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폭력주의·반전주의 따른 병역법 위반?
여호와의 증인 신도 아닌 현역 입대 거부 첫 무죄
대법, 올 2월에도 예비군 거부 사건에 무죄 판단
기독교 교리와 페미니즘을 근거로 비폭력주의·반전주의 신념을 주장하며 현역 입대를 거부한 사람에게 대법원이 무죄를 확정했다. 그간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법을 위반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과 개인적 신념으로 예비군을 거부했던 이들에게 무죄 선고를 내린 적은 있었지만, 이외 다른 사유로 인한 '양심적 현역병 거부'에 무죄 판단을 내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24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해당한다면 병역법 제88조가 규정하고 있는 입영 기피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된다는 취지의 판결이다.
성소수자인 A씨는 고교 재학 시절부터 획일적인 입시교육과 남성성을 강요하는 또래문화에 반감을 가지면서 기독교 신앙에 의지하게 됐다. 2007년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여러 선교단체에서 활동하며 용산참사 관련 1인 시위,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운동 등에 참여했고, 비폭력주의 신념을 키워나가게 됐다.
페미니즘은 A씨가 군대 체제를 거부하는 또 다른 계기가 됐다. A씨는 2012년 대학원 과정에서 다양성과 평등 가치를 중심으로 페미니즘을 심층 탐구하기 시작했다. A씨는 스스로를 "사회가 정상이나 표준으로 여기는 요소를 성소수자 입장에서 주체적으로 탐구하는 '퀴어(성소수자) 페미니스트'"라고 규정하며 "다양성을 파괴하고 차별과 위계로 구축되는 군대 체제와 나를 생물학적 성(남성)으로 규정 짓는 국가 권력을 용인할 수 없다고 느꼈다"고 주장했다.
1심은 A씨의 병역 거부 사유가 처벌의 예외에 해당하는 '정당한 사유'가 아니라며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A씨의 병역 거부가 정당하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A씨는 사랑과 평화를 강조하는 기독교 신앙과 소수자를 존중하는 페미니즘의 연잔선상에서 비폭력주의와 반전주의를 옹호하게 됐다"고 전제했다. 이어 "이 같은 신앙과 신념이 A씨의 내면 깊이 자리 잡혀 분명한 실체를 이루고 있고, 이를 타협적이거나 전략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이 나오기 이전부터 이미 종교적, 정치적 신념을 이유로 형사처벌을 감수하며 입영을 거부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역시 2심 판단을 인정했다. 대법원은 지난 2월에도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님에도 비폭력주의라는 도덕적 신념에 따라 예비군 훈련을 거부한 사례를 비(非)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거부로 보고, 처음으로 무죄 확정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여호와의 증인 교리가 아닌 비폭력주의·반전주의를 이유로 현역 입대를 거부한 사안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수긍한 최초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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