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계 "의무 다한 경영책임자에겐 면책권 달라"
내년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세부 규정을 정한 시행령 제정안이 공개됐다. 노동계에선 "법안도 반쪽짜리인데, 시행령은 아예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2인 1조 등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고, 과로사가 제외됐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경영계도 그간 요구해온 '경영자 면책 조항'이 빠졌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정부는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그간 준비해온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을 공개하면서 다음 달 23일까지 40일간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2인 1조', '신호수 배치' 명시하지 않았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의 동력을 제공했던 '구의역 김군 사건', '태안 김용균 사건' 등이 벌어졌을 때 산재 예방을 위해 2인 1조 작업, 신호수 배치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달았다. 하지만 시행령 제정안에는 구체적 내용 없이 '안전·보건에 관한 인력을 갖춰야 한다'는 문구만 들어갔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즉각 성명을 내고 "중대재해처벌법의 출발점을 망각했다", "2인 1조 작업 등을 아예 못 박았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2인 1조'가 명시되어 있는 공공기관 안전지침 등 관계 규정으로 보완가능하다"고 해명했지만, 양대 노총은 이 또한 불충분하다고 반박했다. '태안 김용균 사건'만 봐도 규정상 2인 1조가 있지만,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이 지침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 500명 숨지는 과로사 빠졌다"
이번 시행령의 관계법령은 근로기준법이 아닌 산업안전보건법이다. 또 중대재해 대상이 되는 작업성 질환이 24개에 그쳤고, 뇌심혈관계 질환나 근골격계 질환 등은 빠졌다. 이는 근로시간 과다, 즉 과로사 문제를 사실상 방치했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산재통계상 매년 500명 이상이 과로사로 숨지는데, 경영자에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이 내년 처음 시행에 들어간다는 점을 들어 초창기에는 안정성이 중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고용부 관계자는 "과로사 문제는 지금 근로기준법상으로 충분히 다룰 수 있어 꼭 중대재해법이어야 하느냐는 논란이 있다"며 "직업성 질환은 인과관계성, 예방 가능성을 명확히 할 수 있는 것들 위주로 정했다"고 말했다.
"강연장, 공연장 제외됐다"
중대재해법은 공중이용시설 사고, 즉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시설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경영책임자가 안전 관련 예산을 투입하고 인력을 배치할 수 있도록 해뒀다.
그런데 국회 논의 과정 때 공중이용시설에 포함됐던 강연장, 공연장이 정부 최종안에서는 사라졌다. 2014년 경기 판교 공연장 환풍구 붕괴 사고와 같은 대형 참사가 발생해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빈틈이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시설물관리법, 다중이용업소안전특별법 등의 규정을 원용해뒀기 때문에 명시만 하지 않았을 뿐 강연장, 공연장이 제외되는 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경영계도 불만... "의무 다했으면 면책권도 인정해줘야"
반면 경영계도 불만이 많다. 모호하고 불명확해서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그간 중대재해 사고를 예방할 책임이 있는 '경영책임자'의 정의와 의무 등에 대한 내용이 시행령에서 구체화돼야 한다 주장해왔는데, 이게 반영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또 면책권도 인정할 것을 요구했다. 경총 관계자는 "경영책임자로서는 할 수 있는 의무를 다했음에도 개인의 부주의 등 다른 원인에 의해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경영책임자에 대한 면책 규정도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산업 안전은 경영책임자뿐만 아니라 현장 종사자의 태도도 중요한데, 이에 대한 규정이 없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라고 밝혔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