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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과 전용이란 이름의 분리

입력
2021.07.13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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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블랙캡

영국의 블랙캡


학창시절을 돌이켜 보면 소풍과 수학여행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장소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주로 수학여행을 오갈 때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았던 게 더 기억에 남는다.

요즘은 소풍 대신 '현장체험학습'이라고 부른다. 휠체어를 탄 내 딸은 현장체험학습을 나만큼 좋아하지 않았다. '이동'의 경험이 좋지 않아서다. 대절버스에 탈 때는 누군가에게 안겨 가야 하고,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때는 지하철 엘리베이터 대수가 적어서 친구들과 함께 갈 수 없었다. 아이 초등학교 때는 일부러 휴가를 내고 학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차로 이동시키거나 아이를 안아서 옮기곤 했다. 사춘기가 되자 '친구들 앞에서 엄마에게 안기는 게 싫다'며 차라리 안 가겠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중학생이 되자 코인노래방을 간다며 친구들이 삼삼오오 버스를 타고 번화가로 나갈 때에도 딸은 소외됐다. 휠체어가 탈 수 있는 저상버스가 드물게 도착해서 다른 친구들까지 딸에게 맞춰줘야 하는 미안함은 차치하고, 친구들은 뒷 좌석에 나란히 앉아 수다 떠는 동안 딸은 휠체어석에서 혼자 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차에 태워서 데려다 주겠다고 해도, 한마디로 '특별'대우 받기보다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고 싶다는 거였다.

딸은 언제부터인가 좋아하는 아이돌 콘서트에 갈 때 휠체어석을 예매하지 않기 시작했다. 휠체어석에서는 덩그러니 혼자 떨어져서 공연을 봐야 하기에 일부러 일반석에서 다른 관중들과 함께하는 경험을 더 즐기게 됐다(물론 일반석까지는 누군가가 업어서 이동해야만 하지만).


영국의 블랙캡

영국의 블랙캡


장애인콜택시는 보행이 불편한 등록장애인 '전용' '특별'교통수단이다. 요금이 크게 저렴한 대신 지자체 세금으로 운영돼 늘 공급이 부족하다.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하면 제 시간에 맞춰가기 어렵다. 내가 사는 서울에서는 장애인콜택시 대기 시간이 26분이라고 말하지만 현장에서 이용해보면 1시간~1시간 30분 기다리는 일이 매우 흔하다(서울 외 지역에서는 대기시간이 훨씬 더 길다).

뉴욕 거리에서 옐로캡 택시 중 휠체어 표시를 쉽게 발견해 바로 부를 수 있었을 때 너무 기뻤던 기억이 있다. 짐이 많은 여행객에게도 유용했다. 호주 시드니 공항에도 휠체어가 탈 수 있고 비장애인도 이용 가능한 큰 택시가 즐비했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휠체어로 마음껏 이동할 수 있다는, 특별대우 따위 안 받아도 되는 자유를 그때 느꼈다.

비단 택시뿐 아니다. '특별' '전용'이라는 정체성이 때로는 분리나 배제를 의미하기도 한다. 발달장애인은 '특별 보호'가 필요하니 성인이 되면 무조건 시설에 가야 할까? 장애학생들이 특수학급에서 '특별 교육'을 따로 받지만 일반학급에서 비장애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받는 건 어떨까?

특별함이 배제와 동일어가 되게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여기저기서 보이고 있다. 휠체어가 탈 수 있는 영국 블랙캡 택시를 수입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이용하는 '겸용' 택시가 선보인단다. 발달장애인들이 '탈시설'하여 지역사회에서 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러 곳에서 고민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장애-비장애학생이 함께 공부하는 통합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분명히 가는 길은 삐그덕거릴 것이다. 하지만 특별하다며 따로 빼놓는 건 게으른 배려다. 특수성을 고려해 통합하고 부딪히는 과정에서 우리 모두가 배울 것이다.



홍윤희 장애인이동권증진 콘텐츠제작 협동조합 '무의'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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