 빌려 쓰고도, 본문에는 '젠더 갈등'이라는 표현으로 본질을 흐렸어. 아동 학대 사건을 서술할 때는, 피해자인 아동이 가해자인 성인과 '갈등을 겪고 있다'고 표현하지 않으면서 왜 젠더 이슈만 예외일까? 참고로 로이터통신, 뉴욕타임스 등 외신은 명확히 이 행위를 공격(attacking), 온라인 학대(online abuse)로 명명했어. 이에 더해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의 억지 주장을 마치 멀쩡한 논쟁인 것처럼 '사회적 의제'로 취급해온 탓이 커.

- 정치: 지난 14년 동안 '차별금지법'이 좌절된 역사에서 교훈 얻기. 차별금지법 반대 집단은 '기초단체→광역단체 →대학 →국회' 순 작은 단위에서부터 조례나 수업을 없애는 식으로 판판이 승리한 경험을 토대로 지금에 이르렀어. 정치가 혐오에 길을 내어준 것이지. 지금부터라도 '원칙'에 따라 사회가 용인하는 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해. 더 나아가 명백한 차별과 혐오를 '갈등'으로 치환하는 일련의 움직임에 대해 각 정치인이 입장을 단호하게 밝혀야 해. 또한, 온라인 커뮤니티의 검증되지 않은 의견을 '공론화'라는 이유로 여과 없이 정치적 의제로 만들어서는 안 돼.

백래시에 맞서는 '우리'의 힘

이번 '페미 몰이 공격'에 제동이 걸린 건 ①양궁협회가 선수 보호라는 본연의 일에 집중한 것(시스템) ②선수를 향한 국민의 응원(대중적 지지)도 물론 중요했지만, 더 이상 백래시를 묵과할 수 없었던 많은 이들이 '지지와 연대의 목소리'를 냈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목소리에 더해 29개 여성 단체, 민주노총, 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 등이 논평이나 성명을 냈어요. 가끔은 '논란'이라 불리기에도 조악한 이야기로 공론장이 황폐화해지곤 하지만, 그럼에도 세상을 바꿔나가는 건 '우리'의 힘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요.

※ 포털 정책 상 본문과 연결된 하이퍼링크를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 포털에서 이 뉴스레터를 읽으시는 독자는 아래 '관련 기사 링크'에서 연관 기사를 확인하세요!

Her Story : 여성의 이야기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책 읽는 여성'을 담은 그림을 통해 본 독서의 역사. 왜 세상은 책 읽는 여성을 두려워 했을까?

"책을 읽을 때 생기는 신체 활동 부족은 상상력과 감정이 억지로 뒤바뀌는 것과 결부되어서 근육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가래가 들끓고, 가스가 차고, 변비가 생기도록 만들 것이며, 잘 알려진 것처럼 특히 여자의 경우 생식기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1791년 교육 이론가 카를 바우어)"

여러분, 2021년의 한국 사회는 여성의 '쇼트커트'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지만 200년 전에는 여성이 책을 읽기만 해도 생식기 문제가 생긴다고 난리가 났었대요! 책에는 이런 대목이 등장해요. '그 당시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자는 실제로 위험했다. 왜냐하면 책을 읽는 여자는 어떤 사람도 들어올 수 없는 자신만의 자유 공간을 획득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 독립적인 자존심 또한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세상에 대한 자기 나름의 상을 만들어냈으며, 그것은 출생과 전통으로 매개된 모습이나 남자가 보는 모습과는 분명코 일치하지 않았을 것이다. (27쪽)'

여기서 '책을 읽다'를 다른 단어로 바꿔 볼까요? '쇼트커트를 한 여자' '글을 쓰는 여자' '축구를 하는 여자' '탈코르셋을 한 여자' 등등. '짧은 머리'는 구실일 뿐, 어떤 상황에도 적용 가능합니다. 어쩌면 지금의 백래시는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가는 모든 여성에 대한 공격이 아닐까요? 그러나 우리는 이미 '빨간 약(영화 매트릭스)'을 먹어버렸고,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권김현영)입니다.

※ 본 뉴스레터는 2021년 8월 5일 출고된 지난 메일입니다. 기사 출고 시점과 일부 변동 사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뉴스레터 '허스토리'를 즉시 받아보기를 원하시면 한국일보에서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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