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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왜 쫓겨나야 하나요?"… 미등록 이주아동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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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왜 쫓겨나야 하나요?"… 미등록 이주아동의 슬픔

입력
2021.06.24 18:13
수정
2021.06.24 18:50
20면
0 0
‘열아홉’이라는 나이가 계기가 됐어요. 스무 살이 되면 강제로 내가 전혀 모르는 나라에 가야 한다는 사실, 그로 인한 극도의 불안감이 오히려 사람을 긍정적으로 만들더라고요…(중략)…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살 수 있는 것. 내가 나임을 인정받는 것. 제가 원하는 건 그런 최소한의 것들이에요. 저는 한국에서 유령으로 지내온 거나 마찬가지예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요.

미등록 이주아동, 마리나


마리나(19)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아이였다. 부모에게 국내에 체류할 합법적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리나와 같은 아이들은 체류자격을 얻을 방법이 없다. 외국인등록번호조차 없으니 살기가 쉽지 않다. 당장 신분확인을 요구하는 온갖 서비스들을 이용할 수 없다. 의료보험이 안 되니 아프면 참아야 한다. 또래 한국인 친구들에게는 숨쉬듯 쉬운 일이 이들에게는 어렵거나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쓰는 ‘미등록 이주아동’이라는 표현보다는 ‘불법체류자의 아이들’이라는 꼬리표가 한국사회가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잘 설명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와 그 자녀들을 지원해온 사람들은 "그들도 한국이 필요해서 들어온 사람들"이라고 강조한다. 어차피 산업현장에서 꼭 필요한 사람들이라면 범죄자처럼 취급하기보다 양지로 데려와 포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그들의 자녀들에게는 어떤 잘못이 있느냐고 되묻는다. 지난달 12일 강원 강릉시 외국인 노동자 선별검사소에 검사 정보를 불법 체류 확인용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와 그 자녀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와 그 자녀들을 지원해온 사람들은 "그들도 한국이 필요해서 들어온 사람들"이라고 강조한다. 어차피 산업현장에서 꼭 필요한 사람들이라면 범죄자처럼 취급하기보다 양지로 데려와 포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그들의 자녀들에게는 어떤 잘못이 있느냐고 되묻는다. 지난달 12일 강원 강릉시 외국인 노동자 선별검사소에 검사 정보를 불법 체류 확인용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와 그 자녀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불법체류자의 아이'라는 꼬리표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하고 작가 은유가 이달 펴낸 ‘있지만 없는 아이들’은 미등록 이주아동들의 경험담이다. 이에 따르면 미등록 이주아동은 이주민 부모를 따라서 한국으로 이주했거나 한국에서 태어난 아동 가운데 부모의 체류자격 상실, 난민 신청 실패 등 다양한 이유로 체류자격이 없는 아이들을 말한다. 이들은 5,000여명에서 최대 2만여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들의 부모들 중 상당수는 1990년대초, 한국이 3D산업의 노동력을 절실히 요구하던 시기에 국내로 들어왔다. 유엔 아동권리협약과 법무부 지침에 따라서 미등록 이주아동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부모와 함께 강제퇴거(강제추방)을 유예 받는다. 이후에는 강제추방이 기다리고 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랐는데 왜 쫓아내나요?

부모 나라의 문화는 애초에 모르거나, 까맣게 잊었는데 왜 한국에서 쫓겨나야 하는가? 미등록 이주아동들은 끊임없이 되묻는다. 응답 없는 질문을 반복하면서 우울증을 앓거나 미래 설계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어제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뛰어놀았는데 내일이면 한국에서 쫓겨날 상황에서 대학을 간다느니, 어떤 직업을 가지겠다느니 꿈을 꾸기가 힘들다.

마리나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봉사 시간 10시간만 채워도 되는데 저는 한 200시간 했을 거예요. 요양원 봉사는 봉사가 아니라 청소예요. 몸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죠. 그래도 2년 동안 성모 마리아의 마음으로 정기적으로 봉사했어요. 대학을 사회복지학과로 진학할 때 좀 도움이 되겠지 하는 생각도 있었거든요. 그때는 미래를 생각했으니까요. 지금은 대학 갈 생각이 없으니 소용없어졌지만요.”


태어난 것은 죄가 아니잖아요

태어났을 뿐인데 왜 손가락질을 받고 차별당해야 하는가? 아이들을 괴롭히는 또 다른 질문이다. 카림은 1999년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나 네 살 때 부모를 따라서 한국으로 건너왔다. 한국사회의 일원으로 스스로를 인식하고 성장했다. 초등학교 전교생 12명 가운데 4명이 카림의 가족이었다. 전국 규모 통일 글짓기 대회에서 동상을 타기도 했다.

그러다 대학 입학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됐다. 역사선생님이 아이들 몇 명을 모아서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보라고 추천했는데 카림만 주민등록번호가 없어서 시험을 못 치른 것이다. 그때부터 공부와 점점 멀어졌다. 3학년 때는 수업시간 내내 기욤 뮈소를 읽었다. 담임선생님은 그를 다독였다. 요리를 잘하니까 푸드트럭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지 않겠느냐고.


'있지만 없는 아이들'. 은유 지음ㆍ창비 발행ㆍ232쪽ㆍ1만5,000원

'있지만 없는 아이들'. 은유 지음ㆍ창비 발행ㆍ232쪽ㆍ1만5,000원


"공교육 받은 아이들에겐 체류권 주자"

한국 공교육을 받은 아이들에게는 체류권을 주자. 미등록 이주아동을 지원해온 석원정 서울시 성동외국인노동자센터장은 책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미등록 이주아동은 모든 법과 권리, 인권과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다. 이 아이들을 국적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인도적이지도 않다. 사회가 아동들을 보호하고 공존할 방안을 생각하자는 이야기다. 인구 감소를 걱정하는 시대에 '미등록 이주민 아동'이라는 꼬리표만 떼면 한국인 아이와 똑같이 자라온 아이들을 내칠 이유가 무엇인가. 지난 4월 법무부가 아이들에게 조건부로나마 체류자격을 주겠다고 밝히면서 공존의 물꼬가 간신히 트였다.

“미등록 아동의 부모까지 국적을 주자는 것도 아니고, 체류자격을 주자는 것도 아니고, 한국에서 평생을 살고 공교육을 받은 아이들을 여기서 살게 해주자는 거예요. 미등록 이주아동의 체류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늘 하는 이야기가 ‘이렇게 하면 다 여기에 와서 애 낳을 거다’ 잖아요. 아니, 자기들 같으면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에 살겠다고 일부러 애를 낳겠느냐고요…(중략)…그리고 설사 그런들 그게 뭐가 문제예요. 지금 인구가 부족해서 문제인데.”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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