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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반봉건 혁명의 불꽃이 스러지다

입력
2021.07.19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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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9 태평천국의 난

19세기 중국 '태평천국'의 혁명가 훙슈취안의 초상화라고 한다. 위키피디아

19세기 중국 '태평천국'의 혁명가 훙슈취안의 초상화라고 한다. 위키피디아


1864년 7월 19일, 만 13년 7개월 동안 중국을 내전상태로 몰아넣은 태평천국의 난이 끝났고, 자칭 예수의 동생 훙슈취안(洪秀全, 1814~1864)이 내건 태평천국의 꿈도 스러졌다.

광둥성 객가인(이주민 출신 한족)으로 태어나 과거를 통해 신분상승을 추구하던 그는 잇달아 시험에 떨어져 실의에 빠져 있던 어느 날 꿈에 하늘의 계시를 받아 기독교 신자가 됐다고 한다. 그는 빈부귀천의 신분을 초월한 평등사상과 반봉건주의, 전족 금지와 여성 과거 응시 허용 등 성평등과 토지균분원칙으로 빈민, 빈농 등 하층민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교세를 확장, 1847년 광시성에서 '배상제회(拜上帝會)'란 이름으로 교인들을 조직화했고, 관군의 탄압에 맞서 1851년 무장 봉기했다.

과한 사치와 1차 아편전쟁(1840)으로 국고를 탕진한 청나라 조정이 세금을 대폭 인상해 빈민, 평민들이 실의에 빠져 있던 때였고, 수많은 이들이 비적질로 생계를 이어가던 때였다. 그들이 훙슈취안의 품에 들었다. 1853년 태평천국 군대는 난징을 점령해 톈징(天京, 수도)으로 선포하고, 베이징을 향한 북벌과 서정을 감행했다. 당시 병력은 수군까지 포함해 약 20만 명에 달했다. 천국군은 민가를 수탈한 병사를 사형으로 처벌하는 등 엄격한 규율과 도덕성으로 민심을 샀다.

한편 청 조정은 영국·프랑스 연합군과 치른 2차 아편전쟁(1856~1860)으로 안팎에서 협공당하는 신세였다. 전쟁에서 승리하며 아편 통상권 등 모든 이권을 챙긴 영·프 연합군은 대신 왕조 수호를 약속하고 1860년 태평군 진압에 가세했다.

지도부 내분과 도덕적 타락 등이 겹쳐 수세에 몰린 천국군은 약 7년간의 방어전 끝에 1864년 난징을 함락당했다. 훙슈취안도, 굶어 죽었다는 설과 자살설이 엇갈리지만, 1864년 6월 1일 숨졌다. 함락 당시 성내에 있던 수십만 명의 천국군과 추종자도 대부분 천왕을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학자들은 만 13년의 내전으로 2,000만~7,000만 명이 숨졌다고 추산한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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