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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전쟁으로 비화하는 美中 갈등… "10년 브로맨스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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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전쟁으로 비화하는 美中 갈등… "10년 브로맨스 끝났다"

입력
2021.07.10 04:3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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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상장 앞둔 중국 기업 '몸사리기'
美 의회 "디디추싱 철저히 조사해야"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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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이어진 미국 월가(街)와 중국 정보기술(IT)의 공생이 깨질 위기에 처했다. ‘데이터 안보’를 앞세운 시진핑(習近平) 중국 정권이 규제를 전방위로 넓히면서 중국 기업의 미국 증시 상장이 당분간 어려워진 탓이다. 안보·인권·무역 문제를 두고 끝없이 고조돼 온 미중 갈등이 ‘중국판 우버’ 디디추싱 제재 사태를 계기로, 이제는 ‘자본 시장’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中당국, 해외 증시 감독권 확보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8일(현지시간)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이 외국에서 기업공개(IPO)를 하려는 자국 기업에 대한 감독권을 행사하게 됐다면서 “미국과 중국 기술주(株)의 브로맨스(남성들 간 친밀한 관계)는 끝났다”고 전했다. 판공실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4년 설립한 인터넷 감독기관이다. 중국 기업의 외국 증시 상장을 정부가 좌지우지하는 힘까지 갖게 됐단 얘기다.

지난달 30일 중국 최대 차량공유업체 디디추싱의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이 계기가 됐다. 그에 앞서 판공실은 디디추싱의 IPO 연기가 필요하다고 봤지만, 이를 중단시키진 못했다. 당시 중국엔 해외 증시에 상장하려는 기업이 당국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명문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가 판공실의 ‘경고’를 무시하고 상장을 강행하자, 정부가 ‘감독권 강화’라는 초강수를 꺼내 든 셈이다. 빅터 시 미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이번 조치로 중국 기업의 외국 증시 상장은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중국 기업들의 몸 사리기도 시작됐다.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피트니스 애플리케이션(앱) ‘킵’과 현지 최대 팟캐스트 플랫폼 ‘시말라야’는 이날 돌연 뉴욕증시 상장계획을 철회했다. 나스닥 상장을 추진해 오던 인공지능 의료 빅데이터 플랫폼 링크닥도 계획을 잠정 중단했다. 자렛 세이버그 코웬 워싱턴 리서치그룹 애널리스트는 “중국 기업의 (미 증시) 상장 폐지도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이날 상장한 디디추싱 로고가 나타나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이날 상장한 디디추싱 로고가 나타나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밀월 관계’ 월가와 중국 기업엔 악재

중국 당국의 이번 조치는 자본주의의 심장인 월가에도, 중국 기업에도 악재다. 그간 양국의 패권전쟁과 무관하게 이들은 밀월 관계를 유지해 왔다. 중국 IT기업은 세계 최대 금융시장에 상장해 글로벌 자금을 대거 끌어들였고, 미국 자본도 거대 소비 시장을 지닌 중국 기업의 손을 맞잡으며 막대한 이익을 거뒀다.

금융정보업체 리피니티브에 따르면 지난 18개월간 미 증시에서 중국 기업의 IPO 규모는 1,060억 달러(약 121조8,000억 원)에 달한다. 이를 통해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등 월가 투자은행(IB)은 240억 달러(약 27조5,000억 원)의 수수료를 챙겼다. 돈의 흐름을 좇는 기업과 자본의 세계에선 쉽게 끊기 힘든 끈끈한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WSJ는 “양국 정부는 앙숙 관계였지만, (중국) IT와 (미국) 투자는 서로 포용하며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여 왔다”며 “그러나 앞으로는 오랜 기간 중국 기업의 미국 상장이 어려워질 전망”이라고 진단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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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냉전, 자본시장으로 확전

도널드 트럼프 전 미 행정부 시절 무역 전쟁으로 촉발된 미중 갈등은 기술과 안보 분야에 이어, 이젠 자본시장으로의 확전을 코앞에 두고 있다. 포문은 성난 투자자들이 열었다. 중국 당국의 옥죄기에 주가가 사흘 만에 31%나 폭락하면서 미국 주주들은 회사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냈다. 상장 전에 투자자들에게 위험을 충분히 고지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정치권도 힘을 보탰다. 미 상원 은행위원회 소속 빌 해거티 공화당 의원과 크리스 밴 홀런 민주당 의원은 이날 “디디추싱이 상장 당시 미국 투자자들을 의도적으로 오도했는지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철저히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욕증시 입성 과정에서 회사 측이 중국 당국의 규제 가능성을 인지했으면서도 의도적으로 이를 숨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백악관마저 나섰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에 상장된 기업은 높은 수준의 투명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도 맞대응하려는 분위기다. 이날 중국 상무부는 14차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분야의 외국인 투자를 보다 면밀히 관찰하겠다”고 밝혔다. 미중 갈등이 금융 분야로 번질 것에 대비한 조치라는 게 외신들의 분석이다. “디디추싱은 좋든 나쁘든 미중 전쟁의 중심에 있다”는 뉴욕타임스 평가처럼, IT 회사의 뉴욕행에서 시작된 자본시장발(發) 신냉전이 시작된 셈이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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