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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의 나라' 터키, 이젠 한국의 유럽·중동 진출 '교두보'

입력
2021.06.26 04:3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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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오늘날 세계경제는 우리 몸의 핏줄처럼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지구촌 각 나라들의 역사와 문화, 시사, 인물 등이 ‘나비효과’가 되어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치곤 합니다. 인문학과 경영, 디자인, 사회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경제학자의 눈으로 세계 곳곳을 살펴보려는 이유입니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가 <한국일보> 에 3주에 한번씩 토요일 연재합니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2016년 열린 '민주주의와 순국자를 위한 집회'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연설하는 동안 한 여성이 터키 국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터키 이스탄불에서 2016년 열린 '민주주의와 순국자를 위한 집회'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연설하는 동안 한 여성이 터키 국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22>우리와 발원지 같은 터키 민족, 멀지만 가까운 이웃

국가의 발전사를 살펴보면 해당 나라의 지정학적 위치가 많은 부분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걸 명확히 알게 될 때가 많다. 통상 대다수 국가의 국민들은 자신들의 지정학적 위치에 적응하거나 때로는 체념하면서 살아가는 게 일반적이다. 이와 달리 터키 사람들은 살기 적합한 장소를 찾아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해 자리를 잡았다. 보기 드문 민족이다.

유럽과 아시아의 '가교' 역할 하는 터키

오늘날 터키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 때문에 터키는 때로는 유럽의 일원으로 활동해 왔다. 일례로 유럽회의는 1949년 런던조약이 발효되고 몇 달 후 터키를 정회원으로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터키는 다른 유럽 국가와 유사한 국가 경제 시스템을 지향하진 않았다. 국영기업과 공공기업이 경제를 주도하다가 방향을 튼 게 1980년대다. 경제정책 입안자들이 보호주의 정책 대신 경제 개방과 투자 유치에 나서면서 이때부터 터키의 경제정책 방향은 기존 수입대체 전략에서 수출주도 전략으로 바뀌었다. 현재 터키는 1996년부터 유럽연합(EU)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설립 회원국이기도 하다.

지금은 유럽과 더 가까운 나라이지만, 터키는 한때 우리나라의 이웃이었다. 터키 민족의 발원지는 한민족과 같은 알타이산맥으로, 원래 이들은 지금의 울란바토르 지역으로 이주해 우리 민족의 인근에서 함께 살았다. 중국 진한 시대에 흉노족으로 불리던 민족이 지금의 터키 민족이다. 수나라·당나라 시절의 돌궐 역시 터키 민족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고조선과 삼국시대 때만 해도 우리와 자주 어울렸던 나라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후 터키 민족은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오늘날 위구르,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을 거쳐 지금의 터키 지역에 정착했다.

터키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다리 역할을 수행해 왔음을 상징하는 곳이 바로 성 소피아 성당이다. 성 소피아 성당은 532년에 건축됐다. 지어진 뒤 537~1453년까진 그리스 정교회 성당으로 사용됐다. 이후 라틴 제국에 점령당한 1204~1261년까진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당으로 개조됐다가 이후 다시 정교회 성당으로 복귀했다. 그러다 오스만 제국 시절인 1453년 5월 29일부터 1931년까진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로 쓰였다. 지금은 터키를 대표하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나의 성당이 세 가지 종교에 사용되었던 사례는 성 소피아 성당이 유일하다.

원래 이슬람 국가들은 타 종교에 대해 상대적으로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많은 이슬람 국가들은 이전에 다른 종교에서 사용한 사원이나 상징물을 없앴다. 하지만 터키인들은 유럽과 아시아의 가운데 위치해 다양한 문화를 접해서 그런지 문화적 상대성을 인정하는 남다른 이슬람 문화를 갖고 있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는 성 소피아 성당이 파괴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터키는 이슬람교인이 전체의 99%에 달할 정도로 절대적인 비중을 갖고 있지만 종교의 자유가 있는 보기 드문 이슬람 국가이기도 하다.

한국의 유럽과 중동 진출 거점인 '터키'


우리나라는 지난 2012년에 터키와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타결했다. FTA로 인해 양측 모두 수입액 기준 거의 전 품목(약 100%)의 관세를 단계적으로 철폐해 왔다. 무역구제 또한 세계무역기구(WTO) 수준 이상의 절차적·실질적 요건을 강화했고, 통상 관련 행정 처리 역시 한?EU FTA 또는 WTO와 유사한 수준으로 합의했다. 하지만 터키는 회사 설립, 금융거래, 수출입 통관 절차 등이 복잡하고 까다로운 것으로 유명하다. 터키가 중동과 유럽 사이에 위치한 만큼 테러의 위험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테러 위험을 줄이기 위해 행정 처리 과정을 신중히 하는 것이다.

터키와 비즈니스를 할 땐 이런 점을 주의해야 한다. 터키 사람들은 비즈니스를 할 때 선물을 주고받는 걸 즐긴다. 돈·상품권과 같은 뇌물 성격의 선물이 아니라, 마음을 전하는 다과 또는 찻잎 등을 주고받곤 한다. 우리나라는 불필요한 선물을 주고받는 걸 금기시해 어색할 수 있지만 터키 비즈니스에선 선물을 주고받는 게 거래의 첫 단추라 할 수 있다.

터키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실내에서 신발을 벗는 곳이 많다. 이 때문에 터키 방문이 처음인 사람들은 종종 실내에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터키 역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실내에서 신발을 벗고 생활한다. 터키인들은 또 동아시아와 유사하게 지인과의 관계를 중시한다. 때문에 터키에서 비즈니스를 수행할 때는 특히 현지 업체와의 파트너십 구축이 필수적이다. 국제 입찰의 경우에도 현지 유력 업체가 포함된 컨소시엄이 수주하는 게 일반적이다.

현재 우리나라 기업 중 상당수가 낮은 인건비와 유럽과의 원활한 통상 환경을 주목, 터키를 유럽 진출의 제조 거점으로 삼고 있다. 터키에 있는 현대자동차 공장은 이곳에서 만든 자동차를 유럽과 중동에 수출한다. 현대로템도 철도 공장을 터키에 두고 있고, 터키에 위치한 효성 공장 역시 해당 분야의 세계 1위를 차지하는 설비 규모를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이 터키에 제조 설비를 두고 있는 건 터키 인접 국가의 진출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중동의 이집트, 요르단 등 6개국이나 북아프리카 지역의 경우 우리나라와 FTA를 체결하지 않은 국가가 많다. 따라서 이들 국가에 수출하기 위해 터키에 법인을 설립해 운영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터키는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의 나라에 진출하기 위해서도 최적지라고 할 수 있다. 이들 국가 역시 터키의 형제국가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터키 민족이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일부가 중앙아시아에 정착, 오늘날까지 살아온 것이다. 이 때문에 터키어와 이들 국가의 언어도 상당히 유사해 30~40% 정도는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이다. 현재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국가들은 제조기능이 취약해 터키로부터 생필품과 공산품을 많이 조달받고 있다. 이러한 국가 간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터키에 진출하는 건 단순히 터키 한 나라에 진출하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 기업들은 터키 내수 경제 시장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SK플래닛은 터키 현지 업체(Dogus Group)와 손잡고 전자상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합작회사(Dogus Planet)를 설립했다. 2013년에 공동으로 출범시킨 ‘n11.com’은 터키의 최대 온라인 소매업체로 자리매김했다. CJ CGV 역시 터키 현지법인을 인수해 극장 시장에 진출한 바 있다. 이 밖에도 터키에는 삼성전자, LG전자를 비롯해 현대건설, SK건설 등의 건설회사, 포스코와 같은 철강회사, 남동발전과 한화큐셀과 같은 에너지 관련 회사, 대한항공 등의 항공운송 회사 등 다양한 분야의 회사가 진출해 있다.

과거 고대 시대의 터키는 우리의 이웃나라이자 형제 국가였지만 오늘날엔 멀리 떨어진 국가가 돼 버렸다. 하지만 우리가 터키와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 이유는 어쩌면 오늘날 더 많아진 게 아닌가 싶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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