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네트를 두고 잔인한 대결을 펼친 4명의 선수는 경기가 끝나자 부둥켜안았다. 메달을 가져간 김소영(29ㆍ인천국제공항)-공희용(25ㆍ전북은행)도, 빈손으로 돌아가는 이소희-신승찬(이상 27ㆍ인천국제공항)도 만감이 교차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다.
세계랭킹 5위 김소영-공희용은 2일 일본 도쿄 무사시노노모리 종합스포츠플라자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배드민턴 여자복식 동메달 결정전에서 세계랭킹 4위 이소희-신승찬을 2-0(21-10 21-17)으로 꺾고 '코리안 더비'를 승리했다. 김소영-공희용은 1게임에서 11점 차 대승을 거두며 기선을 제압했다. 2게임에서는 접전 끝에 19-16에서 김소영-공희용이 김소영의 스매시로 매치포인트를 잡아냈고,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두 팀은 결승전에서 만날 수도 있었다. 앞서 김소영-공희용은 8강 한일전에서 세계랭킹 2위 마쓰모토 마유-나가하라 와카나(일본)를 극적으로 꺾고 4강에 진출했다. 이소희-신승찬도 세계랭킹 17위 셀레나 픽-셰릴 세이넨(네덜란드)을 2-0(21-8 21-17)으로 완파했다. 두 팀 모두 4강에서 승리했다면 금메달 결정전이 꿈의 한국 맞대결로 성사될 수 있었지만 아쉽게 모두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하고 동메달 결정전을 치르게 됐다.
한국 배드민턴, 한국 선수단으로선 누가 이겨도 되지만 동고동락한 친자매 같은 이들에겐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상황이었다.
눈시울이 벌개진 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 온 맏언니 김소영은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것을 알지만, '미안하다'고 했다. 소희와 승찬이가 어떻게 준비했는지 알고, 어떤 마음일지 잘 알아서 미안하고 수고했다고 했다"며 울먹였다. 이소희와 신승찬은 그런 김소영에게 "고생했어요. 언니"라며 축하해줬다.
이소희는 "서로 너무 열심히 준비한 것을 안다. 결승에서 만나면 좋았을 텐데, 동메달 하나를 놓고 겨루는 게 잔인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이소희는 오히려 김소영-공희용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이소희는 "김소영-공희용 조가 동메달을 따서 누구보다 좋았을 텐데 표출도 못 하고 마음껏 기뻐하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미안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해줬다"고 밝혔다.
신승찬은 짝꿍인 이소희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신승찬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복식 동메달을 땄기 때문에 4명 중 올림픽 메달이 없는 건 이제 이소희뿐이다. 신승찬은 "올림픽에 출전한 것만으로 값진 경험인데 소희에게 메달을 못 안겨줘서 미안하다"며 "소희가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그 과정을 제가 옆에서 지켜봐 왔고 잘 알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과 감정이 크다"고 말했다.
김소영은 "오늘 아침도 같이 먹고 나왔다. 늘 하던 대로"라며 "경기 이야기는 안 했다. 어제는 '서로 이게 뭐냐. 금ㆍ은도 아니고 동메달 결정전이냐'라는 말을 한 번 했지만, 그 이후에는 경기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안 했다"고 밝혔다.
한국 배드민턴은 2012 런던올림픽, 2016 리우올림픽에 이어 3회 연속 동메달 1개로 마감했다.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가 메달 결정전 맞대결을 벌인 것은 2004 아테네올림픽 남자복식 하태권-김동문(금메달), 이동수-유용성(은메달) 이후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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