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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트랜스젠더'란 어려운 숙제를 받아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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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트랜스젠더'란 어려운 숙제를 받아들다

입력
2021.08.0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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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역도 선수 허버드에 쏟아진 혐오 발언 속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성 경기 출전 정당한가" 의문
트랜스젠더 여성 선천적 우월, 과학적 근거 부족
IOC, 가이드라인 재검토... '종목별 대응' 유력

도쿄올림픽 역도 여성 83㎏ 이상급에 출전한 뉴질랜드의 로렐 허버드가 2일 바벨을 들어 올리고 있다. 도쿄=EPA 연합뉴스

도쿄올림픽 역도 여성 83㎏ 이상급에 출전한 뉴질랜드의 로렐 허버드가 2일 바벨을 들어 올리고 있다. 도쿄=EPA 연합뉴스

2일 도쿄 올림픽 역도 여성 83㎏ 이상급 종목에서 압도적 실력을 보여준 중국의 리원원(21)은 올림픽 신기록을 작성했지만, 오히려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은 인상에서 단 한 차례도 바벨을 들어 올리지 못해 '완주 실패(DNF)' 처리된 로렐 허버드(43)였다. 허버드의 올림픽 도전은 미완으로 끝났지만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청중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만큼 그의 도전은 특별했다. 그가 세계 최초로 트랜스젠더임을 공개한 채 올림픽에 출전한 여성이기 때문이었다.

허버드는 경기를 마치고 기자들 앞에서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이 대회에 참여하는 것에 논란이 있었음을 압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특별한 지원과, 올림픽 정신에 대한 헌신 덕에 스포츠가 모든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것임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영국 BBC 스포츠는 이용자들이 로렐 허버드에 대한 혐오 발언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입장을 밝혔다. 트위터 캡처

영국 BBC 스포츠는 이용자들이 로렐 허버드에 대한 혐오 발언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입장을 밝혔다. 트위터 캡처

그의 말대로, 허버드의 여성부 출전은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허버드가 출전하는 경기 전후로 전 세계 인터넷에서는 '트랜스젠더 혐오(transphobia)' 발언들이 쏟아졌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 스포츠가 이례적으로 "우리는 건전한 토론을 원하지 트랜스포비아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혐오 발언을 가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은 차단할 것"이라는 성명까지 발표할 지경이었다.


허버드 등장에 여성 선수 "출전 기회 잃었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 출전한 뉴질랜드의 역도 선수 트레이시 램브렉스는 로렐 허버드의 등장으로 자신이 체급 조정 혹은 은퇴를 권유받았다고 토로했다. 유튜브 캡처

2016년 리우올림픽에 출전한 뉴질랜드의 역도 선수 트레이시 램브렉스는 로렐 허버드의 등장으로 자신이 체급 조정 혹은 은퇴를 권유받았다고 토로했다. 유튜브 캡처

하지만 트랜스젠더의 올림픽 출전을 허용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물론, 세계와 각국의 스포츠 단체 입장에서 트랜스젠더 여성의 스포츠 출전은 혐오 표현을 막는 것만으로 넘길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트랜스젠더 여성이 여성들의 경기에 출전하면 신체 우위를 바탕으로 여성의 출전 기회를 뺏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 때문이다.

허버드는 여성들의 이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고 볼 만한 대표적 사례다. 그는 남성일 때도 역도 선수로 뛰었지만 20년 전인 2001년에 운동을 그만뒀다. 운동을 그만둔 이유도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그는 2012년에 성전환 수술을 했고, 2017년부터 선수로 뛰기 시작해 각종 대회에서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당연히 그의 존재는 늘 논란을 몰고 다녔다.

허버드와 같은 체급에서 뛴 뉴질랜드의 트레이시 램브렉스는 허버드가 높은 성적을 내자 뉴질랜드 대표팀에서 자신에게 체급을 내리거나 은퇴하라고 권했다고 밝혔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스포츠에서 성평등을 강조하지만 나는 그 성평등을 빼앗겼다"고 말했다.

현재 IOC는 트랜스젠더 남성의 경우 올림픽 출전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여성의 경우에는 2015년에 지정한 제한 조건이 있다.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억제제를 투여해, 최소 12개월 동안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리터당 10나노몰(nM) 미만으로 유지되는 경우에만 출전이 허용된다. 나노몰은 1몰의 1,000분의 1이다. 하지만 이 조건마저도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 때문에, IOC는 도쿄 올림픽이 끝나고 조건을 재점검하겠다는 방침이다.

도쿄 올림픽에는 허버드 말고도 트랜스젠더 여성 2명이 더 출전했다. 캐나다 여성 축구대표팀 선수 퀸(Quinn·26)과 미국의 스케이트보더 알라나 스미스(21)가 그들이다. 다만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여성이고 논바이너리(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되지 않음)를 자처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게다가 퀸이 참여한 축구의 경우 팀 스포츠이기 때문에 허버드와 비슷한 논란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 6일 퀸이 속한 캐나다 팀이 우승해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퀸은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메달을 획득하는 '오픈리(공개) 트랜스젠더'가 됐다.


트랜스젠더 여성이 무조건 월등? 과학적 근거는 아직 없어


캐나다 여성 축구 국가대표팀 미드필더 퀸이 지난달 21일 삿포로돔에서 일본과의 경기에서 헤딩을 하고 있다. 삿포로=AFP 연합뉴스

캐나다 여성 축구 국가대표팀 미드필더 퀸이 지난달 21일 삿포로돔에서 일본과의 경기에서 헤딩을 하고 있다. 삿포로=AFP 연합뉴스

일반적 통념과 달리, 트랜스젠더 여성의 운동 능력이 시스젠더(cisgender) 여성에 비해 월등하다는 과학적인 근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물론 그 반대도 없다. 정확히는 근거라고 할 만한 연구가 부족하다. 시스젠더는 태어날 때의 성별(섹스)과 자신의 성 정체성(젠더)이 동일하다는 의미지만, 통상 성소수자 아닌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논란이 되는 내용 중 하나는 성 전환 전후의 운동 능력에 관한 것이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 전환 했을 경우 여성으로 태어난 선수들과 비교해 운동 능력이 더 뛰어나고 그렇기 때문에 불공정한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들이 나오고 있다.

영국 러프버러대 조애나 하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성 전환을 거친 육상 선수 8명의 기록을 확인한 결과, 이들의 능력은 다른 여성 육상 선수와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반면 2020년 미 공군의 트랜스젠더 연구에 따르면 트랜스젠더 여성이 시스젠더 여성보다 팔굽혀펴기를 31%, 윗몸일으키기를 15% 정도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 호르몬 요법을 2년간 적용한 이후에는 이 격차가 거의 사라졌다.

미국의 '여성의 스포츠를 보호하라(Save Women's Sports)' 단체를 이끄는 올림픽 선수 출신의 운동가들은 "일반적으로 남성으로 성장기를 지난 선수가 여성보다 더 운동 능력이 뛰어나다"며 사춘기 이전의 성 전환 선수는 참여 기회를 주고 이후의 선수는 배제하자는 논리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시스젠더 남성과 시스젠더 여성'을 비교하는 연구를 근거로 하고 있어, 트랜스젠더 여성에 일방적으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게 IOC 입장이다.

리처드 버짓 IOC 의무과학국장은 "트랜스젠더 여성과 시스젠더 여성을 비교하는 것은 남성과 여성을 단순 비교하는 것만큼 간단하지 않다"며 "성 전환의 영향과 결과는 개개인마다 다르고,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스포츠에 참여하는 모든 여성을 보호하고 스포츠를 의미 있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배제는 해법이 아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육상 선수 캐스터 세메냐가 2019년 카타르 육상 대회에 출전한 모습. 세메냐는 런던과 리우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으나 높은 남성호르몬 수치로 인해 장거리 종목에서 출전이 한동안 금지되면서 2020년 도쿄 대회 출전에는 실패했다. AP 연합뉴스

남아프리카공화국 육상 선수 캐스터 세메냐가 2019년 카타르 육상 대회에 출전한 모습. 세메냐는 런던과 리우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으나 높은 남성호르몬 수치로 인해 장거리 종목에서 출전이 한동안 금지되면서 2020년 도쿄 대회 출전에는 실패했다. AP 연합뉴스

허버드가 열어젖힌 트랜스젠더 여성의 스포츠 참여 논란에 대해 IOC가 새롭게 내놓을 방안은 무엇일까. 일단 유력한 방안은 일률적 규제 대신 각 종목별로 규정을 달리한다는 방안이다.

예를 들어, 육상·역도와 달리 양궁과 사격에서는 중요하게 여기는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트랜스젠더 선수의 참여가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 또 태권도나 유도, 레슬링 같은 접촉이 많거나 격투로 겨루는 종목에서는 선수들의 안전 문제가 중요시될 필요가 있다.

같은 종목 내에서도 편차는 존재할 수 있다. 육상의 장거리와 단거리 달리기는 여건이 상당히 다르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이른바 '간성'으로 알려진 남아공의 여성 육상 선수 캐스터 세메냐를 겨냥해 고안드로겐증 규제를 도입하면서, 그가 단거리에는 출전할 수 있지만 장거리에는 출전하지 못하게 했다. 세메냐는 이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 갔지만 2019년 스위스 법원은 이 결정이 합법적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스포츠 대회 운영 전문가인 로저 필케 콜로라도대 교수는 "쉬운 문제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 결과가 특정 부류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은 옳은 판단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트랜스 젠더의 참여는 선수의 종목이나 체급을 가르는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스포츠가 두 가지 젠더로 나눠 운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스포츠 단체는 모든 이들이 그 안에 포섭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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