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제 역할 다한 세포는 스스로 죽는다

입력
2021.08.03 20:00
25면
0 0
엄창섭
엄창섭고려대 의과대학 교수
동맥의 혈액 세포 ⓒ게티이미지뱅크

동맥의 혈액 세포 ⓒ게티이미지뱅크


우리 몸에 있는 약 60조 개의 세포 중 우리가 죽을 때까지 평생 같이하는 세포가 있을까?

우리 몸에서는 매일 약 3,300억 개의 세포가 새로운 세포로 교체된다고 하니까 몸의 모든 세포가 새로운 세포로 바뀌는 데 대략 200일 정도가 걸릴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가 완전히 새로운 세포로 바뀌는 데 걸리는 시간은 세포의 수를 기준으로 하면 약 80일, 질량을 기준으로 하면 약 1년 반이라고 한다.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은 무게가 얼마 나가지 않고 작지만, 수가 많은 적혈구 같은 세포의 수명은 짧고, 근육세포와 같이 무겁고 크지만, 수가 적은 세포는 오래 살기 때문이라고 한다. 왜 세포마다 수명의 차이가 있는지는 잘 모른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는 영생불사의 존재가 아니고 세포마다 정해진 기간 살면서 제 역할을 한 후에는 죽고, 다른 세포에 그 자리를 넘겨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몸은 수명이 다하였거나, 기능이 떨어져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손상을 받았는데 정상 상태로 회복하기 어려운 세포를 어떻게 선택적으로 제거할 수 있을까?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개념이 ‘세포자멸사’이다. 세포자멸사는 간단히 말해 몸에서 더는 필요하지 않게 된 세포 스스로가 자살하는 현상이다. 자살한 세포가 차지하던 역할은 새로운 세포로 대체된다.

그런데 제거되어야 할 세포가 죽지 않고 남아 있게 되면 몸에 형태적으로나 기능적으로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태생기 때 손이 만들어질 때, 손가락 사이의 세포들이 제거되어야 손가락이 붙지 않고 분리되는데, 이들 세포가 죽지 않고 남아 있게 되면 손가락이 서로 붙은 물갈퀴손이 된다. 기능 측면에서 보면 암세포를 예로 들 수 있다. 암세포는 죽지 않고 계속 생존하면서 분열, 증식하고, 혈관과 영양분을 마구잡이로 끌어다 쓴다. 이러다 보니 몸의 균형이 파괴되고, 심하면 생명을 앗아가기도 한다.

올림픽 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우리 선수들이 경기 후에 보여주는 태도에서 우리나라 스포츠계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승자에게 엄지척하는 모습, 좋은 성적을 얻고 너무 기뻐 어린아이처럼 팔짝팔짝 뛰는 모습, 메달을 따지 못하고도 아직 젊으니 다음을 기약하면 된다는 여유로운 모습 등등. 이러한 모습들은 진정한 실력과 자신감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것들이라 생각한다. 이전에 경기에서 지거나 메달을 따지 못하면 마치 죄인처럼 기가 쳐져 있던 모습들과는 확연히 대비된다. 이러한 소식들이 승리의 월계관 소식보다 더 찜통더위로 찌든 가슴을 시원하게 식혀준다.

이러한 변화가 스포츠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여러 분야에서 제 몫을 하고 있다. 이미 선진국 반열에 들어간 산업경제 분야뿐 아니라, 문화예술, 식음료, 과학 분야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진정 실력 있는 자들만이 보여주는 자신감과 여유로움을 느낀다.

우리 젊은이들이 이렇게 멋지게 변한 것은 우리 선배 세대들이 큰 몫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뼈를 깎는 노력과 희생으로 세계 최초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이 되는 역사를 만들어 내었고, 그리고 자신의 몫을 다한 후에는 후배들에게 멋지게 그 자리를 물려주었다. 그러니 우리 선배 세대들이 이 사회의 발전을 위해 '세포자멸사'의 길을 택하였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혹시라도 이 글을 보고 일정한 나이가 되면 모두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으로 오해할까 봐 부언하자면, 근육처럼 듬직하게 큰일을 하는 세포는 더 오래 그 임무를 수행한다. 뛰어난 능력이 있는 후배들과 이 사회의 뼈대와 근육 역할을 하는 듬직한 지도자들이 조화를 이룰 때 이 나라는 더 균형 잡힌 건강한 나라가 될 것이다.

물러날 때가 되었을 때 스스로 물러나도 여유롭고 행복하고 멋지게 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숙제일 것이다.

엄창섭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